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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봄바람은 부는데

추사의 대련을 소리 높여 읽어본다
[솔바람과 송순주 38]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성북동에 있는 간송미술관에 갔을 때 기념품점에서 눈이 머문 글이 있었다. 추사 김정희 선생이 쓴 대련(對聯: 문짝이나 기둥 같은 곳에 걸거나 붙이는 서로 나란히 붙어있는 두 문장)인데 글귀는 이랬다;

 

春風大雅能容物

秋水文章不染塵

 

발음으로 읽으면 "춘풍대아능용물 추수문장불염진"인데 흔히 이렇게 해석들 한다.​

 

봄바람처럼 큰 아량은 만물을 용납하고

가을 물같이 맑은 문장은 티끌에 물들지 않는다.

 

 

기념품으로 팔지만 실제로 이 미술관 소장품인 이 대련 글씨는 추사가 남긴 대표적인 명작이다. 흔히 추사체는 필획의 굵고 가늘기의 차이가 심하고 글자는 각이 지고 비틀어진 듯하면서도 파격적인 조형미를 보여주는 것으로 유명한 데, 이 대련이 바로 그런 경지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런데 글씨가 뛰어난 것도 뛰어난 것이지만, 이 대련이 사랑을 받는 다른 이유는 바로 이 글의 뜻 때문일 것이다. 다시 문장을 들여다보자.

 

春風大雅能容物

 

춘풍은 봄바람이고 대아는 크고 우아하다는 것인데, 그게 왜 갑자기 튀어나올까? 그것을 알려면 공자가 편찬한 시경을 알아야 한다.

 

시경은 공자가 자신의 시대에까지 전해지는 각지의 노래를 모은 것으로 305편에 이르는데, 우리가 아는 대로 풍(風, 國風이라고도 함. 여러 나라의 노래), 아(雅 궁중에서 부르는 노래) 송(頌 제사 지내는 노래)으로 나눠진다. 열다섯 나라의 광활한 풍토 위에서 펼쳐진 국풍(國風)은 인생의 각종 애환이 모두 담겨 있어서 누구에게나 가슴이 뭉클한 감동으로 자기의 처지와 심경을 호소하고 있다.

 

아(雅)는 다시 소아(小雅)와 대아(大雅)와 나뉘는 바, 소아는 연회, 곧 잔치에 쓰이는 것이고, 대아는 조회 등 공식 의례용인데, 이들을 단순히 노래라고는 하지만 사실은 소아(小雅)는 철저한 합리주의와 중용(中庸)사상과 대동(大同)정신으로 천하문명을 건설하는 아름다운 의례와 제도와 문장을 모아 놓은 것이고. 대아(大雅)는 정치지도자가 천명(天命)을 받들고 민심을 따르는 도덕적 지도력으로 전체 인간들의 안녕과 행복을 보장하는 덕치인정(德治仁政)의 도량을 묘사하고 있다.

 

공자가 시경을 편찬한 것은 단순히 그때까지의 노래를 모아 놓자는 것이 아니라 음악과 노랫말 속에서 천하를 평안하게 하는 마음을 배우게 하자는 원대한 뜻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대아는 단순히 크고 우아하다는 뜻 만이 아니라 시경 대아편에서 이야기하는 정치를 의미한다고 봐야 한다. 춘풍대아는 큰 정치란 것이 어떠한 것인가를 설명하는 말로서, 큰 정치는 춘풍, 곧 봄바람 같아야 한다는 뜻이다. 봄바람처럼 한없이 부드럽고 포근하고, 그러면서도 우아하고 격조 높고 올바른 그런 정치는 그 속에 능히 모든 것들을 녹이고 담을 수 있으므로 세상을 구원하는 큰 정치가 될 수 있다, 정치는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하겠다.

 

그 다음 문장은 秋水文章不染塵이다.

 

秋水란 말은 가을의 물이니, 차가운 물, 맑은 물, 깨끗한 물을 뜻한다고 하겠다. 흔히 가을, 또는 차다는 말은 매화의 기품에 비유하면 금방 뜻이 들어온다. 한여름 무더위에 지친 사람들의 정신을 맑게 해주는 가을 물의 차가움, 그것은 세상의 혼탁함에 휩쓸리지 않고 고고함과 아름다움, 격조, 지조를 지키는 매화의 향기와 그대로 통하는 것이다. 그런 문장은 세상의 티끌에 오염되지 않아야 한다. 그런 문장, 그런 글, 그것은 곧 시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세상의 혼탁함을 비춰내는, 맑은 물과 같은 글, 곧 옛날로 치면 선비들의 엄정한 역사의식과 비판정신, 요즈음으로 말하면 언론인들의 정론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원래 이 말은 중국에서 성리학(性理學)의 세계를 열어놓은 정명도, 정이천 두 학자를 묘사한 글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단순히 사람을 묘사하는 것을 넘어서, 현대 정치의 요체를 압축해서 설명하고 있다. 추사 김정희는 이 글씨를 만년에 머물던 봉은사에서 쓴 것으로 알려졌다. 일찍부터 당쟁에 휩쓸려 오랜 세월 제주도에서 귀양살이를 한 추사로서는 당시 펼쳐지는 정치에 대해 할 말이 많았겠지만 이런 문장으로 그 소회를 대신한 듯 싶다.

 

2천 5백 년 전 공자는 자신이 편찬한 시경의 대아(大雅)라는 편 속에 제왕이 가야 할 길을 밝혀주고 있었다. 그때부터 이 시대까지 이어지는 정치의 본질은 곧 지도자는 봄바람과 같이 포근하고 따뜻하게 모든 것을 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자가 시경의 시 3백여 편을 ‘思無邪’(사무사, 생각에 있어 사악함이 없다)라고 했다는데, 시편의 시들, 그 가운데 대아(大雅)편은 정치의 본질을 설파하면서 그런 정치를 구현할 것을 후세인들에게 말하고 있다

 

質爾人民 그 인민들을 안정시키며

謹爾侯度 그대의 법도를 삼가서

用戒不虞 이외의 일에 대비하며

愼爾出話 그대의 튀어나오는 말을 삼가고

敬爾威儀 엄숙한 태도를 공경하며

無不柔嘉 훌륭하지 않음이 없기를

白圭之玷 흰 구슬은

尙可磨也 갈 수 있거니와

斯言之玷 말을 쏟아내면

不可爲也 어떻게 할 수 없음이라

 

                                  - 대아(大雅) 탕지십(蕩之什) 제2편 억12장(抑十二章)중 5장

 

視爾友君子 당신들은 보게나

輯柔爾顔 언제나 얼굴을 부드럽게 하면

不遐有愆 아무 허물도 없을 것이네

相在爾室 그대가 방 안에 있더라도

尙不愧于屋漏 어두운 구석에서도 부끄러움이 없기를

無曰不顯 드러나지 않는다고

莫予云覯 아무도 안 본다 생각말게

神之格思 하늘의 미치심은

不可度思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니

矧可射思 어찌 게을리 한다는 말인가

 

                                  - 대아(大雅) 탕지십(蕩之什) 제2편 억12장(抑十二章)중 7장

 

그런 가르침들이 추수와 같은 문장으로 당대에나 후세에 귀감으로 가르쳐지고 전해져야 한다는 소망인 것이다.

 

 

아 추울 것 같았던 소한(小寒), 대한(大寒)이 별 탈 없이 지나고 입춘에 다시 잠시 추워졌던 우리나라, 작은 추위는 있지만, 봄비가 내리고 만물이 싹을 이미 트고 있다. 남녁에는 만발한 매화가 산과 강을 에우고 있다. 이제 4월 총선거는 한 달도 남지 않았다. 이제 선거전이 치열해질 것이다. 너도나도 봄바람 같은 존재라고, 이 땅에 봄바람을 몰고 오겠다고 정치가들은 말하겠지. 그러나 지난 세월 우리는 정치인들이 봄바람같이 모든 것을 녹이는 나라에 살지 못했다. 이 땅에 계절이 바뀌며 봄바람은 불겠지만 정치인들의 마음이 풀어지고 녹아서 따뜻한 봄의 대지를 만들어줄 수는 없을까?

 

코로나 바이러스가 더욱 우리를 긴장시키고 있어서 전정한 봄바람이 얼른 불어왔으면 좋겠다. 바이러스 걱정에다 경제 걱정에다 정치적인 갈등으로 힘든 우리들에게 언제 춘풍대아의 세상이 올 것인가? 당대의 대학자 추사가 이 글을 쓴 마음을 생각하며 다시 한번 이 대련을 소리 높혀 읽어본다.

 

춘풍대아 능용물~春風大雅能容物

추수문장 불염진 秋水文章不染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