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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

평창 절개산의 흥미로운 역사탐방 시작

평창 절개산을 찾아서 1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35]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얼마 전에 강원도 평창에서 반가운 전화가 걸려왔다. 수원대를 정년퇴임 한 뒤 평창에서 전원생활을 즐기시고 있는 이상훈 교수님이 전화를 주신 것이다. 평창 마지리에 있는 절개산에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가 있으니 한 번 답사하러 오라는 것이다. 이교수님은 나와 같이 ‘얼레빗’ 회원이신데, 평소 내가 <우리문화신문>에 연재하고 있는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를 즐겨 보신다고 한다. 내가 주로 우리 역사에 대해 연재하고 있기에, 이교수님은 절개산의 숨은 역사 이야기를 알게 되시자 나에게 전화를 주신 것이다.

 

2020. 5. 16. 아침 11시 35분에 배재흠, 김현기 두 분 교수님과 함께 평창역에서 내린다. 두 분도 같은 얼레빗 회원인 데다가 이 교수님과 함께 수원대를 정년퇴임한 교수님들이기에 동행한 것이다. 사실 나야 얼레빗 회원이라는 인연밖에 없지만 세 분 교수님들은 같은 수원대에 봉직하였으니 더욱 유대감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세 분은 단지 수원대 동료 교수였다는 동류감을 뛰어넘는 끈끈한 동지애가 있다. 세 분은 수원대를 올바른 학교로 이끌려고 교수협의회를 조직하여 재단 쪽과 싸우면서 많은 고초를 겪으며 더욱 끈끈한 동지애로 함께 한 것이다. 지금 이들의 노력이 빛을 발하여 수원대 사학 비리가 밝혀지고 총장은 해임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총장이 뒤에서 학교를 조종하면서 욕심을 내려놓지 않기에, 세 분 교수님들은 정년퇴임을 하였지만, 후배들을 위하여 지금도 학교 정상화에 힘을 쏟고 계시다.

 

기차에서 내려 역대합실로 올라가려는데, 웬 미녀가 나를 부른다. ‘으잉? 누구?’ 요즘 다 마스크를 쓰고 다니니, 얼굴이 낯익은 듯하면서도 얼른 떠오르지 않는다. “저 이 대리예요.” 이대리? 인제 보니 우리 사무실의 이정은 대리다. 맨날 내 방문 열고 나가면 앞에 앉아있는 이 대리를 볼 수 있건만, 이 대리를 여기서 볼 줄이야 생각이나 했겠나. 더구나 바로 전날 사무실에서 본 이 대리를 그다음 날 이 먼 평창에서 보리라는 생각은 전혀 못 했지.

 

내가 놀라움과 반가움으로 이 대리와 인사하니, 남편하고 캠핑을 왔단다. 내가 두리번거리니, 남편은 지금 역 바깥에서 차를 대기하고 자기를 기다리고 있단다. 남편이 캠핑 간다고 하여 처음에는 따라나서지 않았지만, 마음이 바뀌어 기차를 타고 뒤따라 온 것이란다. 젊은 부부가 이렇게 자연 속으로 캠핑을 떠난다니 부럽기만 하다. 내가 젊었을 때는 이렇게 부부가 캠핑간다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는데, 요즈음 캠핑 문화 발달로 언제든지 생각이 나면 떠날 수 있다고 하니 부러운 것이다.

 

이 대리에게 부러운 캠핑 잘 갔다 오라고 하고는 대합실로 나가니, 반가운 이 교수님께서 인자한 미소로 우리를 맞이한다. 언제 뵙고 다시 만나는 것인가? 평창 올림픽 개최 두 달 전인 2017. 12. 2. 이 교수님 만나러 평창에 왔던 것이니, 거의 2년 6개월 만인가? 이 교수님의 모습은 그대로이시다. 평창의 아름다운 자연 속에 거니시다 보니, 세월은 이 교수님 얼굴에 더는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때보다 좀 더 젊어지셨다고나 할까?

 

졸리면 자고 배고프면 먹는다

욕심을 줄이면 행복이 늘어난다

 

해와 달, 꽃과 새는 모두 하나

꿀벌이 신음하면 나도 아프다

 

너의 미소는 나의 기쁨이 되나니

우리 모두 사랑하자 하나가 되자

 

이 교수님이 정년퇴임 하면서 낸 수필집 《손에 잡히는 생태계》에 나오는 이 교수님의 자작시다. 졸리면 자고 배고프면 먹는다... 저 시를 쓰실 때는 그런 삶을 동경하며 쓰셨겠지만, 지금의 이 교수님의 삶이 바로 그런 삶이지 않을까? 조금 전에 이 대리에게 부러움을 느꼈는데, 지금 다시 이 교수님에게 부러움을 느낀다.

 

이 교수님은 오늘은 자신이 기사라며 운전대를 잡고 출발하신다. 참! 출발하기 전에 평창역에 대해 칭찬 한마디 해야겠다. 출발하기 전에 화장실에 들렀는데, 소변기 옆에 우산 걸이대가 보이는 것이다. 평소 비 오는 날 공중화장실에 들어갈 때 우산 두는 곳이 마땅치 않았는데, 평창역은 그런 사소한 배려까지도 하고 있구나.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우리는 먼저 민생고부터 해결하러 가기로 했다. 그런데 이 교수님은 가다가 강변에 잠시 차를 세운다. 강변에는 큰 돌비석이 세워져 있고, 그 옆에는 2017. 1. 12. 심재국 평창군수가 기념으로 심은 소나무가 하늘을 향해 손을 벌리고 있다.

 

돌비석에 새겨진 글은 “여기에서 평창강이 시작됩니다.”다. 으잉? 강이 시작하는 곳이라면 가느다란 물줄기이어야 하지 않나? 이곳은 꽤 큰 물줄기인데? 옆에 안내문을 보니 태기산 동쪽 흥정산에서 발원한 흥정천과 오대산 남쪽 계방산에서 발원한 속사천이 여기서 만나는데, 이렇게 만나는 구간부터는 평창강이라고 부른단다. 두 개의 하천이 만나 넓어졌으니 더는 하천이라고 부를 수 없어, 평창강이라고 하는 모양이구나.

 

 

 

안내판에서 눈을 떼어 평창강을 바라본다. 과연 오른쪽에서 흘러오는 흥정천이 속사천을 만나 같이 왼쪽으로 흘러간다. 물줄기를 보니 흥정천이 속사천보다는 조금 더 덩치가 있고, 그래서인지 원래 자기 가던 길을 가는 흥정천에게 속사천이 자기도 끼어달라며 꼽사리 끼는 것처럼 보인다. 2년 6개월 전에 왔을 때 이 교수님이 우리를 흥정계곡으로 안내했었는데, 지금 저 흥정천을 거슬러 올라가면 흥정계곡을 만날 수 있겠구나.

 

평창강은 여기서 구불구불 220km를 흘러 영월 한반도면에서 주천강과 만난다. 평창강이 주천강과 만나는 곳의 지형이 한반도 모양처럼 생겨 유명세를 타자, 아예 면 이름을 한반도면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이렇게 주천강을 만난 뒤로는 평창강은 강 이름을 서강에게 넘긴다. 그리고 서강은 영월 읍내에서 동강을 만나 남한강이 되고, 또 남한강은 두물머리에서 북한강을 만나 한강이 되어 힘차게 서해를 향해 가는 것이다.

 

흥정천과 속사천이 만나는 곳에는 바위 세 개가 나란히 서 있다. 삼형제 장군 바위라고 부른단다. 삼형제 장군? 바위 모양은 윗대가리를 잘라낸 듯이 뭉툭한 것이 장군의 위용은 별로 느끼지 못하겠는데? 전설에 따르면 삼형제 장군은 맥(貊)국의 마지막 임금인 태기왕의 휘하장수였단다. 그런데 태기왕이 진한과의 전투에서 패배하여 궁지에 몰리자 삼형제(森炯濟) 장군이 태기왕을 업고 저세상을 향하여 물속으로 뛰어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저 앞의 바위가 그때 물속에 뛰어든 삼형제 장군 바위라는 얘기이구나. 그런데 이름이 ‘삼형제(森炯濟)’라면 ‘三兄弟’와 발음만 같을 뿐 한 사람 아닌가? 임금을 업고 물속으로 뛰어든 장군도 한 사람일 것 같은데... 허나 앞에 보이는 바위는 셋이나 되니 어떻게 된 거지? 태기왕과 삼형제 장군 그리고 의문의 또 한 사람? 아니면 실제로 3 형제의 장군이 있었나?

 

그리고 죽으려고 강물에 뛰어든 것이라는데, 저 정도 강물에 뛰어들어봐야 죽을 수 있을까? 그 당시에는 평창강이 이보다 훨씬 깊었나? 에이! 어차피 전설인데 뭘 따지노? 그렇지만 맥국은 춘천 지역을 기반으로 한 삼국시대 이전에 실재하던 부족국가다. 춘천 일대에는 맥국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남아있다.

 

참! 이곳 태기산도 태기왕 이름을 따서 산 이름으로 하였듯이, 태기산 일대에는 태기왕에 관한 이야기가 남아있다. 그리고 강원도에는 맥국뿐만 아니라, 강릉 지방을 기반으로 한 예국도 있었다. 비록 사료와 유물 부족으로 우리에게 삼국시대 이전의 부족국가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앞으로 우리 사학계가 이뤄내야 할 연구과제일 것 같다.

 

이 교수님이 점심을 먹기 위해 우리를 데려간 곳은 키스멧카페라고 길에서 조금 위로 올라간 숲속에 자리 잡은 카페 겸 펜션이다. ‘키스멧’이라고 하여 먼저 키스가 연상되는데, 운명, 숙명을 뜻하는 ‘kismet’이다. 카페 안으로 들어가니 소위 ‘앤티크’라고 부르는 유럽풍 가구와 소품들이 카페 안을 장식하고 있고, 벽에도 유럽의 전통 풍경화나 인물화들이 걸려 있다. 카페 안뿐만 아니라 주인장이 구경시켜주는 펜션 안도 유럽식으로 꾸며져 있다.

 

 

단순히 펜션과 카페를 하려고 싸구려 소품과 그림들을 비치한 것이 아니다. 주인장인 최경아 대표가 평생 수집한 앤티크와 그림들을 이곳에 키스멧 문을 열면서 가져다 놓은 것이라고 한다. 그렇기에 그림들도 하나 같이 백 년 이상 된 그림들이라 하고... 최 대표가 건네주는 명함에도 작은 글씨로 ‘숲속 작은 유럽’이라고 쓰여 있다. 서울에서 생활하다가 이곳에 숲속 작은 유럽을 꾸며놓고 노후를 보내고자 평창으로 내려온 최 대표. 그녀의 삶이 또한 부럽다.

 

문득 김 교수님의 눈이 반짝인다. 반짝이는 김 교수님의 눈이 바라보는 카페 창가에는 피아노가 놓여 있다. 피아노 앞에 앉은 김 교수님이 건반을 두드리자 귀에 익은 선율이 흘러나온다. 가수 조영남이 번안하여 불러 히트친 곡 <제비>다. 김 교수님의 눈빛은 피아노 건반을 향하고 있지만, 또 한편으로 김 교수님의 눈빛은 내면으로 흘러 먼데 시공간을 흐르는 듯하다. 분명 김 교수님에게는 뭔가 특별한 사연이 있는 곡 같다. 나는 가수 이용의 <10월의 그 마지막 날> 멜로디를 들을 때면 아내와 데이트 하던 그 시절이 떠오르는데, 지금 제비를 소환하는 김 교수님에게는 어떤 장면이 떠오르고 있는 것일까?

 

 

 

이윽고 이 교수님이 미리 예약 해놓았다는 점심이 나온다. 그런데 예쁜 접시에 담겨 나오는 것은 울긋불긋 크림을 덮은 팬케이크다. 주식(主食)이 나오기 전에 입맛을 돋우라고 나오는 것인가? 그런데 그러기에는 양이 많다. 팬케이크가 오늘의 점심이었다.

 

팬케이크를 한참 먹던 김 교수님이 한 말씀 하신다. 한 끼 식사한다면 뭔가 씹히는 것이 있어야 하는데, 이건 씹혀지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하하! 나도 뭔가 허전함을 느끼고 있었는데...^^ 우리 말을 들었는지, 최 대표가 인절미를 가져다준다. 우리가 맛있게 인절미를 씹고 있으니까, 최 대표가 인절미 한 접시를 또 갖고 나온다. 하하! 씹히는 인절미가 주식이 되어버렸네.

 

식사도 마쳤겠다, 이제 우리를 평창으로 이끈 목적지로 가야지? 그런데 카페 안에서 피아노에 눈을 반짝이던 김 교수님이 밖에 나와서도 뭔가에 눈을 반짝인다. 야외 탁자 옆에 포장도 뜯지 못한 채 고스란히 비를 맞고 후줄근해진 뭔가에 눈이 간 것이다.

 

최 대표는 조립용 이젤을 사 왔는데, 조립해줄 사람이 없어 그대로 비를 맞히며 놓아두었다는 것이다. 김 교수님의 손이 포장을 뜯는다. 그리고 이리저리 부속품들을 살피던 김 교수님은 배 교수님을 조교(^^)로 부리면서 이리 구멍을 맞춰보고 저리 나사를 돌리면서 금방 이젤을 완성한다. 역시 공대 교수님이 다르긴 다르네! 연신 고맙다는 최 대표의 인사를 뒤로하고 우리는 출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