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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국립중앙박물관서 위용을 뽐내는 10층석탑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184]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국립중앙박물관에 들어가면 넓은 공간 복도 끝에 우뚝 솟은 거대한 탑이 우리의 눈을 완전히 사로잡습니다. 이 ‘개성 경천사터십층석탑’은 높이 13.5m로 고려말에 쌓은 석탑인데 국보 제86호로 지정되었습니다. 탑은 전체적으로 독특한 형태에 균형과 안정미를 갖추었고, 세부 조각들도 매우 섬세하여 나무랄 데 없는 명작이란 평가를 받습니다. 그래서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는 사람들은 이 탑앞에서 기념사진을 꼭 찍고 옵니다.

 

 

그런데 이 탑에 가슴 아픈 사연이 있었음을 아는 이는 많지 않습니다. 그것은 대한제국 때인 1907년 3월 당시 일본 궁내대신인 다나카 마스아키가 결사적으로 막는 조선 백성과 군수를 고종황제가 허락했다는 거짓말과 총칼로 제압하고 이 10층석탑을 강탈해간 것입니다. 다나카는 이 석탑을 해체하여 포장하고 10여 대의 달구지에 싣고 개성역에서 기차에 실었습니다. 그리고 기어코 도쿄 자신의 집 정원으로 옮겨 차마 포장도 풀지 않는 채 놔두었습니다.

 

이에 <대한매일신보>의 발행인 어네스트 베셀이 자신의 신문에 연일 이를 꾸짖는 기사를 냈으며, 미국 선교사 호머 헐머트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국제언론에 이를 고발했습니다. 이렇게 시끄러워지자 결국 조선총독부까지 나서서 반환을 요구했지요. 마침내 1918년 11월 15일 석탑은 이미 해체와 운반 과정에서 심각한 훼손을 안고 현해탄을 건너 고국에 돌아오게 됩니다. 이후 이 석탑은 해체된 상태 그대로 경복궁 회랑에 방치된 채 두었다가 새로 지은 용산의 국립중앙박물관 실내에 복원해 놓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