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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암행어사 출또여! 출또여!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473]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춘향 모친과 향단이가 정화수를 떠 놓고 “올라가신 구관 자제 이 몽룡 씨, 전라감사나 암행어사나 양단간에 수의허여 내 딸 춘향을 살려주오”라고 빌고 있는 <후원(後園)의 기도> 대목을 소개하였다.

 

걸인이 된 이도령과 이를 쫓으려 하는 춘향모의 대화가 슬픔 속에서도 웃음을 제공한다. 내 처지가 남을 동냥할 처지가 아니라고 이 도령을 쫓아내려는 춘향모와 동냥은 못 주나마 구박 출문이 웬일인가로 대항하는 어사또의 설전이 재미가 있다. 김세종제는 이 대목을 다소 점잖게 표현하는 반면, 동초제 소리는 실제의 상황에 충실하기 위해 연극의 각본과 같이 짜여 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번 주에는 <암행어사 출도대목>이다. 이 대목은 매우 빠른 장단으로 많은 사설을 노래하기 때문에 유심히 듣지 않으면 무슨 내용인가 이해하기 쉽지 않다. 김세종제의 출도대목 사설을 조상현의 창으로 옮겨보면 아래와 같다.

 

“어사또 마루 앞에 썩 나서며 부채 피고 손을 치니, 그 때으 조종(나졸)들이 구경꾼에 섞여 섰다, 어사또 거동 보고 벌떼 같이 달려든다. 육모 방맹이 들어메고 (가운데 줄임) 삼문(三門)을 와닥 딱, ‘암행어사 출또여! 출또여! 암행어사 출또’ 하옵신다. 두 세번 부르난 소리, 하날(하늘)이 덤쑥 무너지고 땅이 툭 꺼지난 둣, 수백명 구경꾼이 독담(돌담)을 무너지닷이 물결같이 흩어지니 항우(項羽)의 음아질타(叱咤) 이렇게 무섭던가? 쟁비(張飛)의 호통소리, 이렇게 놀랍던가? 유월의 서리 바람, 뉘 아니 떨겄느냐? 각읍 수령은 정신 잃고 이리저리 피신헐 제, 하인 거동 장관이라.”

 

 

암행어사 출도라는 것이 어느 정도의 위용을 가진 출현인가? 하는 그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암행어사(暗行御史)가 출도하는 경우는 대체로 행실이 고약하거나 좋지 못한 지방의 관찰사나 우두머리를 벌하기 위해서, 또는 중요한 사건을 처리하기 위해서 어사가 지방 관아에 조종들을 데리고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위용이 항우의 음아질타, 곧 항우가 큰 소리로 꾸짖는 것보다도 무섭고, 장비(張飛)의 호통소리보다도 더 놀랍다는 것은 암행어사의 위용이 어느 정도인가를 강조하는 표현이라 하겠다.

 

“수배들은 갓 쓰고 저의 원님 찾고, 통인은 인궤(印櫃-관청의 도장 넣어 두는 함) 잃고, 수박통 안았으며 수젯집 잃은 칼자(음식 준비하는 하인) 피리 줌치(주머니 사투리) 빼어차고, 대야 잃은 저 방자 세수통을 방에 놓고, 육삼통(유삼통-油衫筒, 비나 눈을 막기 위하여 옷 위에 껴입는 기름에 결은 옷통) 잃은 하인 양금 빼어서 짊어지고, 일산 잃은 보종들은 우무(우뭇가사리를 녹여 만든 음식) 장사 들대 들고, 부대 잃은 복병마부 왕재섬(왕겨섬의 사투리)을 실었으며 보교(步轎-가마의 하나) 벗은 교군들은 빈 줄만 메고 들어오니 원님이 호령허되”, <아래 줄임>

 

윗글에서 수행하는 하인들은 정신이 없어 저의 원님 갓을 쓰고 찾고 있으며, 통인은 인궤를 잃어버리고 수박통을 안고 있으며, 수저통 잃은 칼자, 곧 음식 담당 하인은 피리 주머니를 빼어 차고, 유삼통을 잃어버린 하인은 양금(洋琴)이 그 통인 줄 알고 양금을 빼어서 짊어질 정도로 정신을 잃고 어지러운 상황이 만들어 졌다는 말이다. 유삼통을 잃은 하인이 다급하고 정신이 없어서 얼떨결에 양금을 짊어졌다는 표현이 재미있다.

 

여기서 <양금>이라고 하는 악기가 나오고 있어 이를 잠시 설명하고 이어가도록 한다. 양금은 서양금(西洋琴)의 준말이다. 달리 구라철사금(歐邏鐵絲琴), 또는 구라철현금 등으로도 불렀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현악기인 거문고나 가야금과 같은 현악기들은 명주실을 꼬아 만든 줄로 소리를 내는 반면, 양금은 철사줄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양금은 사다리꼴의 사각형 판면 위에 긴 괘를 2개 세우고, 그 위에 가느다란 철사줄 4줄을 한 조로 하여 14조, 곧 56줄을 얹고 가느다란 채로 때려 소리를 낸다.

 

이 악기의 특징은 무엇보다도 음색이 매우 밝고 화려하다는 점이다.

 

원래 이 악기는 회교음악에 쓰였다가 10~12세기 무렵, 유럽에 전파되었고, 16세기 말경, 선교사 마테오리치(Matteo Ricci)에 의해 중국에 전해졌으며, 그 뒤 우리나라에는 조선조 후기, 영조 무렵에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지원의 《연암속집》에 양금에 관한 기록이 보이고, 그 이후, 순조 때에는 이규경이 양금에 관한 악보, 곧 《구라철사금자보》를 펴냈으나, 크게 사용되지 못한 악기로 남아있었다. 그러다 고종 이후에는 정악이나 민속합주 등 특히 소규모의 실내악이나 사랑채 음악으로 대표되는 줄풍류, 가곡 반주에 쓰여 왔다.

 

지금도 양금은 <현악 영산회상>, 2~3개 악기의 병주(並奏), 노래 반주, 기타 창작곡 등에서 특징적 음색으로 쓰이고 있다. 현악기들의 음색이 명주실을 꼬아 만든 울림이어서 다소 어두운 편인데 견주어, 양금은 철사줄의 울림이어서 밝고 화사한 음색을 지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