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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입춘(立春), 입춘방 붙이고 적선공덕행 하기

매화 여든한 송이 다 그린 날, 문 열면 복이 들어 온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오늘은 24절기가 시작되는 ‘입춘’이다. 선비들은 동지 때부터 구구소한도(九九消寒圖), 곧 매화 아홉 송이를 아홉 줄 모두 81송이를 그려나가는데 이게 모두 마치면 그린 드디어 기다렸던 봄이 온다고 생각한다. 그게 바로 입춘인 것이다. 이제 입춘의 세시풍속 그 모든 것을 톺아보기로 한다.

 

입춘(立春)의 의미

 

입춘은 대한과 우수 사이에 있는 음력 정월(正月) 절기(節氣)로 해가 황경(黃經) 315도에 있을 때이고, 양력으로는 2월 4일 무렵이다. 음력으로는 섣달에 들기도 하고 정월에 들기도 하며, 윤달이 들어있는 해에는 반드시 섣달(12월)과 정월에 입춘이 두 번 들게 된다. 이것을 복입춘(複立春), 또는 재봉춘(再逢春)이라고 한다.

 

옛사람들은 입춘 15일간을 5일씩 3후(候)로 나누어 초후(初候)에는 동풍이 불어서 언 땅을 녹이고, 중후(中候)에는 겨울잠을 자던 벌레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말후(末候)에는 물고기가 얼음 밑을 돌아다닌다고 하였다. 입춘 전날은 절분(節分)으로 불리고, 철의 마지막이라는 의미로 '해넘이'라고도 불리면서 이날 밤 콩을 방이나 문에 뿌려 마귀를 쫓고 새해를 맞이한다.

 

'보리 연자 갔다가 얼어 죽었다'는 말은 입춘이 지나도 추위는 가지 않는다는 뜻이다.

 

입춘의 대표적 민속 입춘방

 

입춘이 되면 새봄을 맞이하는 뜻으로 대궐에서는 신하들이 지은 '춘첩자(春帖子)'를 붙이고, 민간에서는 '춘련(春聯)'을 붙인다. 특히 양반 집안에서는 손수 새로운 글귀를 짓거나, 옛사람의 아름다운 글귀를 따다가 춘련을 써서 봄을 축하하는데 이것을 '춘축(春祝)'이라 하며, 입춘방, 입춘축이라고도 한다. 이때, 댓구를 맞추어 두 구절씩 쓴 춘련을 '대련(對聯)'이라 부른다.

 

이 춘련들은 집안의 기둥이나 대문, 문설주 등에 두루 붙인다. 대련에 흔히 쓰이는 글귀는 다음과 같다.

 

 

*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 : 입춘에는 크게 좋은 일이 있고, 새해가 시작됨에 경사스러운 일이 많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건양’은 고종즉위 33년부터 다음 해 7월까지 쓰인 대한제국 고종황제의 연호(1896∼1897)다. ‘건양다경’은 그 당시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이 편안하다는 뜻의 국태민안(國泰民安)을 비손하는 뜻에서 집집이 써서 붙였다고 한다.

 

* '수여산(壽如山) 부여해(富如海)' : 산처럼 장수하고, 바다처럼 부유해지기를 바란다.

 

* '소지황금출(掃地黃金出) 개문백복래(開門百福來)' : 땅을 쓸면 황금이 나오고, 문을 열면 온갖 복이 들어오기를 바란다.

 

* '신다울루(神茶鬱壘)' : 관상감(觀象監-조선 때 천문, 지리, 측후를 맡아 보던 관청)에서는 주사(朱砂)라는 붉은 물감으로 귀신을 쫓는 글인 '신다울루(神茶鬱壘)'를 써서 궁중의 문설주에 붙여 두었다. 신다와 울루, 이 두 신은 귀신들이 다니는 문의 양쪽에 서서 모든 귀신을 검열하는데 남을 해치는 귀신이 있으면, 갈대로 꼰 새끼로 묶어 호랑이에게 먹인다고 믿는다.

 

 

 

 

최근 토박이말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어려운 한자말이 아닌 쉽고 아름다운 토박이말로 입춘방을 쓰자는 운동을 한다. 예를 들면 입춘을 봄으로 들어간다고 하여 ‘들봄’, ‘건양’은 ‘널리 퍼지는 따뜻한 봄볕’이라고 생각하여 ‘한볕’으로 바꿔 ‘들봄한볕 기쁨가득’으로 쓰자는 것이다. 또 한 서예가는 “새봄 큰 기운 좋은 일 가득”을 권하기도 한다.

 

참고로 ‘흥부집 기둥에 입춘방(立春榜)'이란 속담이 있다. 잠결에 기지개를 켜면 발은 마당 밖으로 나가고, 두 주먹은 벽 밖으로 나가며, 엉덩이는 울타리 밖으로 나가 동네 사람들이 거치적거린다고 궁둥이 불러들이라고 하여 깜짝 놀라 일어나 앉아 대성통곡하는 그런 집을 말한다. 그런 집 기둥에 입춘방을 써 붙였으니 '격에 맞지 않음을 빗대는 말이다.

 

입춘의 세시풍속들

 

* 적선공덕행(積善功德行)

입춘이나 대보름날 전날 밤에는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좋은 일을 꼭 해야 일 년 내내 액(厄)을 면한다는 ‘적선공덕행(積善功德行)’이란 풍속도 있었다. 예를 들면 밤중에 몰래 냇물에 가 건너다닐 징검다리를 놓는다든지, 거친 길을 곱게 다듬어 놓는다든지, 다리 밑 거지 움막 앞에 밥 한 솥 지어 갖다 놓는다든지 따위를 실천하는 미풍양속이다.

 

상여 나갈 때 상여머리에서 부르는 상엿소리에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입춘날 절기 좋은 철에 / 헐벗은 이 옷을 주어 구난공덕(救難功德) 하였는가 / 깊은 물에 다리 놓아 월천공덕(越川功德) 하였는가 / 병든 사람 약을 주어 활인공덕(活人功德)하였는가 / 부처님께 공양드려 염불공덕(念佛功德)하였는가” 우리 겨레는 죽어서까지도 염라대왕으로부터 입춘날의 적선공덕행(積善功德行)을 했는지 심판받는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의 겨레의 더불어 사는 정신이 드러나는 아름다운 풍속이다.

 

* 아홉 차리

이날은 각자 맡은 바에 따라 아홉 번씩 일을 되풀이하면 한 해 동안 복을 받고, 그렇지 않으면 액을 받는다고 생각했다. 글방에 다니는 아이는 천자문(天字文)을 아홉 번 읽고, 나무꾼은 아홉 짐의 나무를 하며, 노인은 아홉 발의 새끼를 꼰다. 계집아이들은 나물 아홉 바구니를, 아낙들은 빨래 아홉 가지를, 길쌈을 해도 아홉 바디를 삼고, 실은 감더라도 아홉 꾸리를 감는다. 또 밥을 먹어도 아홉 번, 매를 맞아도 아홉 번을 맞았다. 아홉 번 한다는 뜻은 우리 조상이 ‘9’라는 숫자를 가장 좋은 양수(陽數)로 보았기 때문이다. ‘아홉차리’는 정월대보름 풍속으로 보기도 한다.가난해도 부지런하고, 열심히 살라는 교훈적인 세시민속이다.

 

 

* 신구간(新舊間)

‘신구간’이란 매년 대한 5일 후부터 입춘 3일 전까지의 기간으로 제주도에서 있는 고유한 풍습인데 한 해에 한 번씩 있는 신들 사이의 인사이동 기간으로 이때는 땅 위의 모든 신이 옥황상제께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고자 하늘로 올라간다고 한다. 그래서 신들이 없는 시기가 되는데 이때 이사를 하거나 해 묵은 집수리를 하면 동티(액)를 막을 수 있다고 하는 풍습이다.

 

* 입춘굿놀이

제주도에서 하는 놀이로 탐라국 시대에 임금이 직접 쟁기를 잡고 백성에게 시범을 보인 데서 유래 되었다고 한다. 입춘굿은 무당조직의 우두머리였던 수신방(首神房)이 맡아서 하며, 풍물패를 앞세우고 집집이 방문하여 마을에 경비를 쓸 일이 있을 때 풍물패를 앞세우고, 재주를 부리며, 돈이나 곡식을 구하는 걸립(乞粒)을 하고, 가정에서 모시는 신의 하나로 집의 건물을 수호하는 맨 윗신인 성주, 옥황상제, 땅의 신, 다섯방향에 있는 오방신(五方神)에게 제사를 지낸다.

 

* 목우(木牛)놀이

함경도 지방에서 전해 내려온 풍속인데 입춘날 나무로 만든 소를 관아(官衙)로부터 민가까지 끌고 돌아다녔다. 이것은 옛날 중국에서 흙으로 소를 만들어 내보내던 풍속을 모방한 것으로 농사를 장려하고 풍년(豊年)을 비손하는 뜻을 지닌 것이다.

 

* 입춘수 받아 마시기 

‘입춘수(立春水)’는 입춘(立春) 전후에 받아 둔 빗물을 말한다. 이 물로 술을 빚어 마시면 아들 낳고 싶은 남정네의 기운을 왕성하게 해준다고 생각했다. 참고로 가을풀에 맺힌 이슬을 털어 모은 물은 추로수(秋露水)인데 이 물로 엿을 고아 먹으면 온갖 병을 예방한다는 믿음이 있었다.

 

서울 동대문 밖에 있는 제기동(祭基洞), 전농동(典農洞)은 선농제(先農祭)의 제사에서 유래한 이름들이다. 농사를 다스리는 신(神)인 신농(神農)에게 풍년을 비는 제사는 신라 때부터 있었는데 입춘(立春) 뒤 첫 해일(亥日)에 선농제, 입하(立夏) 뒤 첫 해일에 중농제(中農祭), 입추(立秋) 뒤 첫 해일에 후농제(後農祭)로 세 차례의 제사를 지냈는데 조선왕조에 들어와서는 이 동대문 밖에 선농단을 짓고, 선농제만을 지내왔고 한다.

 

* 농사점 치기

입춘은 농사의 기준이 되는 24절기의 첫 번째이기 때문에 보리뿌리를 뽑아보아 농사가 풍년일지, 흉년일지를 가려보는 농사점을 친다. 또, 오곡의 씨앗을 솥에 넣고 볶아서 맨 먼저 솥 밖으로 튀어나오는 곡식이 그해 풍작이 된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입춘절식(立春節食)

 

입춘(立春)날 먹는 시절음식은 오신채(五辛菜)라는 다섯 가지 매운맛이 나는 모둠 나물이다. 파, 마늘, 껍질이 누런 자줏빛이고, 속은 흰색인 파보다 더 매운 파인 자총이(紫葱-), 달래, 평지(유채), 부추, 파, 마늘과 비슷한 무릇 그리고 미나리의 새로 돋아난 새순 가운데 노랗고 붉고 파랗고 검고 하얀, 곧 우리 겨레가 좋아하는 오방색을 골라 무쳤다.

 

 

노란빛의 나물을 가운데에 놓고, 동서남북에 청, 적, 흑, 백의 사방색(四方色)이 나는 나물을 놓는데 임금이 굳이 오신채를 진상 받아 중신에게 나누어 먹인 뜻은 사색당쟁을 타파하라는 화합의 의미가 있었다고 한다. 또 일반 백성도 식구들의 화목을 상징하고 인(仁)ㆍ예(禮)ㆍ신(信)ㆍ의(義)ㆍ지(志)를 북돋는 것으로 보았다. 가히 철학이 담긴 품위있는 음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삶에는 다섯 가지 괴로움이 따르는데 다섯 가지 매운 오신채를 먹음으로써 그것을 극복하라는 의미도 있다고 한다.

 

옛말에 오신채에 기생하는 벌레는 고통을 모른다는 말도 있다. 또 오신채는 자극을 주는 정력음식으로 보았으며, 참선하는 절에서 지켜야 할 규칙인 ‘선원청규(禪苑淸規)'에 절간의 수도승은 오훈을 금한다 했는데 바로 오훈이 오신채를 말한다. 옛 한시(漢詩)에 여인이 젊고 예쁘고 신선한 것을 표현할 때 매운 나물기운이란 뜻의 신채기(辛菜氣)란 말을 썼으며, 마늘 기운이란 뜻의 산기(蒜氣)는 여인의 정욕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지루한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입춘에 톡 쏘는 매캐한 나물만을 골라 먹었던 오신채 시절식은 한 해를 새롭게 출발하기 위한 청량제, 자극제로서의 가치가 충분하다 할 것이다. 오신채는 오색이 있어서 미학적 <인ㆍ예ㆍ신ㆍ의ㆍ지> 정신이 담겨있어서 철학적 자극을 주는 정력음식이니 과학적이기도 한 우리의 훌륭한 시절음식이다.

 

탕평채는 조선의 영조임금이 당파 싸움을 없애려고 탕평책을 논하였던 날 처음 선을 보여서 얻어진 이름이라는 기록이 있다. 녹두묵을 젓가락 굵기로 썰어서 참기름, 소금으로 가볍게 버무려 담고 숙주, 짧게 자른 미나리, 물쑥 등은 데치고, 다진 고기는 볶고, 김 부순 것, 달걀 황백 지단은 채 썰어 옆옆이 담아, 달고 새콤한 초장을 뿌려서 먹는다.

 

이밖에 입춘의 시절식으론 뿌리를 당귀라 하여 약재로 쓰는 승검초(신감채(辛甘菜), 쇠고기 등을 길쭉길쭉하게 썰어 갖은 양념을 하여 대꼬챙이에 꿰어 구운 산적(散炙), 죽순나물, 죽순찜, 달래나물, 달래장, 냉이 나물, 산갓 김치 등이다.

 

입춘 때 가장 큰 일은 장을 담그는 일이다. 때는 입춘 전 아직 추위가 덜 풀린 이른 봄에 담가야 소금이 덜 들어 삼삼한 장맛을 낼 수 있다. 메주는 늦가을(음력 10월)에 쑤어 겨우내 띄운 것이 맛있다. 장은 팔진미의 주인이어서 장이 없으면 모든 음식이 제맛을 낼 수가 없음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입춘(立春) 날 무순(筍) 생채(生菜)냐’라는 옛 속담이 있다. 맛있거나 신나는 일을 빗댈 때 입춘 시절음식으로 먹던 무우 순 생채에 비유했었다. 아무튼, 음식도 제철 음식이 가장 맛있고 보약인 셈이다. 봄이 시작된다는 입춘이 되었지만, 코로나19로 봄빛을 쐴 준비가 안 된 어려운 이들이 많다. 단 하루만이라도 적선공덕행을 함으로써 더불어 나누는 삶을 우리 모두 실천했으면 한다. 아홉차리의 풍속처럼 적선공덕행을 아홉 번쯤 하면 어떨까? 그러면 우리의 세상은 환하게 밝아지지 않을까? 이 험한 세상에 우리의 전통, 우리의 민속은 이렇게 소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