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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사랑가 –이별가 – 신연맞이’로 분위기 반전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469]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고향임의 <동초제 춘향가> 완창발표회에는 6인의 고수가 등장하였는데, 첫 고수였던 박근영은 초반의 긴장을 비교적 여유있게 풀어 주었다는 이야기, 긴장된 분위기를 이완시켜 주고 추임새를 통해 창자에게 자신감을 실어주는 고수의 마음 전달이 바로 장단의 정확함이나 강약보다도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 그리고 동초제 춘향가 시작 부분의 사설은 이전의 다른 바디와 다르게 짜였는데, 이에 따라 가락이나 장단도 다르게 시작한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이전의 동편제로 분류되는 김세종제 춘향가의 시작 부분은 남원을 소개하며 남녀 사이 일색(一色)도 나고, 당당한 충렬(忠烈)도 나올 수 있는 지역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사또 자제, 이 도령은 16샇, 이목(耳目)이 청수하고 행동거지가 현량(賢良)하다는 내용을 아니리로 소개하며 실제의 창(唱)은 중중모리 장단의 <기산 영수 별건곤, 소부, 허유 놀고>로 시작한다.

 

널리 알려진 가사이지만, 다시 한번 음미하는 의미에서 기산(箕山)은 높고 깊은 산이고, 영수(潁水)는 근처의 맑은 강 이름이다. 이러한 깊은 산과 맑은 강가에는 소부나 허유와 같은 선비들이 세상을 등지고 살았다고 해서 별건곤 곧 별천지가 되겠다.

 

어느 날. 요임금은 허유 선비에게 임금자리를 맡아 달라고 청한다. 허유는 더러운 소리를 들었다며 영수강에 가서 귀를 씻었는데, 소부 선비의 소가 그 강물을 마시려고 하자, 허유가 귀를 씻은 더러운 물이라고 먹이지 않았다는 이야기의 주인공들이다.

 

그러나 동초제 춘향가의 시작 부분은 이전의 다른 바디와는 조금 다르게 시작한다. 곧 춘향을 소개하되, 춘향모의 태몽으로 시작하고 있어서 동초 자신이 새롭게 짜 넣었다는 점을 알게 하는 것이다. “꿈 가운데 어떤 선녀, 이화(李花), 도화(桃花) 두 가지를 양손에 갈라 쥐고 하늘로부터 내려와 <중략> 인물이 비범하여 천상 선녀 하강한 듯, 경국지색이 분명터라.”로 퇴기 춘향모의 태몽을 통해 춘향을 소개하는 점에서 이전 김세종의 바디와는 비교가 되고 있다.

 

 

고향임은 초입 부분을 비교적 여유있고 무난하게 처리하였다. 이 도령이 광한루에 나가 우조로 부르는 적성가 대목이라든가, 이어지는 춘향의 추천 모습과 방자와의 수작 대목, 춘향을 설득하려 하는 방자의 산세타령 대목, 이 도령의 천자뒤풀이 대목 등도 객석의 호응 속에 무난하게 진행되었다.

 

이어 날이 차차 어두워지면서 이 도령은 방자를 앞세우고 춘향집을 찾아가는 대목이 나오는데, 이 대목부터 두 번째 예정된 권혁대 고수가 등장한다. 그 역시 전주대사습 전국대회 명고부에서 장원에 올랐던 실력파로 현재 판소리 고법의 이수자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이다.

 

춘향과 이도령의 <사랑가>로 이어지면서 소리판의 열기는 더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하였고, 이에 호응이라도 하듯, 고 명창은 더욱 풍부한 성음과 다양한 발림으로 청중을 압도해 나가기 시작한다. <사랑가> 대목이 재미있게 이어지면서 객석에서는 추임새가 함성으로 변하기 시작하였다.

 

이렇듯 한창 흥겹고 즐거운 대목이 이어지다가 이야기는 다시 이별을 맞게 되는 슬픈 분위기로 변하게 된다. 이 대목까지 약 2시간 이상을 권 고수는 명창과 호흡을 맞추며 맛깔나게 북을 쳐 주었다.

 

<사랑가>로 즐기던 두 청춘남녀는 곧바로 이별이라는 슬픔을 만나게 된다. 이 <이별가> 대목에서 오리정에 나가서 이별을 맞았느냐, 아니면 집안에서 이별을 했느냐, 하는 과정을 놓고 동초제와 김세종제가 서로 차이를 보인다. 오리정(五里亭)이란, 송객정(送客亭), 곧 손을 보내는 정자로 남원 동북쪽으로 2Km쯤 떨어져 있는 정자를 말한다.

 

 

실제로 동초제에서는“술상 채려 향단 들려 앞세우고, 오리정 동림 숲을 울며불며 나가넌디, <중략> 젊은 년이 서방 이별이 웬일인가?” <아래 줄임> 와 같이 춘향이가 오리정에 나가 이도령과 이별을 한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런데, 앞 시대의 김세종제는 “춘향이가 오리정으로 이별을 나갔다고 허되, 그럴 리가 있겠느냐, <중략> 체면있는 춘향이가 서방 이별헌다 허고 오리정 삼로 네거리 길에 퍼버리고 앉아 울 리가 있겠느냐? 꼼짝달싹도 못 허고 담 안에서 이별을 허는듸, ”와 같이 집 안 이별이어서 비교가 되고 있다.

 

춘향과 이도령의 이별이 오리정 이별이든, 춘향의 집 이별이든 간에 사랑하던 남녀가 생각지도 않게 헤어지게 되었다면, 그 슬픈 분위기를 나타내는 소리는 비극의 정점이 되어 청중이 눈물을 흘릴 정도로 공감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판소리를 좋아하고, 그래서 듣기를, 또는 부르는 것을 즐기는 것은 슬픔과 기쁨이 정점에 올라 서로 바뀌면서 우리의 감정을 순수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이야기 속의 기쁨은 슬픔으로 바뀌게 되고, 슬픔 또한 오랜 시간 이어지면 자칫, 진부한 옛이야기처럼 지루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슬픔은 또다시 극적인 분위기를 위해 반전이 필요한 것이다. 슬픈 기운을 접고, 다시 새로운 분위기를 맞이할 수 있도록 변화되어야 한다. 이별가 다음의 극적인 반전이 바로 신연맞이 대목이다.

 

신연(新延)맞이란 무슨 말인가?

 

새로 벼슬을 받고, 부임지로 오게 되어있는 감사나 수령을 그 집에 가서 맞이하여 오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이 일은 주로 그 고을의 이방이 맡았다고 하는데, 새 인물이 새 임지로 행차하는 길은 조용하고 한가한 분위기가 아니다. 악대가 따르고, 행렬이 씩씩하고 활달하며 떠들썩한 분위기 속에 빠르게 이루어진다. 이에 따라 세 번째 고수인 젊은 최광수는 힘차고 활기있게 북을 치면서 명창과 호흡을 맞추기 시작한다. 자연스레 슬픈 분위기는 명랑한 분위기로 전환되고 있었다. <다음 주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