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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독립운동

박은식의 '국혼을 잃지 않는 겨레' 새기는 삼일절

박은식 선생 《한국통사》지은 민족사가이며,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대통령 지내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첫째, 독립운동을 하려면 전족적(全族的)으로 통일이 되어야 하고, 둘째, 독립운동을 최고 운동으로 하여 독립운동을 위하여는 어떠한 수단방략이라도 쓸 수 있는 것이고, 셋째, 독립운동은 오족(吾族) 전체에 관한 공공사업이니 운동 동지간에는 애증친소(愛憎親疏)의 구별이 없어야 된다. 우리가 이 귀중한 독립운동을 기성 시키려면 무엇보다도 첫째 전민족의 통일을 요구하여야 되겠소.

 

이는 백암(白巖) 박은식(1859~1925) 선생의 유언이다. 박은식 선생은 《한국통사(韓國通史)》와 《한국독립운동지혈사(韓國獨立運動之血史)》 등을 지은 민족사가이며,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대통령까지 지낸 독립운동가이고, 「황성신문」, 상해 「독립신문」, 「한족공보」의 주필, 사장 등을 역임한 민족 언론인이기도 하다.

 

 

박은식 선생은 황해도 황주에서 태어나 1898년 장지연, 남궁억 등과 <황성신문> 창간에 참여했으며 경학원 강사, 관립 한성 사범학교 교사, 서북학회 회장, 황성신문사 사장을 역임하고 <대한매일신보> <서북학회 월보>의 주필로 민족사상을 높이는 데 힘썼다.

 

선생은 또 "국혼(國魂)은 살아있다. 국교(國校), 국학, 국어, 국사는 국혼(國魂)에 속하는 것이요, 전곡(錢穀) ,군대, 성지(城地), 함선(艦船), 기계(器械) 등은 국백(國魄)에 속하는 것으로, 국혼의 됨됨은 국백에 따라서 죽고 사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국교와 국사가 망하지 아니하면, 국혼은 살아있으므로 그 나라는 망하지 않는다." 라는 말을 《한국통사(韓國痛史)》에 남겼다.

    

 

 

선생은 1910년 국권을 잃자 광문회의 위촉으로 저술에 힘쓰다가 1911년 5월 서간도로 망명한 뒤 고구려 옛터를 답사, 고대사와 고구려 위인전의 저술에 힘썼다. 그 뒤 상해로 가서 신규식과 더불어 결사 조직인 동제사와 한중 협력단체인 신아동제사를 조직하여 총재가 되었다. 선생은 3.1만세운동이 일어나자 노령 블라디보스톡에서 대한노인동맹단을 결성하고 상해로 건너와 임시정부 조직에 참여하였다.

 

이때 <독립신문> <한국회보> <사민보> 등을 발간했다. 1924년 11월 임시정부 국무총리 겸 대통령대리, 이듬해 3월 제 2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가 그해 7월 헌법 개정으로 후임자에게 물려주고 얼마 지나지 않은 11월 1일 노환으로 상해 한 병원에서 별세했다.

 

임시정부에서는 선생의 국가, 민족에 끼친 공훈을 추도하여 처음으로 국장을 거행, 상해 정안사로 공동묘지에 안장하였다가 1993년 유해가 봉환되어 서울현충원에서 영면에 들었다. 정부에서는 평생을 조국광복에 헌신한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2년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오늘 삼일절 101주년을 맞아 투철한 정신으로 국혼(國魂)을 잃지 말자고 했던 백암 선생의 의지를 되새겨보는 날이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