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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판소리 중고제와 심상건의 가야금 산조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457]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심상건의 충청제 산조와 김창조 계열의 남도제(南道制) 산조의 서로 다른 특징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남도제 산조란 19세기 말, 가야금 연주자인 전라도 영암의 김창조가 처음으로 만들어 탄 산조로 우조-평조-계면의 진행이지만, 충청제는 평조-우조-계면조라는 점을 말했다.

 

또한, 충청제 산조는 평조와 경드름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데, 경드름이란 서울ㆍ경기지방의 음악 어법으로 경기ㆍ충청지역을 기반으로 해 온 중고제 판소리의 특성이 심상건의 산조 음악에도 영향을 주었다는 점, 심상건의 산조음악은 남도제 산조의 계면처럼 슬픔의 느낌이 깊지 않다는 점, 또한 순차적 하행 선율형과 빠른 장단의 한배, 등이 남도제 산조와 다르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밖에도 심상건의 충청제 산조와 김창조계열의 남도제 산조는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많은 차이점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심상건 산조의 음악적 특징』이란 김효선의 논문을 보면, 어느 음계의 중심음이 옥타브 위, 또는 아래로 자유롭게 이동함으로 해서 음역이 확대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선율의 진행은 순차적 하행이 주(主)를 이루고 있으나, 끝냄의 형태는 대부분이 4도 상행 종지라고 한다. 또한 자진모리나 당악 악장처럼 빠른 장단에서도 시김새를 구사하고 있다는 점도 다르고, 리듬형은 2소박, 또는 2소박과 3소박 구조로 다양하며 옥타브와 그 이상의 도약 진행이 빈번하고, 엇붙임과 혼소박의 사용이 많은 편이라고 밝히고 있다.

 

특히 그의 후기 산조는 우조의 비중이 크지 않고, 추성(推聲)과 퇴성, 등을 활용한 즉흥성이 산재해 있다고 해서 산조의 생명인 즉흥성이 강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콜럼비아 유성기 원반에 담긴 <심상건 가야금산조와 병창 >에 대한 노재명의 해설을 참고해 보면, “중고제 명창 김창룡, 이동백, 심정순의 소리를 들어보면 장단을 달아놓고 창(唱)조 도섭으로 부르는 경우가 있는데,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노래라기보다는 마치 글 빨리 읽기 대회라도 참가한 듯 급히 몰아간다. 오늘날 중고제 맛을 거의 유일하게 간직하고 있는 심화영(심정순의 딸)은 춘향가 초입을 아니리로 하지 않고, 처음부터 다짜고짜 휘모리장단으로 급하게 내두른다.”라고 하였다.

 

 

판소리 춘향가뿐 아니라 심청가, 흥부가 등 5대가 대부분의 시작은 곧바로 소리부터 시작하지 않고 아니리(말로 장면을 소개하는 형태)로 시작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에 견주어, 충청지방의 중고제 춘향가는 휘모리 장단으로 내두르듯 부른다고 하니 그 시작형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궁굼하다.

 

앞에서 심상건의 충청제 가야금 산조는 <평조>와 <경드름>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을 이야기했는데, 평조는 낮고 화락한 음악적 분위기이고, 경드름이란 서울ㆍ경기지방의 음악 어법으로 소개한 바 있다. 또한, 설렁제도 소개하였다. 과거 중고제 판소리가 이러한 경드름이나 설렁제의 가락을 즐겨 쓰고, 시김새의 처리도 멋스럽고 간결하게 처리하는 점은 지역적 특징을 안고 있는 소리제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중고제 판소리의 음악적 구조나 선율상의 특징을 분석하고 연구해 온 실기 및 이론 전문가들의 의견을 요약해 보면, 무엇보다도 선율상의 특징으로 도약 진행 없이 평탄하게 선율이 진행된다는 점을 들고 있다, 또한 그 음악적 특징이 독서체여서 억양이 분명하고 노래 곡조가 간결하다는 점, 장단이 변화함에 따라 극적인 전환을 이루거나 이면(裏面)의 적극적 표현보다는 간결하고 단조로운 음악적 구성을 특징으로 들고 있다. 이러한 판소리 중고제의 특징이 심상건 가야금 산조에도 보인다는 점은 그가 작은 아버지인 심정순 댁에서 자라며 숙부가 지켜온 중고제 판소리의 영향을 받은 결과로 보고 있다.

 

 

고제(古制), 중고제를 거쳐 오늘날의 판소리는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전문가들의 소리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지만, 거슬러 올라갈수록 대중적인 소리였음은 분명하다. 판소리의 발생 초기 모습을 그려보면 부채를 들고 소리하는 소리꾼과 북을 치는 고수 1인이 한 조를 이루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을 찾아 이동하며 쉽게 판을 벌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과거의 판소리는 이해하기도 쉽고, 재미가 있었기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놀이판에서는 빠질 수 없는 소리였다.

 

추측건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동네의 큰 마당이나 장터 등 열린 공간이 판소리의 공연장이 아니었을까 한다. 이때 관중들의 주목을 받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공감이 가는 재미있는 이야기나 흥취있는 다양한 소리로 듣는 이들을 사로잡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이다.

 

관중의 공감, 관중이 듣고 싶어 하는 소리 내용을 충족시켜 주지 못한다면 소리판은 깨져버리고 말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기에는 다양한 동물의 소리라든가, 새소리를 묘사하게 되는 새타령이라든가, 눈물을 흘릴 정도의 슬픔을 전달할 수 있는 이별가 등 소리꾼의 장기가 발휘되어야 했음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