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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판소리 동초제(東超制)의 전승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465]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고향임의 학위 논문에 관한 이야기와 2006년, 전주대사습대회 장원으로 대통령상을 수상하게 되면서 명창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판소리연구원을 개설해서 제자들을 가르치며 크고 작은 무대에 초대되어 판소리 공연을 해 왔다는 이야기, 2009년도에 동초제 춘향가 완창 공연을 열면서 그 기념행사로 <동초제 춘향가의 전승과 미학>이란 학술세미나를 열었다는 이야기, 현재 대전에서 일인다역으로 문화와 예술의 기치를 높이 들고 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2006년 전주대사습에서 장원에 오른 이후에도, 그녀는 수차에 걸친 판소리 완창 발표를 통해서 객관적인 소리 능력을 인정받아 왔다. 이러한 노력이 헛되지 않아 고향임은 2013년, 대전시로부터 무형문화재 판소리 종목의 예능 보유자로 인정을 받게 된다.

 

지자체 실시 후, 각 광역시나 도(道) 단위에서는 자체적으로 전통음악이나 춤, 놀이나 의식 분야, 곧 무형(無形)문화재 종목을 지정하고 그 종목의 전승을 위해 예능보유자를 인정해 오고 있는 제도가 있다. 마침 대전시의 경우, 판소리 종목은 미지정된 상황이어서 그녀에게 적절한 기회가 된 것이리라.

 

 

어렵게 예능보유자 자리에 오르면, 그 분야가 바르게 전승되도록 전수자들을 열심히 양성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함에도 극히 일부 보유자는 제자 양성을 게을리하고, 사회활동이나 또는 개인의 명예만을 앞세우고 다녀 빈축을 사는 사례도 더러 있다. 그러나 고향임은 문화재에 오른 그 이후에도 더더욱 소리에 대한 애정을 갖고 스승이 전해준 <동초제 판소리 춘향가>를 갈고 닦는 데 여념이 없었다고 주위에서는 전해준다.

 

그 대표적인 노력의 결과가 바로 지난해, 스승 오정숙 명창으로부터 배워 익힌, 8시간이 넘는 <동초제 춘향가>를 서울 국립국악원에서 완창하여 화제를 낳은 것이다.

 

<동초제 판소리 춘향가>, <동초제 판소리>, 또는 <동초제 춘향가>, <동초제 소리>라는 용어에서 <동초제>란 무슨 말이고, 어떤 특징을 지닌 소리인가?

 

<동초(東超)>는 김연수(金演洙) 명창의 아호이므로 <동초제>란 <김연수>의 소리제라는 뜻이다.

 

 

가령, 동편제나 서편제는 지역이나 음악적 특징을 따라 제(制)를 붙이지만, 김세종제, 정정렬제, 송만갑제와 같이 명창 이름 뒤에 제를 붙이는 것은 어느 명창이 그 이전 선생으로부터 배운 소리의 사설이나, 가락, 장단 등을 대폭, 또는 부분적으로 고치고 바꾸어서 또 다른 한 바탕의 소리로 만들었다는 의미가 되겠다. 그러므로 <김연수제>, 또는 <동초제>라고 하는 명칭은 김연수 명창이 이전의 소리를 나름대로 고쳐 만든 소리라는 의미에서 아호(雅號)를 붙여 동초제라 부르는 것이다.

 

특히, 전기 8명창이 부르던 산만한 판소리가 신재효 손에 의하여 일대 정리를 거쳤듯이, 후기의 5명창이 불특정하게 부르던 판소리도 동초 김연수의 손에 의하여 5대가, 곧 춘향가, 심청가, 수궁가, 흥보가, 적벽가 등을 오자(誤字) 없는 가사와 사설, 장단까지 찍어서 잘 정리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동초제 소리야말로 서편제의 애잔한 소리와 동편제의 우람한 소리가 서로 융합되어 있고, 가사와 문학성을 중시하기 때문에 사설이 정확하고 너름새(동작)가 정교하며, 부침새(장단)가 다양하다. 또한, 가사 전달이 정확하고 맺고 끊음도 분명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고향임의 완창공연 사설집에는 동초 김연수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1907년 전남 고흥에서 태어나 14살까지 한학, 서울 <중동중학>에서 신교육을 받았다. 1935년 유성준 문하에서 <수궁가>, 정정렬에게 <적벽가>와 <춘향가>를 배웠고, <조선성악연구회>에 입회, 송만갑 문하에서 <흥부가>와 <춘향가> 등 5바탕을 배웠다. 1950년에 <우리 국악단>을 창단하였고, 1957년에는 대한국악원 원장(국립국악원과는 별개), 1962년에는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인 판소리 예능보유자로 인정받았다. 동초가 판소리 5바탕을 정리 출판한 일은 동리 신재효에 버금가는 위대한 업적이며 사설에 일일이 장단을 붙이고 발성까지 지도해 놓아서 후학들의 판소리 교육에 큰 역할을 하였다.”라고 적고 있다.

 

한편, 김연수의 큰 제자가 바로 오정숙(1935~2008)이다. 고향임의 스승으로 그녀를 판소리에 입문시킨 명창이다.

 

 

“1972년 판소리 <춘향가>를 완창한 이후, 해마다 <흥보가>, <수궁가>, <심청가>, <적벽가> 순으로 완창발표회를 하였고, 제1회 전주대사습에서 영예의 장원에 올랐다. 1977년부터 국립창극단 활동을 시작, 1991년 국가무형문화재 5호 판소리 예능보유자에 올랐다. 전북 완주군에서 스승의 아호를 따서 동초각을 지어 후진을 양성하다가 2008년, 유명을 달리하였다. 현재 그 뒤를 잇는 제자들이 전국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어 전승력이 강한 소리로 평가되고 있다. 고 오정숙 명창은 소리, 발림, 연기 등이 혼연일체된 완숙한 기량으로 한 시대를 대표하는 여성 명창이었다.” <다음 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