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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탈핵 실크로드 방문기

정교회 총대주교 친견 일정 잡혀

스탈린, 고려인 강제 이주시키고 6.25 전쟁 계획 승인
<생명탈핵 실크로드 방문기 19>

[우리문화신문=이상훈 교수]  아침 식사를 간단히 마친 후에 나는 병산이 정교회의 총대주교에게 보내는 편지를 영어로 번역하였다. 병산은 총대주교 사무국과 여러 번 전자우편을 주고받았는데, 총대주교를 8월 8일 오후에 친견하기로 일정이 잡혀 있었다. 친견 시에 터키어를 한국어로 통역할 통역사까지 선정되었다. 우리는 숙소를 나와 조지아에서 제일 큰 삼위일체 성당까지 걸어갔다. 성당은 대통령궁 바로 옆에 있었는데, 작은 언덕 위에 있어서 경사길을 걸어 올라가야 했다.

 

 

삼위일체 성당은 조지아 정교회 수장이 있는 곳으로 신학교와 수도원도 딸려 있다. 성당 내부는 엄숙하였고 화려한 성화들이 그려져 있었다. 성당은 관광객에게 개방되어 있었지만 기도하는 신도들도 눈에 띄었다.

 

 

 

 

조지아는 기독교와 인연이 깊은 나라이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처형되었을 때에 조지아 사람이 로마의 집행관으로부터 예수가 입고 있던 옷을 사서 귀국했다고 한다. 조지아 사람의 누이는 예수의 옷을 붙들고 비탄에 잠겨 슬퍼하다가 죽었는데 옷을 너무 단단히 쥐고 있던 까닭에 그녀와 함께 옷을 묻었다고 한다. 그 후 무덤에서 삼나무가 자라났고 임금은 그 나무로 7개의 기둥을 만들어 새 교회의 토대로 삼게 하였다.

 

그런데 7번째 기둥이 공중에 솟구쳐 올라가 내려오지 않았다. 조지아에 기독교를 전파한 성녀 니노가 밤새 기도하자 기둥이 내려왔는데, 그때부터 이 기둥에서는 어떤 질병도 치료할 수 있는 신비한 액체가 흘렀다고 한다. 4세기에 지은 이 교회가 트빌리시에서 북서쪽으로 20km 거리의 므츠헤타에 있는 스베티츠호벨리 대성당인데, 조지아에서 삼위일체 대성당에 이어서 두 번째로 큰 성당이다. 스베티츠호벨리란 ‘생명을 주는 기둥’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조지아에 최초 기독교를 전파한 사람은 성녀 니노이다. 니노는 서기 300년 무렵 카파도키아(현재 터키의 중부 지역)의 공주로 태어났으나 왕실이 무너지자 이웃 나라의 노예가 되었다. 전설에 따르면 꿈에 성모 마리아가 나타나 조지아로 가서 기독교를 전파하라는 계시를 받는다. 그녀는 성모 마리아로부터 포도나무 가지를 받는데 니노는 이것을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묶어 십자가를 만들었다고 한다.

 

조지아의 십자가는 우리가 보는 십자가와 조금 다른데, 가로 세로가 직각이 아니고 가로선이 약간 처져 있다. 포도나무 가지로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조지아로 간 니노는 죽어가는 아이를 치료하고 불치병에 걸린 조지아 왕비를 고치는 등 기적을 행하였다. 이에 감동한 조지아 임금은 서기 325년 기독교를 공인하게 된다.

 

 

관광 안내 책자를 보니 트빌리시에서 80km 떨어진 작은 마을 고리(Gori)에 스탈린 박물관이 있다고 한다. 가난한 구두 수선공의 아들로 태어난 스탈린(1878~1953)은 놀랍게도 청년 시절에는 사제가 되기 위해 트빌리시의 신학교를 다녔다. 공산주의 이론가인 칼 마르크스의 저서(당시에는 금서였음)를 몰래 읽다가 발각되어 스탈린은 1899년 신학교에서 퇴학당했다. 그는 공산당원이 되어 출세의 사다리를 오르는데, 레닌에 이어 1922년에 소련의 최고 지도자인 공산당 서기장으로 취임하여 1953년에 죽기 전까지 무려 31년 동안 독재자로서 권력을 휘둘렀다.

 

스탈린을 연구한 전문가들에 따르면 스탈린이 집권 시절에 자신의 독재체제를 강화하기 위해서 숙청된 사람들의 수가 약 1,500만 명에서 많게는 3,0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수백만 명은 처형되었지만 유배되거나 강제수용소에서 죽은 사람도 많았다. 전쟁이 아닌 평화 시에 자기 국민을 숙청했던 규모로서는 유사 이래 최대 규모라고 하니 스탈린은 역사상 가장 잔인한 통치자였다고 말할 수 있겠다. 또한, 그는 공산주의를 전 세계에 수출하여 거의 1세기 동안 지구촌은 이데올로기 전쟁터가 되어 곳곳에서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

 

1937년에 17만 명의 고려인을 극동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킨 정책을 결정한 사람이 스탈린이며, 1950년에 김일성의 6.25 전쟁 계획을 승인하여 한반도에서 수많은 사람이 죽게 한 것도 스탈린이다. 몇 년 전 공개된 기밀문서에 따르면 처음에 한국전쟁을 반대했던 스탈린은 일단 전쟁이 터지자 작전 계획을 세우는 등 전쟁을 주도했다고 한다.

 

그는 한국전쟁을 통하여 냉전의 경쟁 상대인 미국의 국력을 소진할 기회로 삼았다는 분석도 있다.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 뒤 전세가 북한에 불리해지자 김일성이 요청한 휴전 제의를 거듭 무시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는 것이다. 결국, 1953년에 그가 숨진 뒤에야 휴전이 성립될 수 있었다.

 

코카서스 산맥 아래 있는 조지아는 산 좋고 물 좋은, 우리식으로 표현하면, 명당이 많았나 보다. 조지아에서는 스탈린뿐만 아니라 소련을 움직인 걸출한 인물들이 많이 나왔다. 스탈린 시절 비밀경찰의 총수였던 베리야도 조지아 출신이고, 소련 외무장관으로서 고르바쵸프와 함께 페레스트로이카(개혁)를 이끌었던 세바르드나제도 조지아 출신이다.

 

스탈린은 젊었을 때 조지아 민족주의에 심취했지만, 나중에 레닌의 마음을 사기 위해 고향을 배신했다. 독립공화국이었던 조지아를 침공하고 조지아어를 없애는 데 앞장서는 등 배신행위를 한 것이다. 이 같은 배신은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다. 1991년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조지아가 친미 노선을 걷기 시작하자 러시아 정계에 진출한 조지아계 인사들은 불안한 나머지 자신의 족보를 세탁하는 예도 있다고 한다.

 

스탈린은 농업 분야에서 국영의 집단농장을 만들었지만, 생산성 향상에는 실패하였고, 우크라이나 지방을 포함한 여러 지역에서 모두 1,000만의 농민이 식량 부족으로 죽었다. 그러나 스탈린의 공업 발전 정책은 성공하여 소련을 근대화된 강대국으로 만들었다. 스탈린을 평가할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의 침공을 막아내어 영토를 지켰다는 점이다. 더욱이 소련은 1949년에 핵실험에 성공하여 미국과 함께 군사적으로 세계를 호령하고 있다.

 

러시아 사람들은 아직도 그를 민족의 영웅으로 추앙한다고 한다. 러시아인의 스탈린 사랑은 2008년 8월에 일어난 러시아와 조지아 사이에서 벌어진 15일 동안의 짧은 국경 전쟁 중에도 드러났다. 러시아군은 조지아 중부 전략도시 고리를 점령하기 위해 대대적인 공습과 포격을 퍼부었지만, 스탈린 박물관은 전혀 손상되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을 썼다고 한다.

 

매우 주관적이기는 해도, 나는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을 우리나라의 박정희 대통령과 견주어 보았다. 스탈린은 31년 동안 권좌에 있었고, 박정희는 18년 동안 절대적인 권력을 유지했다. 스탈린은 수백만 국민을 죽인 대숙청으로 전반에는 과오가 많았지만, 후반에는 독일 침공을 막아내고 공업을 발전시키는 등 공적이 많은 지도자였다.

 

박정희는 전반에는 5개년 경제 개발 정책을 잇달아 성공시키고 가난한 국민에게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등 공적이 많았지만, 후반에는 유신 독재를 강화하고 언론을 재갈 물리고 야당과 대학생의 민주화 운동을 탄압하는 등 잘못이 더 컸다고 볼 수 있다. 어느 쪽이 국민에게서 더 존경받는 지도자일까?

 

세익스피어의 희곡 제목 중에 “끝이 좋으면 다 좋다. (All is well that ends well.)“라는 말이 있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스탈린은 후반기가 좋았으므로 아직도 러시아에서 훌륭한 지도자로 존경받는다고 생각된다. 2017년에 시행된 여론조사에서 러시아인들은 '세계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 1위로 스탈린(38%)을 선택했고, 2위로 푸틴(34%)을 꼽았다. 냉전 해체의 주역 고르바초프는 6%를 기록했다. 러시아 사람들은 현직 대통령인 푸틴보다 스탈린을 더 위대한 인물로 생각하고 있다.

 

2019년 9월에 시사IN이 발표한 역대 대통령 신뢰도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1위는 노무현(37.3%) 2위는 박정희(24.3%), 그리고 3위는 김대중(17.3%)으로 나타났다. 박정희는 우리나라를 산업화시켜 국민을 잘 살게 만든 공이 컸지만, 후반이 좋지 않았으므로 전반에 세운 공은 퇴색하고 지도자로서 그를 존경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소련의 스탈린보다 적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