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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나들이

조선왕릉 형식을 잘 갖춘 인조의 파주 장릉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 파주 장릉은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장릉로에 있는 조선 제16대 임금(재위 1623 ~ 1649) 인조와 그의 부인 인열왕후가 함께 묻힌 왕릉이다. 파주 장릉은 두사람이 함께 있으나 봉분은 하나이며 능의 앞에 있는 혼유석은 2개가 설치되었다.

 

인조는 광해군을 몰아내고 반정으로 왕이되었는데, 반정에 성공한 뒤 공신록상 등급에 불만을 품었던 이괄이 난을 일으켰으며, 북방의 여진족을 무시하여 결국 국란을 불러들여 정묘호란, 병자호란으로 남한산성에서 농성하다가 결국 내려와 송파구 삼전동에서 청나라 황제를 향하여 항복하였다. 인조는 이를 천추의 한으로 여겼다. 당시 정권을 잡은 서인들은 아무리 청나라가 강한 나라라 하더라도 이들은 유교의 종주국인 명나라를 멸망시킨 오랑캐요 언젠가 반드시 그 원한을 되갚아야할 원수였다. 그리하여 늘 북벌을 주장하였으나 한번도 북벌을 위한 출병은 하지 못하였다

 

당시 조선의 국시는 송나라 주자가 세운 유교의 한 학파인 성리학만이 유일한 학문으로 숭상하였다 이들은 공자의 가르침을 비롯하여 유교경전 중에서도 오직 주자가가 해석한 것만을 믿고 따르고 가르쳤는데  주자가 해석한 것과 다른 해석을 하는 사람은 모두 사문난적으로 여겼다. 당시 주자학을 숭상하는 성리학자들은 명나라만을 종주국으로 여겨 명나라가 망한 뒤에는  오로지 조선이 명나라를 이을 성리학의 나라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세상은 변했다. 명나라를 멸망시킨 청나라에는 서양문물, 서양사람들이 밀려왔고 서양 종교도 들어왔다. 그러나 조선은 이들이 모두 오랑캐이고 오랑캐 문화이기에 받아들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세계 정세에 빗장을 걸어 잠근 조선은 앞서 겪은 임진왜란과 이은 병자호란을 겪고도 세계조류에 눈감고 지내다가  급기야 인조때, 청나라에 볼모로 붙잡혀갔던 큰아들 소현세자가 돌아와 청나라에 들어왔던 서양문물을 받아들이려 하자, 이를 못마땅하게 여겼고 결국 그를 죽이고 말았다.

 

이처럼 세상의 조류에서 벗어난 시절의 왕이었던 인조는 1649년 승하하여 이곳 장릉에 묻히게 되었다. 조선의 왕들은 통일신라 이후 왕묘를 따라서 능을 썼다. 통일신라시대의 왕릉은 고려에도 이어졌고, 조선에까지 이어져 왔으나, 각각의 왕릉은 시대별로 약간씩의 차이가 있다.

 

조선왕릉의 구성은 능의 입구에 홍살문이 있고, 홍살문 바로 앞에 죽은 왕의 신령이 다니는 신도(神道)가 있다. 또한 신도와 나란히 신을 모신 향로를 들고 들어가는 향로(香路)가 있으며 향로보다 낮게 오른쪽에는 왕이 다니는 어로(御路)가 있다.  어로를 따라가면 제사 행위를 실현하는 정자각(丁字閣)이 있으며, 그 정자각 뒷편 언덕 위에는 이곳의 주인공인 왕릉이 있다.  

 

왕릉은 왕이 누워있는 지하 석실분 위에  둥근 봉분을 설치하였고 봉분의 뒷편으로 담장(곡장)을 둘러 왕릉을 보호하고 있으며, 봉분의 주변과 곡장 사이에는 돌호랑이(石虎)와 돌양(石羊)이 밖을 향하여 왕릉을 지키고 있고, 봉분의 바로 앞에는 왕의 혼이 노닌다는 혼유석(魂遊石)이 있으며, 그 앞으로는 불을 밝히는 장명등(長命燈)이 있고, 그 좌우로는 문인석, 무인석 그리고 망주석이 있어 왕을 살아있는 듯 호위하고 있다.

 

왕릉의 봉분 주변에는 둥글고 큰 봉분의 흙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봉분 주변에 병풍석을 둘러 봉분을 보호하여 치장하였고, 병풍석의 외부로 바로 아래에는 박석(바닥에 깐돌)을 깔아 잡초가 나지 않도록 했으며 , 박석 외부로는 범접하지 못하도록 난간석을 둘렀는데, 조선의 왕릉들을 둘러보면 모든 왕릉이 파주 장릉처럼 격식을 잘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인조의 능인 파주 장릉은 조선의 왕릉 중에서도 석물들이 가장 잘 갖추어진 왕릉의 하나로, 태조인 이성계의 건원릉(구리 동구릉에 위치)과도 비교될 만큼 잘 갖추어져 있는 능이다.

 

코로나19로 세상은 어지러운데 인조임금의 무덤인 파주 장릉의 모습은 지금 한창 초여름으로 들어서려는듯 신록이 푸르르다. 조선왕조의 16대 임금으로 소중화 사상에 사로잡혀 한 세상을 살다간 인조임금! 그러한 소중화 사상 보다는 오천년전 홍익인간, 재세이화를 이상으로 삼고 고조선을 세운 단군왕검의 개천사상이 훨씬 나은 가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인조가 잠든 파주 장릉에서 새삼 해본다. 

 

기자정보

최우성 기자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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