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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정치를 편 ‘세종의 길’ 함께 걷기

세종 때의 개혁과 코로나19 방역

[생각의 정치를 편 ‘세종의 길’ 함께 걷기 46]

[우리문화신문=김광옥 명예교수]  현재 세계적으로 퍼지고 있는 ‘코로나19’와 연관해 지난번에는 대응전략에서 전문가가 앞에 서서 적극적이냐 그리고 뉴스 처리에 있어 공개적이고 투명한가, 그리고 사회적 거리를 잘 지켜내느냐를 보았다.

 

생활방역

 

정부는 5월 6일부터 그간의 사회적 거리두기에서 생활방역으로 전환했다. 일반적으로 사회적 거리는 50센티 안팎인데 코로나 시대에는 1미터에서 2미터는 떨어져 있으라 한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중규모 집단 사회규칙이고 생활방역은 소집단 곧 가족 단위의 규칙을 일컬음이다.

 

집단 소통은 수십 명 안팎의 집단 모임으로 교회, 세미나, 교실 등이 대상이 되었다. 이를 이제 가족 단위의 모임 곧 식당이나 산책 등은 마스크 착용으로 가능하다는 것이다. 한 예로 4월 15일 국회의원 투표 때 부부인데도 투표장에는 1미터씩 떨어져 걸어 들어가야 했다. 왜 그럴까? 투표장은 집 안이 아니기에 가족 기준이 아니라 남 곧 사회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

 

생활방역은 가족, 연인이면 두 손 잡고 다녀도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5월 1일에서 5일 어린이날까지 이어지는 연휴기간 서울 이태원 술집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집단으로 나타나고 이후 전국으로 확장되었다. 아직 사회적 거리두기 속의 생활방역 체제인데 그 규칙이 술집 한 곳에서 무너진 것이다.

 

마스크를 쓰고, 명단을 기재하고, 담소를 나누더라도 거리두기 규칙을 어느 정도 지켜야 하는데 이것이 무너졌다. 거기에 확진자가 생긴 이태원 주점 다섯 군데 5천여 출입자 가운데 2천여 명의 명단이 허위다. 출입자는 바람직하지 못하다거나 은밀한 행위였음을 스스로 고백하는 결과다. 생명과 생계,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 하는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 주는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우리 사회가 아직 생활방역 준비로 완화하기에 모자람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코로나는 요즘의 격언처럼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셈이다.

 

아날로그 대 디지털 – 혁신

 

우리는 위기를 맞으면 새로운 환경 적응을 위해 사회 제도를 개선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필요한 새 기술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번 코로나 사태를 처리함에 일본은 아날로그 시대에 머물러 여러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이에 견주어 한국은 디지털 처리가 눈에 띈다. 몇 가지 예를 보자.

 

일본은 확진자가 생겨 그 이동경로를 찾아가는데 전화로 문의해 다닌 곳을 하나씩 묻는다. 한국에서는 그 사람에게 묻기도 하지만 휴대폰 지리정보, 카드, CCTV 등으로 점검한다.

 

일본은 ‘유전자증폭(PCR)검사’를 하는데 아날로그식으로 곧 사람이 수동으로 처리함으로 속도가 느리고 다량 처리가 어렵다. 한국에서는 씨젠이란 기업이 ‘분자진단키트’를 디지털을 활용해 자동으로 한 번에 백 건씩을 동시에 일괄 처리가 가능하다. 행정지원금을 한국은 손말틀(휴대폰)이나 누리편지(이메일)로 처리하는데 일본은 우편으로 할 예정이어서 그 비용만 해도 수백억 원이 든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주말 다른 지역 자동차 통행 빈도를 보느라 경찰관이 망원경으로 타 현에서 오는 자동차를 망원경으로 인식하여 자동차 번호를 적고 있다. 이는 CCTV로 확인해 볼 수 있는 일이다.

 

중고등학교 온라인 교육을 하는데 일본에서는 선생이 집에서 강의를 하고 학생이 학교 교실에 모여 칠판에 걸린 화면을 보고 공부한다. 오죽하면 선생님만 살고 아이들은 질병에 노출되어도 그만인 것이냐는 비난이 나왔다.

 

우리 사회가 그동안 4차산업 사회를 향한 작은 변혁을 해온 게 일본과 대비되는 장면이다. 우리 역사 속에서도 이와 유사한 시대가 있지 않았나 여겨진다.

 

세종 때의 개혁

 

 

세종의 특징은 제도를 개혁하고 여러 새로운 창제를 실현해 낸 임금으로 이를 변역(變易)이라 했고 물시계와 악기, 수차, 화포 등을 새로 만들고, 훈민정음을 창제했다.

 

▪ 석경 신제(新制) : 박연이 석경을 새로 만들어 올리다. (《세종실록》 9/5/15)

 

▪ 아악 신제: 여러 신하와 함께 하정례를 행하고 하례 받다. 처음으로 새로 제정한 아악(雅樂)을 사용하니,. (《세종실록》13/1/1)

 

▪ 수차(水車) : 처음에 박서생(朴瑞生)이 일본에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와서 수차(水車)의 이익을 역설하였다. 임금도 이것을 믿었고, 도승지 안숭선도 건의하여 행함직 하다고 하였다. "중국과 왜국에서는 모두 이용하는데 우리나라는 그 사이에 있으면서 어찌 쓰지 못할 이치가 있겠는가. 다만 이것을 사용하는 사람이 힘을 쓰지 않았거나, 혹은 그 요령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김종서가 답한다. "본국은 토질이 나쁘고 샘물이 낮아서, 백배나 공력을 들여도 하루에 물 대는 것은 1무(畝)에 불과하고, 〈수차를〉 그치면 물이 땅속으로 스며들어 가는데, 신이 그 상황을 직접 보았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다 새로 만드는 것을 꺼리는구나.’ 각도 경차관을 돌아오게 하고 인력으로 돌리는 수차는 모두 없애고, 스스로 도는 수차는 없애지 말도록 하였다. (《세종실록》15/4/8)

 

▪화포 : (화포 제도를 새롭게 할 것을 의정부에 전지하고 대호군 박강을 군기감 정으로 삼다.) 내 이제 왕위에 있은 지 28년 동안에 화포에 관심을 두고 자주자주 강론하고 연구하여 제도를 많이 고쳤더니, 여러 신하가 볼 때마다 잘된 양으로 칭찬한다. ‘오늘날의 만듦새로 보면 전의 화포들은 모두 몹쓸 것이 되니 곧 깨뜨려 버림이 마땅하다.’ 전에는 이러한 새 제도를 모르고서 그때 만든 것을 완전히 잘된 것으로 여겼었으나, 이제는 그 우스운 일임을 알게 되었고, 따라서 뒷날에 오늘 것을 볼 때 오늘날에 전날 것을 보는 것과 같게 될까 싶기도 하다.(《세종실록》27/3/30)

 

“오늘날의 만듦새로 보면 전의 화포들은 모두 몹쓸 것이 되니 곧 깨뜨려 버림이 마땅하다.” 기술의 종합이라 할 화포에서 세종은 그간 많은 개선을 해 왔음에도 다시 새로운 연구를 추진하려 한다. 그 연구 정신은 신하들이 쫓아가지 못할 정도다.

 

▪훈민정음 : 반드시 고쳐 새롭게 하자고 의논하는 자가 있을 것으로서 이는 환하게 알 수 있는 이치이옵니다. 옛것을 싫어하고 새것을 좋아하는 것은 고금에 통한 우환이온데, 이번의 언문은 새롭고 기이한 한 가지 기예(技藝)에 지나지 못한 것으로서, 학문에 방해됨이 있고 정치에 유익함이 없으므로, 아무리 되풀이하여 생각하여도 그 옳은 것을 볼 수 없사옵니다. (《세종실록》26/2/20)

 

훈민정음 창제는 그 시대의 경장지의(更張之議)의 일이다, 곧 요즘 표현으로는 사회문화대혁명의 사건이다. 이후 큰 경장은 갑오경장을 생각할 수 있다. 조선 역사에서 실록에 경장이라는 용어는 일반적으로 쓰이고 있으나 이름 그대로의 큰 변혁이라 할 경장은 이후 갑오개혁이 있을 뿐이다. 갑오개혁은 1894년 봄 호남에서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난 것을 계기로 7월 27일 개혁추진기구로서 군국기무처(軍國機務處)가 설치되고, 내정개혁을 단행하게 하였다. 1894년(고종 31) 7월부터 1896년 2월까지 추진되었던 일련의 개혁운동인 갑오경장은 그 뒤 3차로 나뉘어 추진되었다.

 

현대사회는 옛것에 머물러 있으면 기술적으로 아날로그 정신에 머무는 격이 된다. ‘코로나 19’는 우리 사회에 새로운 도전을 던져주고 있다. 의료의 대응과 사회 시스템의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나아가 2차, 3차 파동이 예고되고 코로나 이후의 경제 산업계의 재편은 물론 새로운 세계의 구도가 예상된다.

 

이 시간에도 한 사회는 달콤한 개인의 자유냐, 쓸쓸한 자가 통제냐를 선택해야 한다. 이것이 안 되면 중국이나 이탈리아처럼 록다운(lockdown) 곧 봉쇄를 감수해야 한다. 봉쇄 없이 자유로움을 즐기게 되면 몇만 단위의 생명을 잃어야 한다. 나의 자유냐, 나의 절제냐를 선택해야 한다. 사회방역 준수냐, 봉쇄냐를 선택해야만 한다. 생명이냐, 생업이냐를 선택해야 한다. 길은 명확하다. 둘을 조화 있게 추진해야 한다.

 

한 시대를 새롭게 고쳐나간 신제(新制) 정신으로 살아간 세종을 오늘 다시 돌이켜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