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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

궁류시(宮柳詩)를 쓰고 죽은 석주 권필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34]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祭罷原頭日已斜(제파원두일이사)  제사 마친 들판에 해는 이미 기울고

紙錢翻處有鳴鴉(지전번처유명아)  지전 태워 흩날리는 곳에 갈가마귀만 운다

山蹊寂寂人歸去(산혜적적인귀거)  적막한 산골짝에 사람들은 돌아가고

雨打棠梨一樹花(우타당리일수화)  팥배나무 꽃잎 위로 비는 치누나

 

 

석주 권필(1569~1612)의 ‘한식’이란 시입니다. 한식날 제사를 마치니 이미 해는 기울고, 지전 태워 흩날리니 갈가마귀들은 벌써 알고 제사음식에 침을 흘리는군요. 이제 사람들이 돌아가니 산골짝에는 적막만 감도는데 비는 왜 오는지... 비는 시인의 심정도 모르고 팥배나무 꽃잎을 두들기네요. 쓸쓸한 풍경이지요? 시인의 쓸쓸한 심정이 그대로 풍경에 젖어 든 것 같네요.

 

권필은 어디 구속되기를 싫어하는 자유인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벼슬도 마다하고 평생 야인으로 떠나고 싶으면 언제든지 떠나는 자유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자유로운 사람이니 그 시대 속물 같은 양반들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시도 썼습니다. 이런 권필이기에 조선의 양반들을 프롤레타리아를 착취하는 부르주아로 보는 북한에서도 석주는 인정을 받고 있다고 하네요. 결국 이런 석주의 성격 때문에 석주는 제 명을 다하지 못합니다. 그가 쓴 궁류시(宮柳詩) 때문에 사달이 난 것이지요.

 

宮柳靑靑花亂飛(궁류청청화난비)  궁궐의 버들은 푸르고, 꽃잎은 어지러이 흩날리는데

滿城冠蓋媚春暉(만성관개미춘휘)  성안에 가득한 벼슬아치들은 봄볕에 아양을 떠네

朝家共賀升平樂(조가공하승평락)  조정에서는 입 모아 태평세월 노래하지만

誰遣危言出布衣(수유위언출포의)  그 누가 선비의 입에서 바른말이 나오게 했나

 

* 포의(布衣) : 벼슬 없는 선비를 비유하는 말

* 위언(危言) : 바른말

 

 

1611년(광해 3) 치러진 별시문과에서 임숙영이 왕실 외척의 전횡을 비판하는 대책문(對策文)을 답안으로 제출하여 합격하였었는데, 나중에 이게 문제가 되어 합격이 취소됩니다. 그런데 석주가 이 얘기를 듣고 이를 풍자하는 시를 쓴 것이 ‘궁류시’입니다. 시 첫머리에 궁류(宮柳)가 나오지요? 당시 세도를 부리던 광해군의 처남 유희분은 궁류가 자신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하고 가만히 있질 않습니다. 그리하여 유희분은 궁류가 왕비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왜곡하면서 광해군을 부채질합니다.

 

그리하여 화가 난 광해군은 자세한 것을 알아보지도 않고 이덕형과 이항복 등의 대신들이 만류했음에도 석주를 곤장으로 다스린 뒤 귀양을 보내라고 합니다. 곤장에 베겨 낼 장사가 있습니까? 권필은 들것에 실려 동대문 밖으로 나와 하룻밤 머뭅니다. 이때 친구들이 석주를 위로하려고 찾아왔는데, 석주는 술을 벌컥벌컥 들이마셨다가 그만 장독(杖毒)이 도져 귀양도 가지 못하고 죽습니다. 친구들이 석주를 위로한다는 것이 그만 석주를 황천길로 보냈네요. 43살의 젊은 나이에 죽은 석주 권필. 그가 좀 더 살았더라면 우리는 보석 같은 석주의 시를 좀 더 많이 볼 수 있었을 텐데, 참으로 아쉬운 죽음이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