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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바탕 쑥대머리나 부르며 놀다 가리니

[서평] 이달균 시인의 제8시집 《열도의 등뼈》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가만히 들여다보니 돌에도 나이테가 있다

귀대고 들어보니 심장의 울림도 있다

선 채로 예불소리에 가지런히 손을 모은다

그 어깨 빌려 앉은 귀뚜라미 한 마리

절간에 왔다고 스님 독경 소리 따라

나직이

반야바라밀

읊조리다 목이 쉰다

 

이달균 시인의 제8시집 《열도의 등뼈》에 나오는 ‘석등과 귀뚜라미’라는 시다. 그렇게 시인은 돌의 나이테도 볼 수 있고, 돌의 심장 소리도 듣는다. 심지어 귀뚜라미조차도 스님 독경 소리 따라 나직이 반야바라밀 읊조리다 목이 쉰단다. 이게 이달균 시인이 도달한 경지다.

 

지난 2009년 사설시조집 《말뚝이 가라사대》를 펴내 주목을 받았던 이달균 시인(62)은 최근 도서출판 작가를 통해서 《열도의 등뼈》를 펴냈고, 이 시집으로 ‘2019 이호우ㆍ이영도 시조문학상’ 본상 수상자로 뽑혔다. 게다가 이 시집은 ‘2019세종문학나눔 우수도서’에도 뽑혔다.

 

그러나 시인은 쓸쓸한 자각도 읊조린다.

 

한 수의 시를 썼다

세상이 놀랄 것이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군

나의 나라에 백성은 나뿐이군(‘시인 2’ 전문)

 

어쩌면 나의 나라에 백성이 자신뿐이라는 것은 많은 시인들이 하는 독백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시인은 끊임없이 시를 쓴다. 그것이야말로 자신을 외로움에서 벗어나게 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것뿐이 아니다. “우리 책 제호는 ‘하로동선(하로동선)’으로 하지요. 여름을 견디는 하로, 겨울을 건너는 부채. 그렇지 꼭 우리시대 시인들 모습이군.”(‘무용지물3’ 전문)라고도 토해낸다. 하지만 그런 뒤척임 속에 명시는 태어남이 아니던가?

 

시인은 노동자의 눈물에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놀빛 크레인이 운다 황혼녘의 조선소 / 공원에서 날아온 불임의 비둘기들 / 허약한 강철의 눈물에 / 부리를 적신다 / 도크를 떠돌던 낯 술에 취한 개는 / 빈 술병 쓰러뜨리고 어디론가 사라진다 / 누군가 벗어두고 간 / 작업모와 신발 한 짝"(‘크레인의 눈물’ 전문) 그 많던 노동자들이 들썩이던 조선소는 이제 크레인이 놀빛으로 녹슬고, 불임의 비둘기들이 허약한 강철의 눈물에 부리를 적신단다. 기막힌 비유다. 그런데 그곳엔 작업모와 신발 한 짝이 놓여 있다고 쓸쓸히 중얼거린다.

 

 

그렇게 중얼거리던 시인은 드디어 ‘득음(得音)’의 경지에 까지 이른다. 그는 ‘득음’이라는 시에서 “결 고운 그대는 국창(國唱)이 되어라 / 깨진 툭바리처럼 설운 난 바람이 되어 / 한바탕 쑥대머리나 부르며 놀다 가리니”라고 외친다. 굳이 국창이 될 필요는 없단다. 그저 한바탕 쑥대머리나 부르며 놀다 간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쑥대머리를 부르며 놀다갈 정도의 요량은 있는 배달겨레의 한 사람일러니.

 

시집 뒷부분에서 문학평론가 유성호 교수는 “자신만의 득음에 이른 우리 시대의 소리꾼 이달균이 다음에 가게 될 방향은 어디일까”라면서 더욱 원숙해진 그의 서정과 인식이 그를 우뚝한 시인상으로 만들어줄 거라고 고대한다.

 

사설시조집 《말뚝이 가라사대》에서 시인은 “할 말 많은 세상에 독자들은 그냥 침묵을 무기로 하고 대신 시인이 말뚝이가 되어 세상의 탈이란 탈은 다 잡아줄 것이다.”라고 약속을 했다. 이달균 시인의 매력은 바로 그런 데에 있음인데 다음 시집에선 다시 한 번 말뚝이가 되어줄 것을 기대해본다.

 

《열도의 등뼈》, 이달균 시집, 작가, 값 10,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