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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

초대 프랑스 공사 콜랭과 《직지심체요절》

박병선 박사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직지심체요절》 찾아내다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24]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초대 프랑스 공사 콜랭 드 플랑시는 리진의 연인이었다는 것만이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아닙니다.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로 찍은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이 있지 않습니까? 서양의 구텐베르크 성서보다 78년 먼저 인쇄되었다고 우리가 자랑하는 불교서적 말입니다. 이 《직지심체요절》을 콜랭이 프랑스로 가져갔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이 서양놈이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를 약탈해갔구나”라고 생각하실 분도 있겠습니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이 책은 콜랭이 골동품상에게 값을 치루고 산 것입니다. 당시 조선에 온 콜랭은 동양문화에 관심이 많아 기회가 되는대로 우리의 책과 미술품 등을 사들였다는군요. 콜랭이 그렇게 수집한 책 중에 이런 귀한 책이 있었던 것인데, 당시에는 이 책을 산 콜랭이나 이를 판 상인이나 그저 고서(古書)로만 생각하고 사고판 것이지, 이 책이 그렇게 귀한 책이라는 것은 몰랐습니다.

 

 

이 책의 진가를 알아본 사람은 한국인입니다. 이 책을 프랑스로 가져간 콜랭은 1911년 이 책을 고서 경매장에 내놓아, 이를 골동품 수집가인 앙리 베베르가 샀습니다. 그리고 앙리는 죽을 때 이 책을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기증하였습니다. 그 뒤 1967년부터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던 박병선 박사가 1972년 서고에서 세계 도서의 해에 전시할 책을 고르다가 이 책을 발견하였습니다. 박 박사는 책의 마지막 장에서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 활자로 인쇄하였다는 내용을 발견하고 이를 세상에 알린 것입니다.

 

그렇지만 구텐베르크가 인쇄한 성서가 세계 첫 금속활자 책이라고 믿고 있던 서양인들은 이를 쉽게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박병선 박사의 끈질긴 연구에 유럽인들도 손을 들지 않을 수 없었고, 그리하여 유네스코도 2001년 9월 《직지심체요절》은 세계기록유산으로 올랐습니다.

 

 

《직지심체요절》을 세계기록유산에 올리는 데에는 청주시의 노력도 컸답니다. 《직지심체요절》이 청주 흥덕사에서 인쇄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청주시에서는 철저한 고증 끝에 흥덕사 터를 찾아내어 그곳에 고인쇄박물관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청주시를 직지의 도시로 널리 알리려는 노력의하나로 《직지심체요절》을 세계기록유산에 올리는 데에도 힘을 쏟았겠지요.

 

이런 귀한 책이니 우리나라로서는 당연히 돌려받고싶겠지요? 그러나 프랑스가 이를 내놓으려고 하겠습니까? 프랑스가 병인양요 때 강화도에서 약탈해간 외규장각 도서는 자기들도 할 말이 없으니까, 영구임대라는 형식으로 생색을 내며 돌려주었지만, 콜랭이 값을 주고 사 간 《직지심체요절》을 내놓을 리 만무합니다. 그저 그런 귀한 책인 줄 모르고 내준 우리가 바보인 거지요.

 

그래서 신 작가는 소설에서 《직지심체요절》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지만, 리진의 입을 통하여 프랑스의 문화재 약탈에 대해서 비판합니다. 루부르 박물관에서 수많은 중동과 이집트, 그리스의 문화재를 본 리진이 이들 문화재가 그들 나라에 있지 않고 왜 여기에 와 있냐며 콜랭과 설전을 벌이는 것이지요.

 

이래저래 콜랭은 리진을 통해서, 또 《직지심체요절》을 통해서 우리와 인연이 깊은 프랑스 외교관이 되었군요. 그나저나 저는 콜랭이 과연 리진을 진심으로 사랑했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단순히 고요한 아침의 나라 조선의 여인을 손에 넣었다는 우쭐함이나 성취감만 앞섰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만약에 콜랭이 진심으로 리진을 사랑하였다면 어떻게 하든 고종에 호소하거나 프랑스 정부의 힘을 빌려서라도 리진을 데려갔어야 할 것입니다. 리진이 금종이를 삼킴으로 삶을 마감한 데에는 콜랭의 잘못도 크다는 생각입니다. 콜랭! 왜 리진을 데려가지 않았소! 당신이 리진을 그렇게 두고 가면 리진이 어떤 선택을 하리라는 것을 짐작하지 못했단 말이오? 야속하구려. 야속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