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서울에도 드디어 봄이 왔다.
지난 가을옷을 벗어버리고 숨을 죽이고 기다리고 있던 도로변 개나리들이 일제히 노란 치마저고리를 아래위로 한 벌씩 차려입고 나서서 자기를 봐 달라고 온갖 표정을 다 짓는다. 강을 낀 둑방길에는 다시 벚꽃이 피었다. 우리집 앞길에서 벚꽃들이 활짝 피었다. 서울에서 가장 유명한 꽃길인 여의도 국회의사당 뒤로 도는 유명한 벚꽃길도 꽃 속에 갇혔다.
전혀 예상도 못 하던 이상한 초강력 바이러스 때문에 전 지구인들의 발길이 얼어붙고 있는 가운데서도 따뜻한 햇살에 우리들의 꽃나무들은 철을 지키며 자신들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있다. 누구는 꽃이 피는 것도 기억이 아니라 습관이라고 하지만 다시 돌아오는 꽃들의 화려한 잔치는 세상의 얼어붙었던 마음을 풀어주고 있는 것이다.
서강대교 북단에서부터 국회의사당 뒤를 돌아 여의광장 끝까지 이어지는 약 1.8 킬로미터의 이 길은 이제 전에 부르던 윤중로란 이름이 아니고 <여의서로>다. 오래 전 '윤중제(輪中堤)'라는 일본식 용어가 쓰일 때 그 이름을 딴 윤중로라는 이름이 습관적으로 쓰이다가 '둑방길'이란 쉬운 우리말을 쓰자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이제는 도로명 주소로 바뀌면서 공식적으로는 일본식 표현이 사라진 것이다. 그러니 이제는 이름에 따른 찜찜한 느낌을 지우고, 또 이 꽃나무가 일본에서 비롯됐다는 고정관념을 가질 필요가 없다.
이 벚나무들은 1968년 심어진 이후 50년이 더 지났기에 이제는 역사가 되어 그 뒤에 심어진 많은 강변, 호숫가의 벚나무들과 함께 서울의 봄을 장식하는 멋진 볼거리로 손색이 없다.
그런데 올해 진해의 벚꽃축제가 손님 없는, 팥소 없는 찐빵처럼 변했지만, 꽃은 피었다. 여의도도 꽃은 피었다. 여의도 꽃은 마음 놓고 보고 즐길 수 있으려나? 정말로 아무도 봐주지 않는 미인의 신세가 되고 말 것인가? 그런 걱정이 많았는데 과연 정부로서는 이곳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것을 막기 위해 출입구를 폐쇄하는 조치를 시행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주말에 많이 몰렸다. 2미터 이상 거리두기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고 언론은 전한다.
석촌호수 가에 있는 벚꽃들을 보여주기 위해 송파구에서는 온라인 중계를 해준다고 한다. 사람들이 몰려나오는 사정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지만, 더 참아야 하는 사정도 이해해주어야 한다. 꼭 옆에 가서 보지 않더라도 멀리서라도 혹은 온라인으로라도 그 자태, 그 냄새, 그 색깔을 생각하며 차선의 감상을 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온 방법이 '드라이브 스루' 구경, 차 타고 천천히 지나가면서 창문을 열고 꽃향기를 맡으며 가는 것이란다. 일본에서 벚꽃놀이한다고 나무 밑에 자리 깔고 앉아서 놀던 것이 비난의 대상이 되었기에 우리 국민이 조심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화려한 꽃잔치가 언제 시작됐느냐고 묻는 순간 벌써 한쪽에서는 장을 덮을 준비를 할 정도로 짧고 빨리 지나간다는 것이다. 왜 우리의 봄은 이렇게 짧은가? 우리 봄은 뭐가 그리 바쁜가? 이 좋은 봄은 왔다고 좋아하는 그 순간 곧바로 떠나가려고 하는가? 꽃샘추위네 뭐네 하며 움츠러들다가 겨우 기지개를 켜고 노란 개나리와 연분홍 진달래의 색깔을 즐기지도 못하는데도, 왜 봄은 노랑과 분홍 꽃 위를 타고넘어 저 멀리 가려고 하는가?
그런데 사실 봄에 꽃이 피면 남자들은 술 생각을 먼저 한다. 언젠가 어떤 교수가 봄이라며 시 한 편을 보내왔는데, 하필이면 술 마시자는 '장진주(將進酒)'였다. 우리는 이백(李白)의 장진주가 제일 유명한 줄 알았더니, 이 시에 대해 팬이 더 많단다. 이하(李賀)라는 시인의 작품이다.
琉璃鍾, 유리 술잔은
瑚珀濃, 영롱한 호박빛
小槽酒滴眞珠紅. 작은 주전자에서 떨어지는 진한 주홍빛 술
烹龍炮鳳玉脂泣, 용을 삶고 봉을 구우니 옥 같은 기름 흐르고
羅幃繡幕圍香風. 비단병풍과 수놓은 장막은 향기로운 바람이 감도네
吹龍笛, 용울음의 피리 불고
擊鼉鼓, 악어가죽의 북 치며
皓齒歌, 하얀 이 드러내며 노래하고
細腰舞. 가는 허리 흔들며 춤을 추네
況是靑春日將暮, 하물며 청춘의 봄날도 저무려 하는데
桃花亂落如紅雨. 복사꽃 붉은 비 되어 어지러이 날리니
勸君終日酩酊醉, 그대여 마시라 종일토록 취해보자
酒不到劉伶墳上土 술은 유령도 무덤까지 가져가지 못하나니.
* 鼉=악어 타
* 유령(劉伶) = 중국 삼국 시대 위나라 ~ 서진의 시인
27살에 요절한 중국 당(唐)나라 때의 천재시인, 아니 시의 귀신(詩鬼)으로 불리는 이하(李賀, 790∼816)의 이 시는 이백의 호탕하고도 거침없는 장진주와 달리, 짧은 인생의 허무함을 술로 보상해보자는 아주 소박하고 더 인간적인 술회가 다가오는 느낌이다. 그처럼 이하를 술에 취하도록 한 것도 바로 아름다운 봄이 너무 짧듯이 인생도 너무 짧다는 일종의 허무감이리라.
당나라 때의 이 시는 우리나라에서 고려와 조선을 이어지면서 이백의 장진주보다도 더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하는데 바로 송강 정철의 이 가사도 그 가운데 하나일까?
한 잔 먹세그려, 또 한 잔 먹세그려
꽃 꺾어 술잔 세며 한없이 먹세그려
이 몸이 죽은 후에 지게 위에 거적 덮고
꽁꽁 묶여 실려 간들
곱게 꾸민 상여 타고 수많은 사람들
울며불며 따라온들
억새풀 속새풀 떡갈나무 버드나무
우거진 숲에 한 번 가면
누런 해 흰 달 뜨고
가랑비 함박눈 내리고
회오리바람 불어칠 때
누가 있어 날더러 한 잔 먹자 하겠는가
하물며 무덤 위에 원숭이가
휘파람 분다 해도
지나간 날 아무리 뉘우친들 무엇하랴
또는 이정보의 이러한 시조처럼
꽃 피면 달 생각하고 달 밝으면 술 생각하고
꽃 피자 달 밝자 술 얻으면 벗 생각하니
언제면 꽃 아래 벗 데리고 오래도록 취하리오.
우리 선조들은 봄날 그 좋은 꽃들을 보면 곧바로 술을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한 전통(?)이 이어지면서 아직도 남자들은 꽃을 보면 술부터 생각하고 실제로 술을 마시다가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그러나 올해는 야외에서 술을 마실 분위기가 아니므로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저러나 너무 빨리 가는 봄에 대한 아쉬움과 미련은 어느 누구도 그칠 수가 없다.
고려시대뿐 아니라 조선시대에도 최고로 쳐주는 시인인 이규보는
봄이 저물어가니 보내긴 보내야겠는데
아득하고 머나먼 그 어디로 가려는가
붉은 꽃만 거두어 갈 뿐 아니라
인간의 고운 얼굴마저 가져가 버리는가
내년 봄이 돌아오면 꽃이야 다시 피겠지만
고운 얼굴 늙어지면 그 누가 빌려주랴
보내는 마음 몰라주고 봄은 떠나기 바빠
부질없이 남은 꽃 바라보며 눈물만 짓네
어디로 가는가 묻네만 봄은 대답도 없고
노란 꾀꼬리 봄을 대신해 대답하는 듯
그 소리야 듣기는 하지만 알 수 없으니
차라리 정을 잊고 술에나 취할까
잘 가거라 봄바람아 돌아보지 말게나
사람에게 박절하기 누가 너보다 더하랴
- 송음(送春吟)
라며 그야말로 봄에 우리가 느끼는 마음을 마치 실타래처럼 줄줄 풀어낸다. 특히 마지막 구절에 '잘 가거라 봄바람아 돌아보지 말게나'는 소월의 '진달래꽃'에 나오는 감정과 너무나 잘 통한다.
그런 멋진 시가 나오자 그 뒤 고려 말 조선 초기 석간 조운흘(石磵 趙云仡, 1332~1404)이란 사람도 '봄날에 사람을 떠나 보내며(送春日別人)'이라는 시에서
春風好去無留意 봄바람아 잘 가거라 머무를 생각일랑 말고
久在人間學是非 인간세상 오래 있으면 시비(是非)만 배운다네
라고 했다나.
봄에 일어나는 이런 자연스런 감정들도 때로는 지나친 사치일까?
봄을 보내는 나 같은 아저씨(실제로는 할아버지가 되어 있다)나 아주머니들, 그리고 청춘 남녀들의 한결같은 소원은 이 좋은 봄날이 좀 더 천천히 갔으면 하는 것인데, 올해 소원은 그게 아니라 이 코로나라는 역병이 봄보다 먼저 갔으면 하는 것이리라. 우리 시민들이 아름다운 봄꽃들을 마음 놓고 실컷 볼 수 있도록 우선은 바이러스를 먼저 보내고 그다음에 이 꽃들의 잔치에 정식 손님으로 초청받아서 참석하고 싶다. 그러자면 봄꽃들이여 너무 서둘러 빨리 갈 생각을 하지 마시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