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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새해 초 명함 대신 세함에 이름을 써두었다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258]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우리 겨레는 설날 아침이면 일찍이 남녀노소가 설빔으로 갈아입고, 차례를 지낸 뒤에 할아버지ㆍ할머니, 아버지ㆍ어머니 등 집안 어른에게 세배한 다음 일가친척과 이웃어른을 찾아가서 세배를 드렸습니다. 요즘엔 직장인들이 회사 윗사람을 찾아가서 세배를 드리기도 하지요. 그런데 조선시대엔 새해 초 대문 안에 세함(歲銜)을 두는 풍속이 있었습니다. 홍석모(洪錫謨)의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각사의 서리배와 각영의 장교와 군졸들은 종이에 이름을 적어 높은 관원과 선생의 집에 들인다. 문 안에는 옻칠한 소반을 놓고 이를 받아두는데, 이를 세함(歲銜)이라 하며, 지방의 아문에서도 이러하였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또 김매순(金邁淳)이 한양(漢陽)의 세시풍속에 대해 쓴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 따르면, 설날부터 정월 초사흗날까지는 승정원과 모든 관청이 쉬며, 시전(市廛) 곧 시장도 문을 닫고 감옥도 비웠다고 합니다. 이때는 서울 도성 안의 모든 남녀들이 울긋불긋한 옷차림으로 왕래하느라고 떠들썩했다고 하며, 이 사흘 동안은 정승, 판서와 같은 높은 관원들 집에서는 세함만 받아들이되 이를 문 안으로 들이지 않고 사흘 동안 그대로 모아 두었다고 하지요.

 

세함은 지금의 방명록(芳名錄) 또는 명함과 비슷한 구실을 합니다. 흰종이로 만든 책과 붓ㆍ벼루만 책상 위에 놓아두면 하례객이 와서 이름을 적었습니다. 설이 되면 세배 등의 까닭으로 집을 비울 수 있는데, 이때 세함을 놓고 가면 누가 다녀갔는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요즘 쓰는 명함이나 방명록과 달리 설날 무렵에만 쓰므로 새해 ‘세(歲)’ 자를 써서 세함(歲銜)이라 부르지요. 이때 방문객이 세함을 놓고 갈 뿐 마중하고 배웅하는 일이 절대 없는데 이는 정초에 이루어지는 각종 청탁을 아예 막을 수 있고, 먼 곳에 세배하러 가야 하는 사람들이 세배받을 사람이 자리에 없어서 허탕 칠 일이 없는 것입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참 좋은 풍습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