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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나들이

[화보] 관동팔경의 명소 고성 청간정(淸澗亭)에 올라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 청간정(淸澗亭)은 강원도 고성군 동해바다가 보이는 언덕위에 지어진 작은 정자이다. 한국인은 옛부터 전망이 좋은 곳에 정자를 지어놓고 풍광을 즐기며, 여름이면 무더위를 식히며, 보이는 자연을 자신의 느낌으로 시를 지었고, 그 중에 내노라 하는 시인들을 이를 목판에 새겨서 정자의 한편에 붙여놓고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도 하였다.

 

이곳 고성 청간정은 한양에서 강릉을 향하여 걷고 걸어 크고 높다는 대관령을 구비구비 오르고 또 올라   먼 산길을 돌고 강릉으로 내려와, 다시 북쪽 바닷가 길을 따라 오르면서 설악산과 울산바위를 돌아보며, 속초에 다다른다. 속초부터 그동안 걸어온 험한길은 끝나고, 앞으로는 평탄한 길로 왼쪽으로는 험한 설악의 산세를 감상하며, 오른쪽에는 탁트인 파란 동해바다를 바라보며 금강산까지 쉬엄쉬엄 갈 수 있는 새로운 출발점으로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곳에 지은 멋진 누각으로 운치있는 정자이다.

 

속초를 지나 고성에 접어들어 바닷가에 지어진 청간정으로 가는 길은 빽빽한 소나무 숲인데, 역사를 음미하며 옛정취를 느끼고자 하는 사람들이라면 이곳을 지나며 들르지 않을 수 없는 명소이기도 하다. 청간정은 백두대간이 동서로 나눈 대관령 동쪽으로 아름다운 자연풍광을 느낄 수 있는 관동팔경의 하나였다. 청간정은 정면3칸 측면2칸의 2층 누각으로 기둥머리에는 익공양식으로 멋지게 장식한 건물로 처음 지어진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조선 중종 15년(1520)에 고쳤다는 역사기록으로 보아, 그 이전에 이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옛 정자는 조선 후기인 1844년 불에 타버렸다. 아마 그 때에도 근래에 자주 일어나는 산불처럼 가끔씩 불이 나서 많은 피해를 입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 이후 나라의 흥망이 겉잡을 수 없는 어려운 세월을 빈터로만 남긴채 수십년 세월을 보내다가 일제강점기인 1928년 옛 정취를 안타깝게 생각한 군민들이 힘을 모아 현재의 정자를 복원하였고, 이후 1981년 전체적으로 해체복원하였다. 청간정에는 조선조의 명필인 양사언, 문장가 정철, 숙종의 어제시를 비롯한 많은 글들이 있었으나, 이들은 1844년 화재로 모두 소실되었다. 복원 건립 이후로는 1953년 당시 대통령인 이승만이 건물 안쪽에 현판을 써붙였고, 또 잠시 군부정권 아래에서 대통령을 한 최규하도 짧은 시를 지어 붙였다.

 

현재 청간정은 많은 사람들이 강원도 고성을 찾으면 들러가는 명승고적으로 현재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2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주변이 자꾸만 개발되고 건물들이 들어서고 있지만, 다행히 바닷가 주변으로는 군사보호구역으로 인공물과 건축물들이 별로 없어 그나마 옛 사람들이 느끼던 자연풍광을 조금이나마 즐길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러나 앞으로 군사시설들이 철거된다면 현재의 바닷가 모래밭도 어찌 될지 염려스럽기도 하다. 고성의 명소 청간정이 그나마 지금처럼 바닷가 풍광을 즐기기에 충분하도록 유지되길 빌어본다.

 

청간정을 지나서 바닷가를 따라서 북으로 계속 가면 한국의 명산 금강산이 지척이다. 그러나 20세기 한민족의 비극인 한국전쟁으로 길이 막혀있어서 자동차로 달려가면 불과 30분만 달려도 다다를 수 있는 금강산을 갈 수가 없다. 하루 속히 남북이 철천지 원수가 아닌 동포의 마음으로 화해의 손을 잡고, 끊어진 길을 잇고, 마음의 문을 열어 통일을 향한 발걸음을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길 고성 청간정에 올라서 바래본다. 공산주의는 형제도 민족도 필요없다는 말이 있지만, 한민족의 미래를 밝게 하려면 그 어렵다는 공산주의도 형제와 동포애로 녹여야만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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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성 기자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