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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판소리 여섯마당을 정리한 신재효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202]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우리 겨레의 전통예술 가운데는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이며, 2013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오른 판소리가 있습니다. 소리꾼이 고수 장단에 맞추어 창ㆍ아니리ㆍ발림을 섞어가며 이야기를 엮어가는 극적 음악이지요. 본래 열두 마당이었으나 지금은 <춘향가>ㆍ<심청가>ㆍ<수궁가>ㆍ<적벽가>ㆍ<흥보가> 다섯 마당만 전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판소리가 우리의 대표적 전통예술로 자리 잡은 데에는 신재효(申在孝, 1812~1884)라는 인물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신재효는 우선 판소리 열두마당 가운데 <춘향가>, <심청가>, <토별가(수궁가)>, <박타령(흥부가)>, <적벽가>, <변강쇠가> 등 모두 여섯마당의 판소리 사설을 정리하면서 자기 나름으로 개작하였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판소리 이론을 정립하고 비평 활동도 했는데 특히 인물, 사설, 득음, 너름새를 판소리의 4대 법례로 제시하고 또 역대 명창들의 특색을 비유의 방식으로 평가했지요. 또 신재효는 집안에 ‘노래청’을 만든 다음 수많은 명창들과 교류하였고 김세종ㆍ정춘풍ㆍ진채선ㆍ허금파 같은 명창들을 길러냈습니다.

 

그런데 신재효와 진채선 명창 사이에는 애틋한 이야기가 한 토막 전해집니다. 고종 4년에 경복궁이 세워지자 경회루에서 축하 잔치가 벌어졌고 그 자리에서 진채선이 ‘방아타령’을 불러 이름을 날리게 되자 대원군은 진채선을 운현궁으로 데려가 ‘대령 기생’으로 묶어두었습니다. 진채선이 돌아오지 않자 외로움을 느낀 신재효는 ‘도리화가(桃李花歌)’라는 노래로 엮어 진채선에게 보냈지요. 그러자 진채선은 대원군에게 신재효를 추천하여 오위장이라는 벼슬을 받게 되고 그 뒤 1876년 흉년이 들자 신재효는 사람들을 구제했고, 그 공으로 그는 통정대부에 오르기도 하였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