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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

조선시대 14살 소녀의 온 나라 유람기와 소설

[맛있는 서평] 용의 고기를 먹은 소녀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19]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만약 당신의 14살 딸이 혼자서 몇 달 동안 전국을 유람하며 다닌다고 한다면 허락하시겠습니까? 뭐라고요? 학교 빠지고 유람하는 것을 누가 허락하겠냐고요? 아! 그렇지요. 학생이 몇 달 동안 학교 땡땡이치고 돌아다니는 것을 허락할 부모는 없겠군요. 그럼 방학 기간이라면 허락하겠습니까? 이 역시 허락하겠다고 선뜻 손을 들 부모는 많지 않을 것 같네요. 그런데 여러 여건상 남자도 여행이 자유롭지 못하던 조선 시대에 이렇게 혼자서 전국을 유람하며 다닌 14살 소녀가 있었습니다. 물론 남녀유별이 엄격하던 시대라 남장을 하고 다녔지만요.

 

그 소녀는 바로 원주 출신의 금원 김씨(1817 ~ ?)입니다. 금원은 진사 시험에만 통과했을 뿐 계속 과거에서 미역국을 먹은 아버지와 그 아버지가 집에 들어앉힌 기생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금원은 아버지에게 글을 배우면서 넓은 세상에 눈을 뜹니다. 그런 금원에게 삼종지도(三從之道)에 따라 살아가야 하는 조선 여인의 운명은 참을 수 없는 것이었지요. 그리하여 금원은 14살이 되어 이제 자신도 곧 부모님이 정해준 혼처를 따라가야 하는 시기가 눈앞에 다가오자, 그 운명에 묶이기 전에 집을 박차고 떠납니다.

 

처음에는 부모를 졸라 제천 의림지까지만 갔다 오는 것을 허락받은 금원이지만, 한 번 내디딘 발걸음을 거기서 멈출 수는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발길을 내쳐달려 금강산과 관동팔경을 돌고, 다시 발길을 서북쪽으로 돌려 국경지대인 압록강의 의주까지 갑니다. 이렇게 산천유람을 하고나니, 금원은 다시 임금님이 살고 있는 한양도 돌아보고 싶은 마음을 억누를 수 없었습니다. 하여 다시 발길을 남쪽으로 돌려 한양 일대를 두루 돌아본 후에야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금원은 단순히 자신의 발길 닿은 곳을 눈에만 담지 않고, 자신의 시로 이를 영원히 담았습니다. 바깥세상으로 나와 처음 만난 의림지에서는 이런 시를 남겼습니다.

 

池邊楊柳綠垂垂(지변양류녹수수)  못가 수양버들 푸른 가지 드리우는 데

黯黮春愁若有知(암담춘수약유지)  암담한 봄 시름을 아는 듯하네

上有黃鸝啼未已(상유황리제미이)  나뭇가지 위 꾀꼬리 우는 것 그치지 않으니

不堪惆愴送人時(불감추창송인시)  임 보내는 때 서글픈 맘 감당키 어렵네

 

마침내 세상 밖에 나왔다는 기쁨도 있지만, 의림지에 만족하지 못하고 부모를 속이고 다시 더 먼 세상으로 발길을 내딛는 금원의 서글픈 마음이 담긴 시일까요? 이런 금원은 한양 도성에 거의 다 와서는 또 이런 시를 남깁니다.

 

春雨春風未暫閒(춘우춘풍미잠한)  봄비와 봄바람 잠시도 한가할 사이 없는데

居然春事水聲間(거연춘사수성간)  어느덧 봄날의 사연은 물소리 사이에 있구나

擧日何論非我土(거일하론비아토)  눈 들어 보는 곳 어찌 내 고향 아니라고 하겠는가

萍遊到處是鄕關(평유도처시향관)  부평초처럼 떠돌다 이르는 곳 또한 모두 고향이라네

 

요즘의 14살 소녀라면 그저 기쁨과 환희의 기록을 남기겠지만, 엄격한 신분제 사회인 조선에서 자신의 신분을 속이기 위하여 남장을 하고 홀로 외로이 다녀야 하는 소녀의 가슴에서는 이런 시가 흘러나오는군요. 이런 금원의 삶이 소설가 박정애의 눈에 꽂혔습니다. 그리하여 금원의 삶이 박정애 소설가의 상상의 옷에 덧입혀져 세상에 나온 것이 소설 《용의 고기를 먹은 소녀(박정애, 창비, 2015)》입니다. 그런데 제목이 왜 ‘용의 고기를 먹은 소녀’일까요? 소설에서 금원 집안의 주치의인 허의원은 ‘용의 고기를 먹어보지 않고 어찌 이야기로 고기 맛을 알겠느냐’고 합니다. 이 말을 가슴 속에 새긴 금원이 직접 용의 고기를 먹어보기 위해 일상에서의 탈출을 감행한 것이어서 박작가는 이를 소설 제목으로 한 것이지요.

 

그런데 박작가는 무엇을 근거로 이런 소설을 썼을까요? 바로 금원의 여행기 《호동서락기(湖東西洛記)》를 토대로 소설을 쓴 것입니다. 금원은 여행을 마치고 난 지 20년이 지나 호동서락기를 썼습니다. 자칫 조선의 여인으로는 유일하다고 할 14세 소녀 여행기록이 그저 자신의 머릿속에만 있다가 사라질까봐, 기억을 더듬어 늦게나마 여행기를 남긴 것이지요.

 

'湖'는 의림지 일대, '東'은 관동지방, '西'는 관서지방, '洛'은 낙양(한양) 일대를 뜻하여 제목을 정한 것입니다. 박작가는 이 여행기를 토대로 앵두라는 가공의 가마잡이꾼 소년도 등장시켜 소설을 이끌어나갑니다. 소설에서 금원이 남장여자임을 알아챈 앵두는 금원을 금강산으로 데려가 비적 두목에게 넘기려다가, 금원을 사랑하게 되면서 이를 단념합니다. 오히려 금원을 보호하려다가 비적의 칼에 목숨을 잃지요.

 

넓은 세상을 보고 집으로 돌아온 금원은 이젠 얌전하게 부모가 정해주는 혼처를 따라갈 수는 없었습니다. 그 후 금원은 어머니처럼 관기로 들어갔다가 1845년 김덕희의 소실이 됩니다. 그리고 남편의 배려로 서울 용산에 삼호정(三湖亭)이라는 정자를 짓고 자신의 처지와 비슷한 여자들과 교류를 합니다. 단순히 여인네들끼리 웃고 떠들며 소일한 것이 아니라 ‘삼호정시사(三湖亭詩社)’라는 시회(詩會)를 결성하여 시로서 교류하지요. 최초의 여류시단이라고나 할까요. 이런 여류시인들의 모임이 알려지면서 사대부 문인들과도 교류하고요. 이 모임에는 제가 《다섯손가락》 책에 썼던 운초 김부용도 나옵니다. 전에 천안 광덕산에 갔다가 광덕산 자락에 잠든 운초의 무덤을 보고 글을 쓴 것이었는데, 운초도 삼호정시사에 나왔다고 하니 반갑네요.

 

예전에 원주 역사박물관에 갔다가 김금원이라는 인물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자료로만 알던 금원을 소설로 보게 되니, 훨씬 금원이란 인물이 생동감 있게 다가오네요. 제가 금원과 동행하여 호동서락을 다니는 기분도 나고요. 엄격한 신분제 사회 조선에서 14살에 세상 밖으로 뛰쳐나왔던 금원! 당신을 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