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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와 진림

조조에 대한 평가는 ‘나관중의 시선’으로 이루어져
[정운복의 아침시평 58]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원소는 조조와 대전을 벌이기 전에 진림에게 명하여 조조의 죄상을 성토하는 격문을 쓰도록 명합니다.

 

【조조의 할아버지 중상시 등은 좌관과 서황과 더불어 요사스러운 짓거리를 하고 탐욕스럽게 수탈을 일삼는 횡포를 부렸다. 그 아버지 승은 균지를 구걸하여 양자가 되었고, 뇌물을 바치고 벼슬을 샀는데 권문세가에 뇌물을 바치고 요직을 꿰차고 중요한 인물들을 쫓아냈다. 조조는 환관에게 양자로 들어간 더러운 씨알로 본래 덕을 쌓지 않았고 경박하고 교활하여 무기를 제멋대로 휘두르며 난리를 좋아하고 재난을 즐겼다.】

 

작성된 격문은 곧바로 허도의 조조에게 전해집니다.

격문을 접한 조조는 갑자기 모골(毛骨)이 송연(悚然)해지며 온몸에 식은땀이 흘러내리지요.

“누가 이 격문을 작성했느냐?”

“진림이란 자가 지었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들은 조조는 웃으며 말합니다.

"격문 속의 일들은 반드시 무략이 있어야 이룰 수 있다. 진림의 글은 비록 아름답지만 원소의 무략이 모자라니 어쩌겠느냐?"

 

훗날 조조가 기주를 공격하여 진림을 포로로 잡은 뒤 물었습니다.

“경이 이전에 지은 글을 보면 죄상은 나 혼자만의 것이고,

악인에 대한 통박도 내 몸에서 그칠 일이거늘,

어찌하여 조상의 대에까지 소급했던가?”

이제 진림이 머리를 조아려 사죄하자 조조는 재주를 아껴 허물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공군모좨주라는 벼슬을 내려

군중에 사용할 서신과 문서의 초고를 작성케 하지요.

 

조조에 대한 평가는 ‘나관중의 시선’으로 이루어진 경우가 많습니다.

역사는 사실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입장과 해석으로 존재하기 때문이지요.

난세의 간웅이라고 알려진 조조는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자(字)가 맹덕(孟德)입니다.

자(字)라는 것은 이름 대신에 부르는 별명과 같은 것인데

‘덕스러움의 으뜸.’이라는 의미를 지니니 말이지요.

 

 

간사한 영웅의 대명사로 낙인찍힌 조조이지만

그의 행적을 보면 칭송할 만한 것도 많습니다.

조조는 천하의 인재를 중용하는 용인술을 발휘합니다.

등용할 수 있으면 정성껏 쓰는 데 주저하지 않았고

타고난 독서광이었으며 문장력이 뛰어난 시인이기도 했습니다.

그의 아들 조비, 조식과 더불어 많은 시문을 남깁니다.

병법에도 뛰어나 제갈공명과 지혜를 견줄만 했으며

무예도 뛰어나 많은 전쟁터를 누비며 혁혁한 공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입장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세상입니다.

성공하지 못한 쿠데타는 반역이지만 성공하면 혁명이 됩니다.

세상은 이렇게 늘 상대적입니다.

절대 자유의 시각을 갖기는 어려운 일이겠지만

널리 보고 바르게 판단하려고 노력해야 할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