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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내 부처가 아니다> 서암 큰스님 법어집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지나간 세상은 흘러간 송장이요, 앞으로 올 세상은 지금과 상관없는 미래지사예요. (중간줄임) 직장생활을 하고 돈 벌고 하는 것들은 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다 살려고 하는 것이지요. 그러면 이 세상 산다는 뜻이 어디 있겠는가. 고깃덩어리 백 년 동안 꿈틀거리다 가는 그게 과연 참 삶이냐 말입니다. 그대로는 백년 사나 이백년 사나 깨진 독에 물 붓기입니다. 하루를 살더라도, 한 찰나를 살더라도 사는 이치를 알 때 영원히 사는 빛나는 인생을 맛볼 수 있습니다.”

 

이는 서암 스님의 법어(法語) 가운데 하나다. 서암 스님의 법어집 《그건 내부처가 아니다》(2013. 정토출판)을 읽으며 한 말씀 한 말씀이 옥구슬이란 느낌이 든다. 흔히 좋은 문장을 주옥(珠玉) 같다고 하는데 서암 스님의 법어가 거기에 딱 맞는 말이다. 어느 구절을 펴도 공감이 가는 말들로 그득하다.

 

“우리는 위대한 마음의 힘을 계발하지 못하고 몇 푼어치 안 되는 현대문명에 현혹되어 몸과 마음이 약해져 온갖 병 속에 쩔쩔매며 산다. 잘 먹고 전 세계를 돌아다닌다해서 행복한 게 아니다. 조용히 앉아서 내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나를 보는 게 중요하다.”

 

방학만 되면 아이들과 스페인이니 동유럽으로 떠나 대단한 벼슬이라도 한양 알록달록한 가족 사진을 보내오는 지인을 보면서 ‘그게 뭐 대수냐?’ 싶었는데 서암 스님도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있었나보다.

 

서암 스님은 이 책에서 종종 비유를 들고 있다.

 

“한번은 가난한 집에 도둑이 들었다. 훔쳐 갈 거라고는 부엌에 솥단지 하나라서 차마 그걸 떼어가지 못하고 솥 안에 훔친 돈을 두고 간 도둑이 있었다. 다음날 아침 솥뚜껑을 열어본 주인은 자기 돈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동네에 돈의 임자는 찾아가라는 방을 써 붙였다” 라는 이야기다. 참으로 고전 속에서나 볼 듯한 이야기지만 서암 스님은 “솥 주인은 마음이 너그럽고 편안한 사람”이라고 했다.

 

내 솥 안에 넣고 간 돈은커녕 남의 주머니에 있는, 남의 창고에 있는 돈을 어떻게든지 훔치려고 한바탕 소란스러운 것이 요즘 세상이다. 그렇게 해서 모든 불행이 시작되는 것이란 걸 스님은 나직한 목소리로 타이르고 있다.

 

“자기 혼자 생각을 일으켜 부아를 내고, 더우면 땀이 철철 나고, 추우면 떨리고, 배가 고프면 잔뜩 먹고 나서 배불러 씨근덕거리고, 이 몸뚱이를 누가 건드리지 않아도 자기 스스로 짜증 내는 게 중생” 이라는 지적에서는 꼭 필자를 두고 하는 말 같아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서암 스님은 1914년 경북 풍기에서 태어났으며, 법명은 홍근(鴻根), 법호는 서암(西庵)이다. 1993년 12월 대한불교조계종 제8대 종정으로 추대되어 140일 만인 1994년에 사임하고 종단을 떠났다. 2003년 3월 29일 세수 90세. 법랍 75세의 일기로 봉암사에서 입적하였으며, ‘그 노장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갔다고 해라’는 열반송을 남겼다.

 

한편, 서암 스님은 “한국의 최고의 선승, 겉치레에 연연하지 않고 한 평생 문중도, 자기 절도 없이 수행자로만 살았다. 1978년 이후 봉암사 조실로 추대되어 낙후된 가람을 전국의 납자 100명이 결제에 들수 있도록 대작불사를 이끄는 한편 일반 관광객의 출입을 금지시키고 엄격한 수행 기풍을 진작해 봉암선원을 조계종 특별종림선원”으로 만든 분이다.

 

서암 스님의 유명한 법어,

 

여보게!

어떤 한 사람이 논두렁 아래 조용히 앉아

그 마음을 스스로 청정히 하면

그 사람이 중이요

그 곳이 절이지

그리고 그것이 불교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