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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민족

한국·한국인·한글을 사랑한 서예가 다나카 유운 씨

연세대 언더우드관,12월 13일 '1주기추모문집 발간회'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외국인 가운데 한국을 사랑하거나 한국인 또는 한글을 사랑하는 사람은 있어도 이 셋을 몽땅 사랑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그러나 여기 그런 사람이 있다. 한국ㆍ한국인ㆍ한글을 사랑한 서예가 다나카 유운(田中佑雲, 1957-2018) 씨가 바로 그다. 1957년생이면 지난해(2018년) 만 60살이다. 아직은 젊은 나이에 서예가 다나카 씨는 ‘비가 그치듯 조용히’ 이승을 하직했다.

 

 

 

“사회인이 되고 나서 16년의 세월이 흘러 올해로 서른여덟 살이 되었다. 이십 대에 무언가에 홀린 듯이 이 두 사람(미야자와 겐지와 시몬 베유)의 뒤를 쫓아 살았다. 놀랍게도 두 사람 모두 지금의 내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동서(東西)에 출현한 두 사람의 극한상이 서로 포개어지면서, 자신에게 남겨진 인생의 시간 앞에 멈칫하게 된다.(가운데 줄임) 어찌할 바 몰라 혼돈스러웠던 내가 방황하면서 괴로워할 때, 나 자신을 내부로부터 지탱해 준 두 사람의 공통점은 함께하는 고통(共苦)의 지평(地平)이었다. 그리고 나의 이상적인 죽음의 방식은 야기주키치(八木重吉)가 속삭였던 다음의 한 행으로 요약된다. ‘비가 그치듯이 조용히 죽어 가자. ”

 

이는 1985년에 쓴 <400자의 유언-인생의 좋은 증언을 위해서>라는 글을 한 잡지에 기고한 내용 가운데 일부다.

 

고등학교시절부터 서예에 입문한 다나카 씨는 명문 메이지대학 졸업 후에 공무원으로 근무하면서도 붓을 놓지 않고 꾸준한 작업을 이어갔다. 시를 좋아하는 감성의 작가에게 공무원 생활은 생업 그 이상의 것은 아니었을 듯싶다. 다나카 씨는 2001년, 44살의 나이에 공무원을 그만두고 도쿄 인근 도치기현에 있는 자택에 작업실을 만들었다. 그리고 작업에 몰두한다. 첫 개인전 제목은 “고통을 함께하는 지평(공고의 지평 - 共苦の地平)”이다. 이 제목은 2011년 제3회 개인전까지 이어갔다.

 

 

 

“현재 조선어 강좌에 매주 다니고 있다. 교재는 물론 “안녕하세요?”로 시작하는 초급편이다. 그 간단한 여행 회화 정도의 내용인데도 “읽기, 말하기, 쓰기”를 완전히 습득하기가 정말 어렵고 '먼 길'이라고 막연히 한탄하게끔 된다.(중간 줄임) 마침 러일전쟁으로부터 100년. 동아시아에서 함께 살아가는 한 명의 인간으로서 나는 사죄의 말을 조선 사람들에게 바치고자 한다. 당돌하고 조금 우습게 보일지 모르지만 진심으로 바란다. 1965년 조약으로 국가간 청산이 끝났다? 과연 그러한가. 아니다. 옛 종군위안부분들의 고통스런 외침을 들어볼 것도 없이 국가를 형성하는 개인은 여전히 과거를 지닌 채 살아가지 않을 수 없다." (끝줄임)

 

이는 2005년 8월 ‘이웃나라를 생각한다’라는 글에서 밝힌 다나카 씨의 심정이다. 그가 생각하는 한일관계의 편린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한글을 배우고부터는 줄곧 한글 서예 작품에 몰두 했다.

 

어머니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윤동주 ‘별 헤는 밤-

 

내가 원하는 우리 민족의 사업은 결코 세계를 무력으로 정복하거나 경제력으로 지배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직 사랑의 문화, 평화의 문화로 우리 스스로 잘 살고 인류 전체가 의좋게 즐겁게 살도록 하는 일을 하자는 것입니다(뒷줄임) - 김구 ‘나의 소원’ -

 

 

 

 

이러한 구절을 즐겨 썼던 다나카 씨는 유독 윤동주를 사랑했다. 그는 말했다. “윤동주 시인의 ‘서시’를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한글공부를 시작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운명이라고 해야 좋을 이 한 편의 시와 만남은 이후 나의 서예작업을 더욱더 풍요로운 곳으로 이끌었습니다.”

 

윤동주의 맑고 투명한 시어들이 다나카 씨의 손끝에서 하나의 예술로 꽃을 피웠다. 한글을 익힌 뒤부터 그의 서예작품은 주로 현대 일본에 드리워진 사회문제를 작품의 소재로 삼았다. 일본의 민족차별 문제나 공해문제 더 나아가 한일관계의 역사적인 문제를 포함하여 윤동주, 송몽규, 안중근, 김구, 한용운 등의 어록이나 시를 서예작품으로 남겼다.

 

한글을 사랑하고 한국과 한국인을 사랑한 그가 숨지자 지난해 숨지자 그를 사랑하던 한일 두 나라 사람들이 그의 1주기를 맞이하여 추모문집을 만들었다. 12월 13일(금), 다나카 유운 씨가 숨진 그날을 기억하기 위해 연세대학교 언더우드 별채에서 조촐한 추모회를 열예정이다.

 

서가(書家) 故 다나카 유운 선생 추모·문집 발간기념회안내】

*곳: 연세대학교 언더우드 별채

*때: 2019년 12월 13일(금) 오전 11시

 

 

 

두 나라가 진정한 평화와 사랑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되길

[대담] 다나카 유운 씨 <추모문집>을 내는 이은정 씨

 

 

- 다나카 유운 선생 추모회를 열게 된 계기는?

 

  “이번 연세대학교에서 12월 13일 갖는 추모회 정식 명칭은 “서가(書家)  고 다나카 유운 선생 추모ㆍ문집 발간기념회” 입니다. 추모모임은 다나카 선생이 사셨던 일본 도치기현에서 별도로 하기 때문에 이번에는 다나카 선생을 기리는 추모문집 발간기념회 성격이 큽니다. 추모문집을 만들게 된 계기는 서예가 다나카 유운 선생과 오랜 인연을 맺고 있던 고희탁 대표(제주위클리)께서 추모문집 제안을 해준 게 계기입니다. 지난해 말 다나카 선생이 세상을 떴다는 갑작스런 부고를 받고 충격이 컸던 고희탁 대표와 저를 포함한 많은 분들이 고인과의 사랑과 추억을 담은 문집 발간에 동의하여 흔쾌히 추모글을 보내주셨습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1주기에 맞춰 추모문집 발간기념회를 열게 되었습니다.“

 

- 이은정 선생과 다나카 유운 선생과의 인연은?

 

  “2012년 제7회 윤동주 문학제 때 청운동 시인의 언덕에서 다나카 선생의 작품 전시회가 열린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전시와 관련한 연락 등을 맡으면서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뒤 다나카 선생이 한국에 오실 때 통역을 맡았으며 선생의 기고문 등을 한국어로 번역하여 한국 문예지에 싣도록 도왔습니다.”

 

- 다나카 유운 선생은 어떤 분인가요?

 

  “다나카 선생의 어머니는 한 때 한국에서 지낸 적이 있는 분입니다. 그때 너무 어려운 상황에서 한국인들의 따뜻한 돌봄을 가슴속에 품고 있었는데 다나카 선생 자신이 그 은혜를 갚고 싶지만 그것은 실현할 수 없는 일이기에 한글로 서예를 써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신 것 같습니다.

 

다나카 선생은 시인 이바라기 노리코(茨木のりこ)의 <한글로의 여행>이라는 책을 통해 윤동주 시인의 시를 접하게 된 이래 윤동주 시인 시정(詩情)에 큰 감명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 뒤로 한국 시인의 시와 어록을 한글원문과 일본어번역문을 섞어서 서(書)로 써오셨습니다. 또한, 한글 서예를 통해 한국 사람들에게 속죄의 마음을 전하겠다는 의지로 오래 전부터 한글을 배워 오셨습니다. 한마디로 한국을, 한국인을, 한글을, 사랑한 분이셨습니다.“

 

- 이번 추모문집에 글을 실게 되는 분들을 소개하면?

 

  “다나카 유운 선생은 생전에 윤동주 시인의 시를 사랑하여 한글을 서예로 쓰시고 그 작품을 ‘고통을 함께 하는 삶의 지평(共苦의 地平)’이라는 주제로 전시회를 정기적으로 열어 오셨습니다. 전시회를 통해 한국분들과도 많은 인연을 맺게 되셨는데 이번 문집에 글을 싣는 분들은 평소 다나카 선생과 인연이 있던 일본과 한국의 지인들 34명입니다. 특히, 일본 도쿄에서 ‘시인 윤동주를 기념하는 릿쿄 모임(詩人尹東柱を記念する立教の会)’을 이끄는 야나기하라(楊原泰子) 씨와 다나카 유운 선생이 젊은 시절, 근무했던 사노시청(佐野市役所) 후배인 모테기 카츠미(茂木克美)씨께서 일본 분들께 취지를 설명하고 글을 모아주셨습니다.

 

이번 추모문집 발간기념회에는 문학평론가 김우종 교수를 비롯하여, 릿쿄회 야나기하라 야스코 씨, 릿쿄대학에서 사제로 지내시고 현재는 오사카(大阪)에서 사제로 계시는 성공회 유시경 신부, 송우혜 작가, 이상면 교수(수채화 화가, 연세대교수), 그리고 다나카 유운 선생과 공동 전시회를 기획했다가 뜻을 이루지 못한 홍순관 선생((작가, 싱어송라이터)등이 참여할 예정입니다.“

 

- 이번 추모회를 계기로 한국인에게 하고 싶은 말은?

 

  “한국을 사랑한 서예가 다나카 선생은 윤동주 시인의 ‘사람이 되지’라는 글귀에 감동하여 평생 ‘참된 사람이 되는 길’에 대해 고민했던 분입니다. 최근 한・일간의 어려운 관계가 지속되어 마음이 무겁지만, 이번 추모문집 펴냄을 계기로 다나카 선생이 고민해왔던 고통을 함께 하는 삶의 지평<다나카 선생의 서(書) 작품전 제목 (공고의 지평, 共苦의 地平)>을 나누면서 두 나라가 사람과 사람으로서 진정한 평화와 사랑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