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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

물은 흐르고 꽃은 피나니

중리 선생님이 주신 부채와 수류화개(水流花開)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38]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얼마 전에 서예가 중리 선생으로부터 부채를 선물 받았습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부채를 펼쳐 드니, 부채에는 중리 선생의 특유의 휘날리는 필체로 ‘妙用時 水流花開’라고 쓰였습니다. 추사가 초의선사에게 보낸 편지에 나오는 구절이라고 합니다. 앞 구절까지 하면 이렇습니다.

 

 

靜坐處 茶半香初 정좌처 다반향초

妙用時 水流花開 묘용시 수류화개

 

고요히 앉은 자리 찻잔을 반을 비웠어도 향기는 처음과 같고

미묘히 흐르는 시간 속에도 물은 흐르고 꽃은 피는구나

초의선사에게 써 준 글씨인 줄은 몰라도,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추사가 쓴 위 글귀가 나옵니다. 이 글귀는 많이 보던 추사의 다른 글씨와 또 다른 맛입니다. 추사는 참 다양한 서체의 글씨를 남겼습니다. 그런 다양한 서체가 바탕이 되어 마침내 자신만의 독특한 추사체가 완성된 것이라고 하겠지요.

 

 

‘水流花開’라는 문구는 원래 송나라 시인 황정견의 시에 나오는 시구입니다. 원문은 이렇습니다.

 

萬里長天(만리장천)  구만리 긴 하늘

雲起來雨(운기래우)  구름 일고 비 내리네

空山無人(공산무인)  빈 산에는 아무도 없는데

水流花開(수류화개)  물은 흐르고 꽃은 피네

 

그런데 ‘空山無人 水流花開’ 시구는 소동파의 시에도 나오고, 그 외 다른 시인들의 시에도 나옵니다. 처음에 누가 이런 싯구를 썼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마 이 싯구에 끌린 많은 시인들이 이를 자기 시에 차용하거나 조금씩 변용하여 쓰면서 유행했던 모양입니다. 당연히 조선의 선비들도 이를 인용하였구요.

 

눈을 감고 ‘空山無人 水流花開’ 시구를 음미하다 보면 뭔가 경치가 떠오르지 않습니까? 화가들도 이 싯구에서 떠오르는 풍경을 그림으로 많이 옮겼습니다. 조선의 고흐라고도 불리는화가 최북(1720 ~ ?)도 이를 그림으로 옮기면서, 그림에 ‘空山無人 水流花開’싯구를 적어놓았습니다.

 

제가 최북을 조선의 고흐라고 하였지요? 고흐가 자신의 귀를 잘랐듯이, 최북은 자신의 눈을 찔렀습니다. 어떤 양반이 그림 요청에 응하지 않는 최북을 핍박하자, 최북은 남이 나를 손대기 전에 내가 나를 손대겠다며 송곳으로 자신의 눈을 찔렀다고 하지요. 아마 그 양반은 최북의 이런 행동에 기가 질려서 꽁무니를 내리고 내뺐을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空山無人 水流花開’ 시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지요. 법정스님은 아예 자신이 기거하던 토굴에 ‘水流花開室’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하더군요. 스님은 늘 이를 보면서 어딘가에 집착함이 없이 물처럼 흐르고, 어떤 묵은 데 갇혀 있지 않고 꽃처럼 늘 새로운 향기와 빛을 발산하는 무소유의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중리 선생님이 주신 부채를 펴들고 잠시 ‘水流花開’의 명상에 빠져보았습니다. 물은 흐르고 꽃은 피나니... 중리 선생님! 고맙습니다! 저에게 水流花開 부채를 주신 깊은 뜻을 가슴에 새기며 세속명리에 집착하지 않는 水流花開의 삶을 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