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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정조임금이 명하여 그린 강세황 초상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282]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강세황이 태어난 지 300해가 되던 때인 지난 2013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조선시대 위대한 화원 강세황전”이 열린 적이 있었습니다. 강세황은 보통 물러나 쉴 나이인 61살에 노인과거에 장원급제한 뒤 왕릉을 지키는 벼슬인 능참봉으로 시작하여 6년 만에 정2품 한성부판윤에 오르는 초고속 승진을 했지요. 그러나 이 초고속 승진은 누가 뒤를 보아준 덕이 아니라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을 때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의 능력을 스스로 인정하여 갈고닦아 드디어 사람들의 인정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 강세황에게는 자신이 직접 그린 국립부여박물관 소장의 강세황 자화상을 비롯한 몇 점의 초상화가 전해옵니다. 특히 개인 소장인 보물 590-2호 ‘강세황상’은 정조 임금이 아끼던 신하 강세황이 71살이 되어 기로소(조선시대 고위 퇴임관리들의 예우를 목적으로 설치한 기구)에 들어간 것을 기려 궁중화가인 이명기에게 명하여 그린 것입니다. 그래서 그림 오른쪽 위에는 정조가 짓고, 문신 조윤형이 쓴 제문이 적혀있습니다.

 

 

이 작품은 조선 초 이후 왕실에 공헌한 신하들을 위해 궁중화가를 시켜 그리던 공신초상의 형식을 따르고 있지요. 다만, 이 작품은 전통적인 화풍을 유지하면서도 서양화풍의 영향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작품을 보면 손의 모습과 주름을 세밀하게 표현하고, 밝고 어두운 음영을 강조한 것이 발견되며, 얼굴도 전통적인 영정에 견주어 튀어나오고 들어간 것을 강조하여 입체감을 드러냈는데, 이는 18세기 말 새롭게 도입된 서양화법을 적용한 표현이라고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