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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서대문형무소 사형수 제1호 허위 의병장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436]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1908년 6월 11일 일본 헌병에 의병장 왕산 허위 선생이 체포되었습니다. 그때 직접 심문을 맡았던 일군 헌병 사령관 아카시 소장에게 허위 선생은 ”일본이 한국을 없애 버릴 계획을 품었기에, 우리가 이를 보고만 있을 수 없어, ‘당비당거(螳臂當車)’ 곧 사마귀가 수레를 막듯, 힘에 벅찬 의병을 일으켰다.”라고 말했습니다. 이후 일본인 소장은 허위 선생의 인품과 식견에 감복해 그를 '국사(國士)'로까지 칭하며 존경했다."라고 합니다.

 

 

안중근 의사는 거사 뒤 법정에서 허위 선생에 대해 "우리 2천만 동포에게 허위와 같은 진충갈력(盡忠竭力·충성을 다하고 있는 힘을 다 바침), 용맹의 기상이 있었던들 오늘과 같은 굴욕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본시 고관이란 제 몸만 알고 나라는 모르는 법이지만 허위는 그렇지 않았다. 허위는 관계 제일의 충신이라 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허위 선생은 끝내 서대문 형무소 사형수 제1호로 기록되며 그해 10월 21일 순국했습니다. 사형이 집행될 때 일본 승려가 불경을 외우려 하자, “혹 지옥으로 떨어진대도 어찌 너희들의 도움을 받아 복을 얻으랴.”라면서 거절하였다고 합니다. 죽음에 임하여 “국가의 부끄러움과 백성의 치욕이 이에 이르렀으니 죽지 않고 어이 하리오, 아버지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나라의 주권도 회복하지 못했으니, 불충불효한 몸이 죽은들 어찌 눈을 감으리오”라는 시를 남겼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