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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판소리 유파(流波) 이야기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476]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동초제 춘향가 중 암행어사 출도 직전까지 줄풍류가 벌어졌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거문고, 가야금, 피리, 젓대, 생황, 단소와 같은 선율악기들과 북, 장고와 같은 타악기들이 나열되고 있는 점에서 대편성이었음을 알게 한다는 이야기, 김세종제 암행어사 대목에 견주어 동초제의 사설은 훨씬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어 이해하기가 쉽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동초제 소리에 등장하는 악기들의 종류를 보면 같은 대목의 김세종제에 나오는 악기들보다 그 종류가 훨씬 많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관악기, 현악기, 타악기 등이 골고루 소개되고 있어서 대단위 합주 음악을 연주해 왔다는 사실을 알게 한다.

 

상식적인 이야기이지만, 가야금이나 거문고, 양금과 같은 악기들이 중심되는 합주를 일러 줄풍류라고 부른다. 예전에는 지역마다, 마을마다, 선비들의 풍류방이 있어서 줄풍류가 성행하였으나, 요즈음은 거의 찾아보기가 어렵다. 줄풍류는 실내 공간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방중(房中)악, 또는 세악(細樂)이라고도 부른다.

 

이러한 실내 음악은 음량이 작고 약한 현악기들이 중심이 되고, 관악기들은 현악기의 음량과 배합되도록 최대한 음량을 줄이거나 아예 작은 악기로 소리를 내야 한다. 만일 방안에서 부는 피리 가운데 향피리를 분다면 어찌 되겠는가!. 다른 악기들의 가락이나 특징적 음색을 방해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방안에서 시조 반주를 할 때 쓰는 아주 작은 소리를 내는 세피리로 연주해야 한다. 대금 역시 저취법(低吹法), 곧 낮은 음으로 불어야 하고, 해금의 경우에는 울림통 중앙에 놓여 있던 <원산>이라는 연결고리를 가장자리로 옮겨야 한다. 그 밖에 장고는 변죽을 조용하게 울려야 하고, 북은 제외해야 현악기군(群)과 합주가 가능하다.

 

전통적으로 이어져 오는 국악합주의 형태는 비교적 다양한 편이다. 편종과 편경이 들어가는 편성, 당피리가 참여하는 편성, 관악기 위주의 합주, 현악기 위주의 합주, 삼현육각 등등 합주의 특성을 살리기 위한 편성이 오래전부터 행해져 온 것이다. 악기 편성에 따른 이야기는 별도의 지면을 이용해 더욱 구체적으로 다루어 보기로 하고, 이 난에서는 판소리와 관련된 김세종제와 동초제, 정정렬제 등 명창의 이름 뒤에 따라다니는 제(制)란 무엇인가? 하는 이야기를 해 보기로 한다.

 

 

판소리, 또는 민속 기악의 산조(散調) 음악은 명인, 명창마다 부분적으로 다르게 짜여 있다. 이처럼 00제, 또는 00류 등, 계파(系派)나 류파(流派)는 어떻게 형성되는 것인가? 각기 다른 음악성이나 취향에서 오는 가락이나 장단, 시김새의 차이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자연스럽게 이어져 온 일종의 변형을 두고 개인의 창작이나 음악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긍정적 견해와 오히려 변형이 원형만 못하다는 부정적 견해가 각을 세우는 모습도 감지되고 있다. 이처럼 유파를 두고 각자가 보는 시각이나 관점이 차이가 있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그것이 무형문화재 지정과 관련해서는 더더욱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유파를 사전적 의미로 보면 ‘원줄기에서 갈려 나온 갈래나 파’로 정의된다. 곧 원류(原流)가 있고, 그 원류에서 갈려 나와 또 다른 갈래가 만들어졌을 때, 또 다른 갈래를 인정하는 말이다.

 

지난해 겨울, 모 학회가 주최하는 무형문화재 관련 세미나에서 손태도 교수는 판소리와 경기민요를 중심으로 한 무형문화재 보존과 계승에 있어서 유파란 매우 중요한 특징을 갖는다는 내용의 발표를 해서 공감이 컸다. 그에 따르면, 판소리나 산조, 기타 각 지방의 고유한 노래나 춤 등 전통예술에서는 원래의 그것에서 나와 주목할 만한 예술적 내용이 있고 그것을 이어 담당하는 사람들이 있을 때, 이 말을 쓰고 있다고 전제하면서 판소리에서는 유파란 말은 오랫동안 잘 쓰이지 않았다고 했다.

 

가야금산조의 000류처럼 어떤 한 사람이 판소리 한바탕을 모두 새로 짜기는 어려우므로 판소리에서는‘제(制)’란 말을 주로 써 왔다는 것이다.

 

권삼득제나 고수관 제, 김세종제 등등 명창의 이름에 <제>라는 말이 붙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제와 유사한 용어로는 더늠, 바디, 조(調), 파(派) 등도 써 왔다는 것이다.

 

 

더늠이란 특이하게 사설을 짜거나 곡조를 붙여 부르는 것을 말하는데, 갓난아기가 특이한 행동을 할 때, 전라도 사투리로 “쟤 더늠하는 것 보소”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바디는 송만갑제 춘향가, 유성준제 수궁가와 같이 어느 명창이 짜서 부르던 판소리 한마당 모두를 가리키는 말로 현재는 전승 바디를 약 20여 개로 보고 있다.

 

제(制)라고 하는 용어는 더늠이나 바디 외에도 악조(樂調)의 성격을 띠고 있다. 바로 설렁제, 서름제, 호령제, 석화제, 산유화제, 강산제 등등이 조성(調聲)의 성격으로 쓰이고 있으며 파(派)는 지역에 따라 전승되어 오는 판소리의 특성을 가리키거나 그러한 특성을 전승시켜 오는 명창들의 분파를 뜻하는 말로 동편제, 서편제, 중고제 라는 용어가 계파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판소리보존회>가 1971년부터 지금까지 매년 ‘판소리 유파발표회’를 해 옴으로써 판소리에서 유파란 말은 일반적으로 쓰이는 말이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