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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

무궁화가 나라꽃이 될 수 없는 까닭

강효백 교수의 《두 얼굴의 무궁화》를 읽고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48]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우리 모두 대한민국의 꽃은 무궁화임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무궁화~ 무궁화~ 우리나라꽃~♪♬♪”을 불렀고, 무엇보다도 애국가 가사에 ‘무궁화 삼천리’가 나오니까요. 그런데 왜 무궁화가 나라꽃[國花]인지 생각해보신 적 있습니까? 사실 무궁화는 공식적으로 나라꽃으로 지정된 것도 아닙니다. 강효백 경희대 법무대학원 교수가 ‘무궁화가 왜 나라꽃인가?’라는 의문을 품고 파고들어 《두 얼굴의 무궁화(국가상징 바로잡기)》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강 교수는 전세계의 나라꽃을 조사해보니, 세계 각국은 나라꽃에 대하여 아래와 같은 5가지 특성을 보유했거나, 보유하려고 애쓰고 있다고 합니다.

 

⓵ 지리성 : 원산종이거나 자생지가 분포하고 있거나 국토 대부분 지역에서 재배가 가능한 꽃

⓶ 민주성 : 위에서 아래로의 일방적 지정이 아닌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여 선정한 꽃

⓷ 역사성 : 예로부터 그 나라의 신화, 역사, 문학과 예술에 중요한 지위와 역할을 차지한 꽃

⓸ 접근성 : 국민 대다수가 좋아하고 국민 일상생활에 쉽게 접할 수 있는 꽃

⓹ 상징성 : 국가와 민족의 특징과 전통을 대표할 수 있는 꽃이거나 세계적으로 희귀한 특산종

 

그런데 강 교수는 무궁화가 이런 요건 충족에 매우 미흡하다고 합니다. 무궁화보다 이런 요건을 충족하는 꽃이 훨씬 많은데, 왜 무궁화가 나라꽃이 되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럼 강 교수로부터 무궁화가 나라꽃으로서 자격이 없다는 설명을 들어볼까요. 무궁화는 불과 100여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금북정맥(차령산맥) 이남에서만 자라던 꽃입니다. 그러다가 점차 개량하였지만 지금도 휴전선 인근까지만 생육할 수 있습니다. 제일 중요한 지리성부터 자격 미달이네요. 그리고 무궁화가 한국이 원산지도 아니고, 자생지도 없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북한에서는 1964년 무궁화 대신 목란으로 나라꽃을 변경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전부터 우리 겨레가 사랑하는 나라꽃이었다면 당연히 역사책이나 문학, 노래 등에 무궁화를 찬양하거나 사랑하는 기록이 나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7대 대표 사서(《삼국사기》, 《삼국유사》, 《제왕운기》, 《고려사》, 《고려사절요》,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에 무궁화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습니다.

 

아! 단 한 번 《조선왕조실록》에 그것도 ‘단명(短命)’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강 교수는 중국 《산해경(山海經)》, 《고금주(古今注)》에 군자의 나라에 무궁화가 많이 핀다고 나오지만, 군자의 나라는 우리나라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게 우리나라를 가리키는 것이라면 왜 우리나라 사서에는 나오지 않는 것이겠습니까?​

 

문학에 있어서도 모두 3,355의 옛시조 가운데 무궁화를 읊은 시조는 단 한 수도 없다고 합니다. 양반들이 주로 지었던 한시에도 무궁화를 직접 읊은 것이 없습니다. 다만 소수의 양반들이 중국 한시를 차운(借韻)한 것이 있을 뿐. 참! 정약용이 송옹과 주고받은 한시가 무궁화를 소재로 한 유이(唯二)한 한시인데, 이것도 무궁화를 영 볼품없고 천박한 꽃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노래는 어떨까요? 2,585곡의 민요에 무궁화는 단 한 소리마디도 나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1896년 윤치호의 ‘무궁화 삼천리’ 전까지 그 많은 신화, 전설, 설화, 민담, 속담, 격언 등에 무궁화는 단 한 글자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림은 어떨까요? 우리 겨레가 사랑하던 나라꽃이라면 그림에라도 등장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강 교수는 무궁화를 찾아 옛그림을 샅샅이 뒤져, 천신만고 끝에 무궁화 그림이라고 얘기하는 단 한 장의 그림을 찾았다고 합니다. 조선 말기 화원 유숙이 그린 장원홍(壯元紅)이란 그림인데, 그것도 강 교수는 아무리 보아도 무궁화를 닮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림 왼편 상단의 화제(畵題) ‘壯元紅’에서 이것도 무궁화 그림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했답니다. 바로 ‘壯元紅’은 모란의 한 품종이라는 것이지요. 그림뿐만 아니라 서예, 건축, 조각, 도자기, 벽화 문양 등 미술품과 문화재와 유물은 물론 골동품에도 무궁화 흔적은 없다고 합니다.​

 

강 교수는 이것말고도 무궁화가 나라꽃으로서 매우 미흡하다는 것에 대해 자세히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들고 있는 무궁화가 나라꽃이라는 근거를 하나하나 통렬하게 반박하고 있습니다. 지면관계상 더 자세한 얘기는 하지 않으려나, 위에서 든 것만 하더라도 무궁화를 나라꽃으로 보기에는 영 미흡하지 않습니까?

 

강 교수는 더 나아가 이웃 일본에서는 무궁화가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가를 살펴보았습니다. 일본 최고의 이세신궁을 비롯한 일본의 많은 신사에 무궁화가 피고 있고, 무궁화를 천신(天神)으로 모시는 신궁도 있습니다. 또한 무궁화가 일본 신도(神道)의 부적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일본 불교의 사이린사(西林寺)에는 우리나라에서는 듣도 보도 못한 무궁화지장본존과 나한을 모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문학에는 그토록 나오지 않던 무궁화가 일본 고대 대표적 시가집인 만엽집에도 나오고 일본의 단가(短歌)인 하이쿠에도 무궁화를 노래한 것이 많다고 합니다. 일본의 옛그림은 말할 것도 없구요.​

 

그리고 일본 무궁화의 주품종인 히노마루는 하얀 꽃잎 가운데에 빨간 꽃심이 있는 것이 일장기를 연상하여 이름도 일본 국기 이름과 같은 히노마루(日の丸)입니다. 또 다른 품종인 소우탄은 빨간 꽃심이 방사선으로 퍼져나가는 것이 일본의 욱일기를 연상케 합니다.

 

그래서 일본의 애국가급 대표동요 <히노마루의 기(旗)>의 유투브 동영상(2016년) 배경이 무궁화라고 하고, 일본의 대표 포털사이트인 <야후 재팬>에도 “히노마루라고 불리는 품종의 무궁화는 멀리서 보면 마치 일본의 국기처럼 보이는 꽃이다. 진짜 일본의 국기다”라고 설명하고 있답니다. 그래서인지 일본 우익 총본산인 ‘일본회의’ 뱃지의 핵심 문양도 무궁화입니다.​

 

어떻습니까? 무궁화에 대한 우리나라와 일본의 비교가. 하필이면 일본에서 더 사랑받던 무궁화가 우리나라 국화가 되어야 하는지요? 그럼에도 위에서 본 민주성, 곧 위에서 아래로의 일방적 지정이 아닌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여 선정한 꽃이라면 나라꽃으로 인정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별 언급이 없던 무궁화는 구한말 윤치호가 무궁화를 애국가의 가사에 넣으면서 처음으로 등장했습니다. 그것도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쓰이던 ‘목근(木槿)’이라는 이름이 아닌, 그동안 들어보지도 못하던 ‘무궁화(無窮花)’라는 이름으로요. 그런데 묘하게도 1889년 공포한 메이지 헌법 고문(誥文, 서문)에 ‘천양무궁(天壤無窮)’이 나오고, 1890년 일왕이 발표한 교육칙어에 ‘천양무궁’이 나옵니다.​

 

윤치호는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전혀 쓰지 않던 ‘무궁화’를 왜 갑자기 쓴 것일까요? 그는 1893년 11월 1일에 쓴 일기에서 “만약 내 마음대로 내 나라를 정할 수 있다면 일본을 선택했을 것이다.”, “오 축복 받은 일본이여! 동양의 낙원이여! 세계의 동산이여!” 하면서 일본을 찬미하고 있습니다. 그런 마음이 목근을 무궁화로 하였고, 천양무궁의 무궁화가 삼천리 반도 곳곳에 미치기를 바랬던 모양이지요.

 

윤치호가 이렇게 발동을 건 뒤 친일인사들이 동조했고, 일제가 우리나라에 무궁화를 장려했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일제는 무궁화를 장려하는 남궁 억 선생을 체포하는 등 오히려 무궁화를 박해하지 않았냐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이에 대해 강 교수는 남궁 억 선생의 수사기록이나 재판기록에는 무궁화 얘기가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남궁 억 선생은 겉으로는 무궁화 보급을 내걸고 속으로는 십자가당이라는 비밀 결사 독립운동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구한말까지 우리에게는 별로 사랑을 받지 못하던 무궁화가, 아무리 윤치호가 애국가 가사에 이를 집어넣었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오늘날에 와서 나라꽃이 될 수 있었던 것인지 아직도 의아한 점이 있습니다.

 

강 교수는 일제의 책동과 이에 동조한 친일파들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전국적인 꽃도 아니요, 일반 민중들이 가까이에서 사랑하던 꽃도 아니요, 우리 문학이나 음악, 미술에서도 별도 대접을 받지 못하던 무궁화가 어떻게 나라꽃이 될 수 있었던 것인지 의아한 것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앞으로 좀 더 치밀한 연구가 있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어쨌든 강 교수가 밝혀낸 것만으로도 무궁화는 위에서 말한 나라꽃이 되기 위한 5가지 조건 어디에도 해당하는 것이 없습니다. 더구나 이웃 일본에서 훨씬 더 대접받는 무궁화를, 일장기를 닮은 무궁화를, 친일파가 끌어들인 무궁화를 나라꽃으로 한다는 것은 다시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럼 무궁화를 대신할 나라꽃을 찾는다면 무슨 꽃이 좋을까요? 강 교수는 봄이 되면 전국에서 활짝 피는 개나리를 1순위로 듭니다. 개나리의 원산지는 한국이요 일본에는 없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개나리의 영어 이름은 ‘Korean goldenbell tree’입니다. 하여튼 아직 무궁화가 공식적으로 나라꽃으로 지정된 것도 아닌데, 이참에 우리도 다른 나라들처럼 공식적인 나라꽃을 정하면서 이런 점에 대해 깊은 논의가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