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7 (수)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닫기

독립운동가 후손에게 듣는 이야기

33살로 요절한 제주 여성독립운동가 강평국의 삶

강평국 지사 일본 유학중 동경조선여자청년동맹과 근우회 창립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슬프다. 시대의 선각자요, 여성의 등불인 그는 삼일운동 때 피 흘려 청춘을 불살랐고 청운의 뜻을 품고 일본으로 건너갔으나 품은 이상 이루지 못한 채 애달픈 생애 딛고 여기 길이 자노니 지나는 손이여. 비 앞에 발 멈춰 전사의 고혼(孤魂)에 명복을 빌지어다. 여기 뜻있는 이 모여 정성들여 하나의 비를 세우노니 구천에 사무친 외로운 영이여 고이 굽어 살피소서.”

 

이는 제주시 황사평 천주교 공원묘지에 세워져 있는 강평국(姜平國, 1900 – 1933) 지사의 추도비에 새겨져있는 글이다. 지난 11월 8일(금) 낮 1시, 강평국 지사의 추도비를 찾아간 제주의 하늘은 더없이 맑고 푸르렀다. 추도비가 있는 곳은 공원묘지 입구에서 정면으로 나있는 조붓한 길을 걸어가면 나오는데 중간에 성모상이 서 있고 그 뒤를 조금 더 걸어가면 ‘황사평 순교자 묘역’이라는 커다란 봉분이 나온다. 바로 그 봉분 왼쪽 편에 강평국 지사의 추도비가 작고 아담한 모습으로 서 있다. 추도비에는 ‘아가다 강평국 선생 추도비’라는 글귀가 빗돌에 새겨져 있다. 아가다는 강평국 선생의 세례명이다.

 

 

강평국 지사는 1900년도 제주읍 일도리에서 아버지 강도훈과 어머니 홍소사의 둘째딸로 태어났다. 강평국 지사의 부모는 천주교인으로 강평국 지사가 태어나고 1년 뒤인 1901년 신축교난(辛丑敎難, 1901년 제주도민들 사이에 경제적 이해 대립관계와 종교적인 갈등, 일본인 수산업자들과 프랑스 선교사 세력들의 대립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발생한 사건) 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순교하는 불운을 겪었다. 고아가 된 강평국 지사는 오빠 강세독과 천주교의 보호 아래 자라 ‘아가다’라는 이름의 세례를 받았다.

 

 

 

강평국 지사는 제주 여성독립운동가 3총사로 불리는 고수선, 최정숙 지사와 함께 일찍이 개화의 눈을 떠 제주 신성여학교를 1회로 졸업(1914년)했다. 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고향 제주에서 친자매처럼 친하게 자랐다. 더욱 놀라운 것은 당시 여자에게 교육을 시키지 않았던 시절임에도 3총사는 신성여학교를 졸업하고 모두 서울로 유학을 떠났다는 점이다.

 

이리하여 3총사는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사범과(1918년)를 나와 교육자의 길을 걷는다. 그러나 얼마 안 돼 다시 의학공부에 전념한다. 의사가 되어 헐벗고 가난한 동포를 돌보고자하는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뒤 3총사 가운데 최정숙, 고수선 지사는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여 의사가 되었고 강평국 지사는 동경여자의학전문학교로 유학을 떠났다.

 

강평국 지사(아가다, 1900-1933), 최정숙 지사(베아트리체, 1902-1977), 고수선 지사(엘리사벳, 1898-1989)은 모두 신심이 깊은 천주교 신자들이었으며 나이는 고수선 지사가 위였고 강평국 지사에 이어 최정숙 지사 순이다. 이들은 서울 유학시절 3.1만세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그러한 독립운동 사실을 인정받아 포상을 받은 이는 고수선(1990,애족장), 최정숙(1993,대통령표창) 지사뿐이었다. 강평국 지사는 33살의 나이로 요절하는 바람에 서훈이 늦어져 2019년에 가서야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았다. 고수선, 최정숙 지사의 포상 연도에 견주면 28년 만이나 늦은 것이다.

 

 

이에 대하여 강평국 지사와 절친했던 고수선 지사의 아드님인 김률근 선생은 “어머니는 늘 강평국 지사께서 독립유공자로 서훈을 받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했습니다. 3.1만세 운동에 참여했을 뿐 아니라 동경여자의학전문학교 유학시절에도 강평국 지사는 독립운동에 앞장섰다는 말씀을 어머니를 통해 들었습니다. 강평국 선생은 1927년 동경조선여자청년동맹 초대 집행위원장을 맡으셨고 또한 1928년에는 동경에서 근우회를 창립하여 도쿄지회 의장으로 활약하신 분이십니다.”라고 증언했다.

 

일본에서 의학전문학교를 다니면서 근우회 등에서 조국 독립운동을 펼쳤던 강평국 지사는 그러나 일본에 건너간 뒤 늑막염이 심해지는 등 건강에 빨간불이 켜졌다. 그러한 몸을 이끌고 학업에 정진하면서 한편으로는 동경조선여자청년동맹과 근우회를 창립하는 등 쉬지 않고 뛰었다. 그러나 점점 악화되는 건강 때문에 아쉽게도 학업을 포기하고 귀향길에 올라야했다. 하지만 1933년 1월, 광주에서 비밀결사 활동을 하던 일이 발각되어 강평국 지사는 광주로 끌려갔다. 조사를 마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고 그 길로 일어나지 못하고 1933년 8월 12일 그만 세상을 뜨고 말았다. 강평국 지사 나이 33살 때였다.

 

 

 

일본 유학을 떠나기 전 강평국 지사는 전라남도와 고향인 제주의 대정공립보통학교 교편을 잡은 적이 있는데 그 때 독립운동에 관여했던 일을 가지고 일제는 끝끝내 강평국 지사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것이다.  한편 강평국 지사가 제주에서 교편을 잡은 것은 여성으로서는 강평국 지사가 처음이다. 당시 강평국 지사 밑에서 공부한 제자들은 스승에 대해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3.1만세 운동 당시 최정숙 선생님은 종로로 나가다 붙잡혔고 강평국 선생님은 일본 기마병에 쫓길 때 어느 집으로 들어가 병풍을 치고 앉아 머리를 쪽지고 앉았다고 해요. 그래서 새색시처럼 보여 붙잡히지 않았던 것이지요” -제자 김서옥(89년 당시 81살)

 

“그때 1학년 담당이었던 강평국 선생님이 너희들은 훌륭한 국민이 되어야한다고 항상 일깨줬지요. 그러던 어느 날 나와함께 공부하러 갔던 김소제가 와서 선생님이 학교에서 쫓겨났다며 울음을 터뜨렸어요. 학생들에게 조선글을 알아야 한다며 <유년필곡>을 가르치던 강평국 선생님이 같은 학교 직원의 밀고로 잡혀갔던 것이지요” - 제자 한여택(89년 당시 91살)

 

한편, 제주에서 교편을 잡고 있을 당시 강평국 지사는 최정숙 지사와 함께 여자장학회(1920년)를 조직하여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학업의 길을 열어 주었다. 이 장학회를 토대로 이들은 1921년에는 여수원(女修院)을 설립하였다. 여수원은 1922년 명신학교의 모태가 되었는데 이곳은 여성 교육과 여성 계몽의 필요성을 절감하여 문맹퇴치 강습소 역할을 하였다. 그런가 하면 강평국 지사는 3총사였던 최정숙, 고수선 지사와 함께 1925년 12월, 제주에서 조선여자청년회를 조직한다. 제주여성청년회는 여성의 의식향상과 권익보호를 위해 세운 것으로 근대민족여성운동을 주도한 단체로 성장했다.

 

제주에서 죽마고우로 자라나 신성여학교를 1회로 졸업한 3총사는 서울로 유학을 떠나 의학전문학교를 다녔다. 이때가 1920년대였으니 선각자 가운데 선각자였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최정숙 지사와 고수선 지사는 서울에서 의사가 되었고, 강평국 지사는 도쿄에서 의학전문학교를 다녔으니 33살에 요절하지 않았다면 분명 명의가 되어 3총사가 끝까지 제주에서 아름다운 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그러나 운명의 신은 가혹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제주에서 33살에 숨진 강평국 지사의 무덤을 찾을 길이 없다는 사실이다. 1933년 숨졌을 때 현재의 황사평 천주교 공원묘지에 안장했지만 당시 묘비를 세우지 못한 관계로 현재까지도 무덤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 추도비는 죽마고우였던 고수선 지사를 비롯한 장시우, 김정순, 한려택, 김소아, 김계숙 등 친구, 동지, 후배, 제자 16명이 강평국 지사의 유지를 받들어 1981년 11월 10일 이곳 황사평 순교자 묘역 안에 세운 것이다.

 

강평국 지사의 추도비가 있는 이곳 황사평 천주교 공원묘지는 1903년, 신축교난(辛丑敎難) 당시 숨진 이들을 위해 조성된 무덤으로 1983년부터 공원묘지화를 시작하여 1990년대에 천주교 제주교구 100주년 사업의 한 고리로 성역화 하였다. 지금은 ‘천주교 제주 교구 순례길’ 코스이다.

 

다행히 강평국 지사 사후 86년만인 2019년 3월, 3총사 가운데 뒤늦게 강평국 지사가 정부로부터 독립유공자(애족장)자로 포상 받은 것은 그나마 기쁜 일이다. 황사평 천주교 공원묘지 안의 강평국 지사 추도비를 찾았던 지난 8일(금)은 유난히도 제주의 하늘이 높고 푸르렀다. 이 아름다운 땅 제주의 하늘아래 오래도록 잊고 지냈던 여성독립운동가 강평국 지사! 이제 3.1만세운동 100돌을 보내고 새로운 100년의 원년인 올해부터는 자주 그의 이름을 불러주는 우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추도비 곁에서 오래도록 고개 숙여 강평국 지사의 명복을 빌었다.

 

 

 

 

아울러 2019년 8월 15일 현재, 정부로부터 독립유공자로 포상 받은 제주 출신의 여성독립운동가는 강평국 지사와 더불어 고수선(1898-1989,1990.애족장), 최정숙(1902-1977,1993.대통령표창), 부춘화(1908-1995,2003.건국포장), 부덕량(1911-1939, 2005. 건국포장), 이갑문( 1913-모름, 2018, 건국포장) 등 모두 6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