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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정치를 편 ‘세종의 길’ 함께 걷기

사람 만나는 대면 정치와 권도

[생각의 정치를 편 ‘세종의 길’[行道] 함께 걷기 39]

[우리문화신문=김광옥 명예교수] 

 

사람을 직접 몸으로 만나다

 

세종의 사맛[커뮤니케이션]의 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과 의논을 하더라도 마지막에 결정을 내려야 하는 사람은 임금이고 그 일이 임금의 직이다. 이때 결정은 개인이 하는 것인가 국가가 하는 것인가. 여기서 국가가 한다면 이는 법과 제도가 정해 주는 결정일 것이다. 그리고 임금은 법에 정해진 규정에 따라 대신 집행할 뿐이다.

 

그런데도 이미 법에 정해진 죄인의 처벌이나 세금 징수 같은 일 이외에 창제적으로 행하는 일 곧 기존 제도나 규정에 없는 새로운 일을 할 때 세종의 성정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이 모든 일은 사람을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누는 데서 시작한다.

 

소통[커뮤니케이션] 가운데 가장 효과가 높은 방식은 대면 커뮤니케이션이다. 대면이란 얼굴을 맞대고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 그래서 산업발전기인 70~90년대에는 직장에서 일이 끝나면 술로 1차~3차까지 어울리며 필요한 말 필요 없는 말 다 늘어놓으며 친밀을 다졌고 이윽고 술이 끝나면 노래방에서 다시 어울리고 그것도 모자라 목욕탕으로 가서 벌거벗은 몸을 서로 확인하면서 우리는 가릴 것 없이 서로를 알고 지내는 한 가족이라고 위안을 삼으려 했다. 이렇듯 얼굴만이 아니라 벌거벗은 몸으로 만나는 대면 커뮤니케이션은 소통 방식 중 가장 친밀함을 보이는 방식이다.

 

세종은 관리들이 임지로 떠날 때 직접 만나 당부한다.

 

“각 도 감사의 수령에 대한 포폄(褒貶, 칭찬하고 벌함)이 맞지 않으니, 대개 편하고 속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을 유능한 것으로 평가하여 드디어 실질적인 혜택이 백성에 미치지 못하게 합니다. 바라건대, 이제부터 수령으로 새로 제수되는 자는 전하께서 반드시 친히 만나시어 현부(賢否, 나타남과 나타나지 않음)를 살피신 연후에 부임하게 하면 수령은 올바른 사람을 얻게 되고 백성은 실제의 혜택을 받게 될 것입니다.”(《세종실록》원년/1/30)

 

 

변계량ㆍ정초 등 정승들이 국가 경영의 기본은 수령의 인사에 있다고 파악하고 이를 건의한 것이다. 이는 실제 백성과 만나는 행정 최일선이 수령이라고 여겨 이를 효율적으로 운영하고자 했다.

 

친히 보기[引見] : 지함양군사 최덕지(崔德之) 등을 인견하고 이르기를, “이전에는 다만 2품 이상인 수령만을 접견하였으나, 내가 자세히 생각하여 보니, 시골의 먼 곳을 내가 친히 가서 다스리지 못하고 어진 관리를 선택하여 나의 근심을 나누어 주어 보내는 것이니, 그 임무가 가볍지 않다. 그런 까닭에 2품 이하의 수령도 또한 친히 보고 보내도록 하였다.(《세종실록》 7/ 12/10)

 

세종은 수령을 임지로 보내며 만나 당부한다.

 

수령 : (지인천군사 경지(慶智)등에게) 지금의 수령은 곧 예전의 제후(諸侯)다. 백성의 일을 내가 친히 맡아 볼 수 없으므로 그대들을 뽑아서 보내는 것이니, 그대들은 나의 마음을 몸 받도록 하라. 그리고 백성들은 항심(恒心, 늘 지니고 있어 변함이 없는 떳떳한 마음)이 없으므로 아껴 쓰지 못하니 그대들은 백성들에게 아껴 쓰는 것을 가르치고 또 농상(農桑, 농사일과 누에 치는 일)을 권하여 생활을 즐겁게 하라.(又勸農桑, 使樂其生,)(《세종실록》 9/12/12)

 

수령은 그 지역의 통치자다. 그 지역에서 임금을 대신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나의 마음을 알아 그 뜻을 몸으로 실천해야 한다. 수령 파견 뒤는 후속 작업으로 지방에 감사를 보낸다.

몸으로 ‘친히 본다’는 정신은 세종의 사맛[커뮤니케이션] 정신으로 대면정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결정의 방식: 법[規]. 경, 권도, 독단

 

일반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기준에는 제도와 법[規]이 있다. 이는 경(經)의 범위에 속한다. 그리고 관례에 따라 임금이 처리하는 결정이 있는데 이것이 권도이다. 그리고 권도 가운데 특이하게 규칙을 벗이나 임금이 결정하는 일이 있는데 이것이 독단이다. 임금은 마지막 결정을 내려야 하는 위치에 있다. 그리고 책임을 져야 한다. 기본적으로 토론을 거치지만 확신이 가는 일은 권도로서 독단 처리하게 된다.

 

권과 경: 법은 융통성[權]과 원칙[經]중에서 그 어떤 한 가지만을 고집할 수 없다.(《세종실록》 25/10/12)

 

권도 : 그대들은 법으로서 말했지만 나는 권도(權道)로서 행한 것이다. (《세종실록》14/12/17)

 

독단(獨斷) : 무릇 일이 의심나는 것은 여러 사람에게 의논하지만, 의심이 없는 것은 독단으로 하는 것이다. (《세종실록》30/7/18)

 

내가 여러 가지 일에 있어서 여러 사람의 의논에 좇지 않고, 대의(大義)를 가지고 강행하는 적이 자못 많다고 고백한다. 독단으로 그 가운데는 수령육기(守令六期, 수령은 한 지역에서 10개월씩 6년 근무)나 양계축성(兩界築城, 평안, 함경도의 성쌓기)((세종 26/윤7/23)을 비롯하여 공법(貢法), 불교, 양녕 형님에 관한 것들이 있다.

 

이 가운데 한 가지 예가 있다. 세종 16년 9월 각도에 대신을 파견하여 군용을 점고[점검]할 것을 중지해 달라고 사간원에서 상소한다. 이에 대해 세종 권도로 답한다.

 

요약하면 “불우(不虞 뜻밖의 일)를 방비함은 나라를 위하는 떳떳한 법[規]이고, 흉풍을 살펴 때에 맞추어 조처함은 나라를 다스리는 큰 권도(權道)[大權]이니, 나라를 위하는 벼리[經, 주요 줄기가 되는 뼈대]]가 어느 때 변함이 있으면 나라를 다스리는 권도[權]도 때에 따라 나오니, 이는 고금과 천하에 경을 지키고 권을 행하는 데 있어 한쪽도 폐할 수 없는 것이다. 이제 국가에서 해마다 사신을 보내어 군용(軍容)을 찾아다니며 점검함은 나라를 위하여 불우를 방비하는 떳떳한 경(經)입니다.”이다.

 

위에서 보면 통치의 규례로는 법[規]과 권도[大權] 그리고 벼리[經]가 있다. 벼리는 일반적 제도와 관행 그리고 법은 정해진 규칙 그리고 권도는 제도와 관행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라 할 수 있다. 임금이라 하여 법을 안 지킬 수 없다. 법을 벗어나려면 먼저 그 법을 합리적으로 고치고 난 이후일 것이다.

 

한마디로 군사 태세를 점검해야 하는데 흉년이 들었으니 전하께서 권도(權道)로 전례에 따라 그 도의 감사가 군사상태를 점검하게 하고, 대신을 파견하는 명을 거두시면 민생에 도룸이 될 것이라 한다. 이에 세종은 “만약 흉년 때문에 정지하였다가 가령 명년에 또 흉년이 든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법을 세운 지 얼마 되지 아니하여 이내 또 고치면, 이는 이른바, ‘조선 공사(朝鮮公事)는 사흘에 지나지 아니한다.’”고 말씀한다.

 

신하와 임금의 시각의 차이라 할 수 있다. 당장 어려운 일의 회피와 국가라는 주체에 대한 의식의 차이로 당장의 편의와 나라라는 크고 먼 국체에 대한 신하와 임금의 시각차이라 할 것이다.

 

임금은 외로운 결정을 할 때가 있고 개인의 감정으로 통치할 수 없는 자리임을 확인할 수있다. 정에 쏠리지 않는 세종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