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닫기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

알아도 너무 많이 알아 괴롭다는 도올 김용옥

도올의 《우린 너무 몰랐다》를 읽고 1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27]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도올 김용옥 선생의 《우린 너무 몰랐다》를 읽었습니다. 책 표지의 부제는 ‘해방, 제주 4.3과 여순민중항쟁’입니다. 그렇기에 저도 도올이 보는 4.3과 여순사건은 어떨까 하는 생각에 이 책을 샀습니다. 그런데 역시 도올답게 글이 천방지축으로 튑니다. 너무 아는 것이 많으니까 글이 나아가다가도 곁길로 빠져 한참 설을 풀게 되지요. 도올도 책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지금 이러한 얘기를 자세히 하고 앉아있을 계제가 아니지만, 한 예를 더 들어보자! 나의 죄업이란 진실로 너무 많이 안다는 데 있는 것 같다. 알아도 너무 정밀하고 정확하게 안다는 데 있다. 알면 괴롭다. 알기 때문에 남이 보지 못하는 측면이 너무 많이 보이고 또 그것을 종합해보면 우리 상식의 터무니없는 오류에 대해 분노가 치밀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이 눈감고 살기에는 너무도 억울한 것들이다. 세밀하게 안다는 것만으로 세계가 새롭게 보이지 않는다. 세밀하게 아는 것과 동시에 반드시 전체를 볼 줄 알아야 한다. 마이크로와 매크로는 반드시 동시적일 수밖에 없다.”

 

예! 도올은 알아도 너무 많이 압니다. 그래서 이 책도 400쪽 가까운 분량인데, 책이 전혀 지루하지 않습니다. 내용도 내가 잘 모르던 것이 나와 흥미로울 뿐만 아니라, 점잖은 학자풍의 글이 아니라 그런 격식을 무시하는 도올 특유의 화법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니 지루하지 않은 것이지요. 오래전에 본 도올의 책에는 ‘자지’, ‘보지’가 스스럼없이 나왔지요. 도올은 책에서만 ‘자지’,‘보지’를 그대로 쓴 것이 아니라, 고대 교수를 할 때도 이런 용어를 그대로 써서 파격을 일으켰다고 하지요. 이 책에도 도올은 ‘양아치’, ‘쪽팔리니까’, ‘좇됐다’ 등의 학자들이 잘 안 쓰는 말을 그대로 씁니다.

 

 

읽은 내용 가운데는 먼저 구례 이야기가 제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 구례 이야기도 도올이 주관하는 고전 읽기 모임 참석자인 박소동 이야기를 하면서 구례로 들어갑니다. 박 선생 고향이 구례이거든요. 책에서 도올과 박소동 선생이 누가 형이냐로 민증 까면서 다투는 얘기 보면서, 저도 모르게 미소를 띠게 되더군요. 처음에는 음력 생일이 앞선 박소동 선생이 내가 형이라고 하여 그대로 서열이 정해지려는 순간, 도올이 박소동 선생의 생일이 음력이라는 것을 알고 양력으로 내가 한 달 앞선다며 으스대는 모습을 보며 웃음이 나왔던 것이지요.

 

구례는 조선이 망하자 인간 세상에 식자 노릇하기 힘들다는(難作人間識者人) 절명시(絶命詩)를 남기고 자결한 매천 황현 선생이 살던 곳이라 저도 관심이 가던 곳이기는 하지요. 도올은 구례를 인구가 날로 줄어들고 황폐해져만 가는 조그만 시골동네라고 깔보지 말라고 합니다.

 

구례는 판소리의 거장 중의 거장 송만갑의 고향입니다. 이곳의 송흥록-송광록-송우룡-송만갑-송기덕으로 이어지는 송씨 가계는 19세기, 20세기 전반에 걸친 우리나라 예술사의 대맥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해방 후 지방 여운형 등이 세운 조선건국준비위원회 조직이 최초로 결성된 곳도 구례이고요.​

 

매천은 한학자이지만 고루한 성리학의 세계에만 갇혀있지 않았습니다. 매천은 힘을 기르기 위해선 서양의 신학문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 사람입니다. 그리하여 매천의 제자 왕수환, 권봉수, 왕재소, 박해룡 등이 스승의 뜻을 즉시 실천에 옮겨 진정한 의미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민립학교라 할 수 있는 호양학교를 설립하였습니다. 호양학교는 일제의 혹독한 탄압으로 광의국민학교에 병합되었는데, 해방이 되자마자 구례의 지사들은 호양학교의 후신인 방광국민학교를 설립합니다.​

 

학교 이름이 ‘방광’이라고 하니까, 오줌보가 연상이 되는데, 뜻은 빛을 발한다는 ‘放光’입니다. 도올은 이것도 그냥 넘어가지 않지요. 구례는 화엄종의 본산인 화엄사가 있지 않습니까? 화엄종의 부처인 비로자나 부처의 ‘비로자나’의 원어인 바이로카나는 태양을 의미하므로, 여기서 빛을 발한다는 ‘방광’을 따온 것이지요. 그리고 이곳 동네가 바로 방광면이고요.

 

도올 덕분에 구례에 대해 모르던 것을 알게 되었네요. 책의 차례를 보니까 도올이 말하려고 하는 4.3과 여순사건 이야기가 나오려면 아직 더 가야 하네요. 앞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또 어디서 도올의 이야기가 어디로 튈지 이걸 지켜보는 것도 책을 보는 한 재미이겠습니다. 자신의 전공 분야가 아닌 현대사에도 이렇게 열정을 다하여 공부하고 책을 내놓은 도올 선생! 당신을 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