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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루터기까지 내어주는 나무

[정운복의 아침시평 46]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그루터기는 나무가 잘려나가고 땅에 박힌 뿌리만 남은 것을 의미합니다.

그루터기에는 나이테(연륜)가 드러나 있어 그 나무가 지나온 세월을 짐작할 수 있지요.

한때의 성장과 영화로움을 뒤로한 흔적의 역사일 수 있습니다.

 

쉘 실버스타인이 지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마지막은 이러합니다.

사랑하는 소년에게 열매와 나뭇가지 몸통까지 다 내어주고 그루터기가 된 사과나무는

이제 늙어 아무런 욕망도 남지 않은 소년이 찾아왔을 때

평평해진 몸통을 펴며 여기 앉아 편히 쉬라고...

그래서 나무는 행복했노라고...

그 사랑의 깊이가 너무 깊어서 눈시울이 붉어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식물은 생명의 유연성을 자랑합니다.

동물에 비하여 이동의 자유가 없는 식물을 표현할 때

"식물인간", "식물국회" 등등으로 부정적인 표현을 동원하지만

실제로 유전자지도를 그리면 동물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동물은 작은 상처에도 목숨을 잃기 쉬운 반면에

식물은 몸통이 통째로 잘려나가 그루터기만 남은 상태에서도

싹을 틔워 생을 이어가는 삶의 유연성이 있는 것도 장점이지요.

 

산을 오르다보면 톱으로 쓱쓱 베어간 흔적의 그루터기를 만납니다.

그루터기만 보고 살아있는 나무를 상상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위풍당당했던 굳건한 역사의 단면은 쉬 인식할 수 있습니다.

 

만물 불문미악 개유요용처(萬物 不問美惡 皆有要用處)라 했습니다.

만물은 아름답거나 추하거나 간에 모두 다 요긴하게 쓰이는 곳이 있다는 말씀이지요.

그루터기는 오랜 세월을 지낸 만큼 다리 아픈 사람에게 쉼을 제공하기도 하고

개미나 놀래기가 깃들어 살도록 서식처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이렇듯 길 가에 놓인 돌 하나 풀 한포기도 의미가 있습니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일컬어지는 인간의 위대함을 봅니다.

세상엔 무시당해도 좋을 사람은 존재하지 않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