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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연낙재에서 열린 ‘중고제 악가무’ 토론회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451]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성기숙 교수가 대표로 있는 한국춤문화유산기념사업회가 주최ㆍ주관한 학술세미나가 지난 12월 18일 오후 대학로에 있는 연낙재 세미나실에서 있었다. 3층 계단을 오르면서 벽에 붙어있는 각종 포스터며 프로그램, 그리고 양옆으로 쌓여있는 동 연구소의 발간물들을 보면서 매우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학술단체라는 인상을 받았다. 주제를 발표하고, 토론하는 세미나실은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약 40여 명이 둘러앉아 각자의 의견을 토로하기에는 불편하지 않은 공간이어서 인상적이었다.

 

이날의 주제는 <중고제 전통가무악의 가치 확산>이었으며, 기조발제는 필자의 <중고제(中古制) 전통가무악의 의의>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각 주제와 발표자들은 <한성준 피리 시나위에 대한 음악적 연구 - 이진원>, <중고제 전통예인 심상건ㆍ심태진의 미국활동 - 성기숙), <무형문화재 보존과 계승에 있어 유파의 중요성 - 손태도>, 전통가무악 전승자 포럼에서는 <심화영류 승무 - 이애리>, <심화영 판소리 전승과정 - 이은우>, <서산농악 볏가리애의 전승과 장단 구성 - 이권희> 등의 순서였다.

 

주제별로 발표가 끝난 뒤, 서원대 윤덕경, 제주도립무용단 배상복, 경기도립무용단 김충한, 국립한체대 김기화, 한국예술종합학교 이정희ㆍ양옥경 등의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새로운 많은 정보를 대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얼핏 들었던 "토론은 지식을 교환하는 것이고, 말다툼은 무식을 교환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상기되는 모임이었다. 그래서 이번 주 속풀이에서는 세미나 자리에서 필자가 발표한 중고제와 관련한 이야기들을 두서없이 해보도록 한다.

 

 

우선, ‘중고제(中古制)’란 무슨 말인가? 또 어떤 사람은 중고제의 <고>를 옛 고(古)자가 아닌, 높을 ‘고(高)’ 자를 써서 ‘중고제(中高制)’라고도 쓴다. 이 용어의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점부터 확인할 필요가 있다.

 

1939년, 조선일보사 출판부가 펴낸 정노식의 《조선창극사(朝鮮唱劇史)》라는 책에는 판소리를 <창극조>라는 이름으로 적고 있는데, 판소리의 큰 가닥으로 동편제, 서편제, 그리고 중고제 등으로 구분하고 있다. 그러나 대체로 동(東)과 서(西)로 나누고, 중고제는 극히 적다고 하였다.

 

동편제는 우조를 주장하여 웅건(雄建)ㆍ청담(淸談, 속되지 않고 말고 고상함)하게 부르는 소리조로 호령조가 많고, 발성 초기는 썩 진중하고 구절(句節)의 끝마침을 꼭 되게 하여 쇠마치로 내려치는 듯하다고 표현하고 있다.

 

반면에, 서편제는 계면을 주장하여 연미(軟美, 부드럽고 아름다움)ㆍ부화(浮華, 실속 없이 겉만 화려함)하게 하고, 구절 끝마침이 길어 꽁지가 붙어 다니는 것 같다고 장단 끝의 차이를 재미있게 표현하고 있어 대조를 보인다.

 

그런가 하면 느낌의 차이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곧 동편의 멋이 담담해서 채소맛에 견준다면, 서편은 그 변화가 고기맛이라 했고, 동편의 형상이 천봉월출(千峰月出), 다시 말해 높은 산봉우리에 달이 솟는 형상이라면, 서편은 만수화란(萬樹花蘭), 곧 많은 나무에 꽃이 활짝 핀 듯한 형상이라는 재미있는 대조를 하고 있다. 동편과 서편의 설명 뒤에 중고제에 관한 설명이 나오는데, 이는 동편도 아니고, 서편도 아닌 그 중간이지만, 비교적 동편에 가깝다고 보고 있다.

 

 

판소리 동편제의 유래는 송흥록의 법제를 표준으로 운봉ㆍ구례ㆍ순창 지역을 동편제 지역으로 보고, 서편제의 유래는 박유전의 법제를 표준으로 광주ㆍ나주ㆍ보성 지역을 서편제의 지역으로 보고 있었으나, 이후에는 지역의 표준을 떠나서 소리의 법제만을 표준으로 분파되었다.

 

이러한 동서편에 견주어, 중고제는 염계달, 김성옥의 법제를 많이 계승하여 경기ㆍ충청 간에서 대부분 유행하는 소리제라고 밝히고 있으며, 김성옥의 소리제는 그의 아들 김정근(金定根)에게 이어졌다고 적고 있다. 이어서 김정근의 소리는 그의 아들 김창룡(金昌龍)과 황호통(黃浩通)에게 전승되었다고 하는데, 황호통의 소리는 단절되었다고 한다. 중고제를 이은 김창룡은 한때 이날치에게 배운 적도 있어서 그의 소리 속에 서편제 소리가 조금이라도 섞였을 가능성이 있으나, 김창룡의 소리제는 그의 부친인 김정근이 지닌 중고제의 특색을 많이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김창룡이 이어온 중고제 소리는 전라도 지역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했으나, 서울ㆍ경기도의 중부지역과 평양에서는 중고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이처럼 경기지방이나 충청지방에서 활발하게 불렸다고 하는 판소리 중고제의 음악적 특징은 대체로 평탄하게 부르는 평조(平調) 대목이 많고, 정가풍의 창법이 많이 쓰인다는 점이다. 여기서 정가풍이란 옛 선비들이 즐겼다고 하는 가곡이나 가사, 시조와 같은 음악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리고 중고제의 특징은 장단을 달아놓고 창조(도섭)로 부르는데, 노래라기보다는 마치 글을 읽듯, 급히 몰아가는 것이 특징이고, 창법은 동편과 서편의 중간적인 창법을 구사한다는 점이다. 또한, 노랫말을 선율에 붙이는 부침새 또한, 비교적 단순하게 구사하는 소리제라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옛 명창들의 중고제 소리는 음반에만 담겨있을 뿐, 실제의 전승은 이미 끊어진 상태라는 점이 안타깝다. (다음 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