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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원의 우리문화책방

조선에서 길어올린 좋은ㆍ나쁜ㆍ이상한 리더

술자리에서 왕에게 물러나라고 한 신하의 운명은?
[서평] 《조선 리더십 경영》, 윤형돈, 와이즈베리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세조 12년 어느 날, 세조가 주최한 술자리가 무르익었다. 5년간의 오랜 북방 근무를 마치고 조정에 복귀한 양정도 함께였다. 양정은 계유정난의 핵심 공신이나 다른 공신들이 사대문에서 벼슬을 할 때 험지로 유명한 북방에서 근무한 터였다. 바로 그날, 운명을 가른 문제의 사건이 일어난다. 세조가 자신의 명에 따르지 않은 두 신하를 벌주려 하자 뜬금없이 양정이 나선 것이다.

 

“일이 과하십니다! 전하께서 왕위에 오르신 지가 이미 오래됐으므로 이제 쉬심이 마땅할 것입니다.” 해석하자면 왕에게 ‘그만큼 했으면 물러나라’라고 한 것이다. 참고로 이 나라 역사에서 왕보고 물러나라고 대놓고 면전에서 말한 사람은 딱 세 명이다. … 그만큼 역사에 몇 안 되는 대사건을 일으킨 양정의 운명은? 혹시 그 자리의 분위기가 궁금하신 분이 있다면 회사 술자리에서 사장님에게 이제 그만 은퇴하라고 해보자. 물론 나는 절대 책임 안 진다. (p.63)

 

과연 그 후, 양정은 어떻게 되었을까? 술자리에서 벌어지는 이런 사고, 오늘날에도 있을 법하지 않은가? 시대 상황과 세부 정황만 바뀔 뿐, 비슷한 일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역사는 반복된다. 하지만 동서고금을 통틀어, 리더의 역린을 건드린 자의 최후는 그다지 아름답지 못하다. 세조의 역린, ‘왕권’을 건드린 양정의 운명은 《조선 리더십 경영 - 불확실한 우리의 미래, 조선의 리더에게 답을 찾다(윤형돈 지음, 와이즈베리)》의 서평 말미에서 확인해보도록 하자.

 

이 책, 숨 막히게 재밌다. 조선시대 왕과 신하들 사이에서 벌어진 치열한 주도권싸움, 미묘한 갈등, 능수능란한 처세술을 오늘날의 맥락에서 절묘하게 풀어내는 저자의 솜씨가 대단하다. 시대는 변해도 리더십과 처세술의 요체는 크게 변하지 않아서, 이 시대에 사회생활을 하는 누구나 공감하며 읽을 법하다. 예나 지금이나 존재하는 좋은 리더, 나쁜 리더, 이상한 리더는 자신의 권력을 공고화하기 위해 선택하는 수단도 가지각색인데, 바로 여기서 리더십의 성패가 갈린다.

 

가령, 조카 단종을 제거하고 피의 살육전을 벌여가며 대권을 잡은 세조는 유난히 술자리에 집착하는 ‘술자리 정치’를 펼쳤다. 《조선왕조실록》에 언급된 974건의 술자리 가운데 무려 467건이 《세조실록》에서 나왔다니, 술자리 회식이 맹위를 떨치는 한국의 기업문화가 여기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세조가 술자리를 중시한 까닭은 공신들과 친목을 다져서 정통성이 취약한 자신을 보호해줄 친위 세력을 만들고, 강한 왕권을 휘두르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미묘한 갈등과 긴장을 풀기 위해서였다. 물론, 또 하나의 중요한 목적은 긴장이 풀렸을 때를 노려 왕권에 도전하는 자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술자리에서 격의 없이 대화하자는 말에 속아 두고두고 후회한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래 대목을 눈여겨보도록 하자.

 

대부분의 사람은 엄격하던 사람이 친하게 굴면 무의식적으로 경계를 풀게 된다. 그 엄격한 군기반장에게 입단속을 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망하는 지름길이다. 소탈한 모습은 자신을 믿게 만드는 연극이며 속마음을 알아내기 위한 수단이다. 세조는 고스톱 쳐서 왕이 된 사람은 아니다. 그는 술자리를 노는 것만이 아니라 왕권을 위협하는 가시를 찾는 도구로 활용했다. 신하들의 마음을 사는 과정에서 ‘취중진담’도 끌어낸 것이다. (p.58)

 

이렇게 술자리로 다져진 친목은 그대로 패거리 정치로 변질하였다. 세조는 자신의 왕권만 건드리지 않으면 공신이 어떤 잘못을 저지르든 눈감아주었고, 이런 세조의 특혜로 ‘법 위에 사람 있는’ 초법적인 특권 의식이 지배층 사이에 뿌리내렸다. 그때부터 힘 있는 사람이 갑질해도 끼리끼리 봐주는 ‘우리가 남이가’ 문화가 자리 잡아 태종, 세종, 문종이 애써 다져놓은 조선의 행정ㆍ사법 시스템이 무색해졌다.

 

이 책에 등장하는 또 한 명의 못난 리더, 중종은 조광조가 자신이 그어놓은 ‘왕권 침해 마지노선’을 넘었다고 생각되자 하루아침에 토사구팽하고 사약을 내림으로써 예측불가 리더십을 보여줬다. 물론, 조광조도 지나치게 성급히 자신의 개혁을 관철하며 중종을 궁지에 몰아넣은 측면이 있다.

 

저자는 이를 두고 조광조가 ‘거리조절’에 실패한 것은 사실이나, 이는 지켜야 할 선을 분명히 제시하지 않은 중종에게도 그 책임이 있다고 평했다. 저자가 말하는 바처럼, 상급자는 끊임없이 대화하면서 일할 때 무엇을 원하는지 하급자에게 가르쳐야 하며, 맡겨야 할 일은 맡기고 허락받아야 할 일은 꼭 허락받게 하고, 방향이 잘못되면 바로 수정함으로써 거리를 조절해 나가야 서로의 관계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선조 역시 용렬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선조는 자신의 과오를 덮기 위해 애꿎은 신하에게 잘못을 덮어씌우고, 이를 빌미 삼아 숙청하는 방식으로 왕권을 강화하는 ‘가짜 리더’의 전형이었다. 저자는 이런 가짜 리더를 잘못 만나 고통받은 ‘진짜 리더’가 바로 이순신 장군이라고 말한다.

 

선조는 국가와 백성을 지키는 것보다 자신의 왕권을 보호하는 것이 가장 급선무였고, 백성을 버리고 떠난 자신의 리더십이 무너진 상황에서 백성에게 존경받는 이순신 장군은 ‘반드시 죽여야 하는’ 눈엣가시였다. 그래서 원균이 이순신 장군을 모함하자 사건의 전후상황도 따지지 않고 바로 한양으로 압송했고, “반드시 이순신을 죽여야 한다.”라며 모질게 고문했다.

 

이런 ‘리더의 난’이라고 할만한 상황에서도 살아남아 본분을 다한 이순신 장군은 평소 철저한 자기관리와 엄격한 공사구분으로 명망이 높았다. 상벌이 분명하여 자신을 사지로 몰아넣은 부하라도 공을 세우면 제대로 평가해주었고, 가까운 부하라도 자신의 임무에 태만한 자는 군법에 따라 엄격히 처벌했다. 리더가 먼저 솔선수범하고 원칙 있는 태도를 보이자 자연스럽게 조직에 기강이 살아나고 활력이 생겼다.

 

이런 이순신 장군과 쌍벽을 이루는 조선 리더십계의 양대 산맥, 세종은 아버지 태종이 강한 왕권을 바탕으로 한 ‘보스형 리더십’의 대표주자였던 것과 달리, 모든 일을 논의하고 공유해서 처리하는 ‘서번트 리더십(섬기는 지도력)’을 실천한 군주였다. 물론 즉위 초기에 태종만큼의 카리스마나 영향력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왕권이 안정된 뒤에도 세종은 끊임없이 소통하고, 설득하고, 널리 의견을 구했다. 신료들의 의견만 들은 것이 아니라, 그 시대에 무려 5달에 걸쳐 17만 명의 백성을 대상으로 세금제도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저자는 세종과 이순신 장군과 같은 ‘진짜 리더’들의 공통점을 네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업적이 많다. 워낙 유능하여 어떤 일을 맡아도 능히 해낸다. 둘째, 백성을 생각하는 리더였다. 세종의 애민 정신이 강한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순신 장군은 군수 시절에도 백성의 집을 자주 방문해서 어려움은 없는지 챙겼고 모든 작전은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세웠다.

 

셋째, 소통할 줄 아는 리더였다. 세종은 자신의 의견이 반대에 부딪혀도 절대 밀어붙이지 않고 공론화해서 의견을 모은 후 진행했으며, 이순신 장군도 작전을 세울 때 부하들에게 자세히 설명해주고 이해를 구했다. 넷째, 공부하는 사람이었다. 세종의 공부량은 역대 모든 조선 왕을 통틀어 압도적이었고, 이순신 장군은 최상위급 행정능력과 더불어 꾸준한 독서와 저술로 글쓰기까지 잘하는 보기 드문 무관이었다.

 

성리학은 훗날 지나친 권위주의로 흐르며 ‘꼰대’ 이미지가 덧입혀지긴 했지만, 본래 ‘상급자도 도에 따라 의무를 다해야 함’을 강조한 학문이었다. 곧, 리더의 책임과 본분을 무엇보다 중시한 것이 성리학이었으니, 이런 본질을 상기한다면 진정한 군자는 진정한 리더라고도 할 수 있겠다. 또, 조직을 이끄는 직책을 맡고 있지 않더라도 모든 사람은 자신의 인생을 이끌어나가는 리더인 만큼, 리더십을 익히는 것은 곧 인생 경영법을 익히는 것과도 같다. 새롭게 시작한 신축년, 다른 사람을 이끄는 것은 물론, 자신의 인생도 현명하게 이끌고 싶은 독자들이라면 꼭 읽어봐야 할 책이다.

 

참, 그래서 양정은 결국 어떻게 되었을까? 다소 씁쓸한 결말이지만, 오늘날에는 술자리에서 실수해도 목숨에는 지장이 없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왕의 퇴위를 진언한 양정과 술자리 참가자들은 그 분위기를 온몸으로 느끼는 신세가 되었다. 세조는 격노하며 양위할 테니 옥새를 가져오고 세자도 불러오라고 했고, 신하들은 파벌이고 뭐고 내팽개치고 양정을 벌하라고 입을 모았다. 애꿎게 말려든 세자(예종)는 부들부들 떨면서 문 앞에 엎드린 채 들어오지도 못했다. 결국, 양정은 사건 발생 4일 만에 처형당하고 말았다. 단, 본인이 세운 공적이 있어 멸문지화만은 피했다. (p.63)

 

《조선 리더십 경영 - 불확실한 우리의 미래, 조선의 리더에게 답을 찾다》

윤형돈 지음 | 와이즈베리 | 값 1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