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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시애틀 추장이 묻는다

우리는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꿈을 들려주어야 하는가?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84]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미국을 많이 아는 한국 사람들에게도 시애틀이란 도시는 좀 생소할 것이다. 로스앤젤리스나 샌프란시스코는 어느 정도 듣거나 보고 알지만, 그보다 훨씬 북쪽, 캐나다와 국경을 거의 접하고 있는 시애틀에 대해서는 제대로 모른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 같다. 물론 커피를 좋아하는 분들 가운데는 우리나라 어디에나 매장이 있는 미국 커피브랜드인 스타벅스의 발상지가 시애틀이라는 것을 아시는 분들이 있을 것 같은데 사실 언론계 30년 이상을 근무한 나 같은 사람도 미처 모르고 있었던 정보이기도 하다. 거기에다 시애틀이라는 이름이 사실은 인디언 추장의 이름이라는 것은 더욱더 그렇다.

 

 

7년 전 이맘때, LA에 사는 처제 동서를 보러 갔는데 두 내외가 우리를 차에 태우고 샌프란시스코를 거쳐 시애틀까지 자동차 여행을 준비했기에 그 덕에 시애틀을 가 볼 기회가 있었다. 가면서 동서의 설명을 들으며 시애틀이 이런 곳인가 하는 놀라움을 느꼈다. 현대를 대표하는 상당수 미국 트렌드의 발상지가 시애틀이었던 것이다.

 

컴퓨터 산업을 일으켜 미국을 21세기 선도국가로 자리매김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본사가 여기 있다. 온라인 비즈니스로 선풍을 일으키면서 마이크로소프트와 시장가치 부문 선두를 다투는 아마존(Amazon)도 시애틀에 있다. 세계 항공시장을 리드하는 보잉(Boeing)도 여기에 둥지를 틀고 사업을 하고 있단다. 전 세계에 아메리카노 커피 외에 카푸치노를 비롯해 다양한 커피관련 음료를 개발해 반세기 만에 전 세계를 석권하고 있는 스타벅스 1호점이 시애틀의 수산시장 맞은편 언덕에 있다.

 

그 밖에 많은 벤처기업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고 동서가 힘주어 말한다. 아, 시애틀이 그런 곳인가? 우리는 그저 미국에서 볼 때 태평양의 관문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그저 배가 많고 물동량이 많은 곳인가 했더니 뜻밖에 현대 미국의 상징적인 산업들이 이곳 시애틀을 터전으로 삼아 일어났음을 비로소 알겠다.

 

 

 

이상하지 않은가? 어떻게 시애틀에서 21세기 미국을 이끌어가는 주요 브랜드, 혹은 아이콘들이 여기에서 우후죽순처럼 일어날 수가 있는가? 7년 전에 그곳을 다녀오면서 궁금해하던 것인데, 최근 그 이유를 찾은 것 같았다. 그것은 바로 시애틀이라는 인디언 추장 때문이란 생각이 든 것이다.​

 

1774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뒤에 미국인, 곧 백인들은 광활한 땅을 찾아 서쪽으로, 서쪽으로 달렸고 이러한 이른바 서부개척시대는 약 80년 뒤 백인들이 태평양 연안에 도달하면서 끝나게 되는데, 이러한 때인 1852년 시애틀 일대에도 백인들이 많이 몰리자 미국의 14대 대통령 프랭클린 피어스는 대표자를 보내 인디언의 땅이던 이곳을 미국에 팔 것을 요구했다. 미국 정부의 일방적인 요구에 이 일대의 추장이었던 시애틀은 “우리에게 땅을 사겠다는 생각은 정말 이상하다. 어떻게 하늘과 대지의 따스함을 사고판다는 말인가?”라고 물으며 땅에 대한 인디언들의 생각을 담은 긴 글을 써서 미국대통령에게 보냈다고 한다.

 

이 땅은 결국 백인들에게 넘어갔지만, 이 과정에서 시애틀 추장의 편지에 감동한 피어스 대통령은 그 추장의 이름을 이 지역 이름으로 명명함으로써 지금의 시애틀이란 이름이 전해온다는 것이다. 이런 내용은 역사에 나오는 것이지만 사실 미국인이나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도 시애틀이란 추장의 이름을 기억하게 한, 이 편지는 그동안 공개되지 않다가 1974년 미국 독립 200주년을 맞는 시점에서 고문서들에 대한 비밀이 해제되면서 그 전문이 120년 만에 공개되었다고 한다.

 

 

예전 서부영화를 보면 백인들, 혹은 기병대들은 인디언들을 일종의 야만인으로 보고 그 땅을 빼앗고 그들의 목숨을 뺏고 했는데, 영화만이 아니라 실제로 인디언들을 학살한 사례는 많이 있다. 그런데 이 시애틀 추장의 글은 아무 것도 모르는 야만인일 것이라는 우리들의 선입견을 완전히 뒤엎는 것이다,​

 

백인은 들으라

 

나와 함께 온, 지금 당신들 앞에 서 있는 한 무리의 이 사람들은 나의 부족이며 나는 그들의 추장이다.

 

우리는 왜 이곳에 왔는가? 연어 떼를 구경하기 위해서이다. 올해의 첫 연어 떼가 강물로 거슬러 올라오는 것을 축하하기 위해 여기에 왔다. 연어는 우리의 주된 식량이기 때문에 연어 떼가 일찌감치 큰 무리를 지어 강의 위쪽으로 거슬러 오는 걸 보는 일만큼 우리에게 즐거운 일은 없다. 그 숫자를 보고서 우리는 다가오는 겨울에 식량이 풍부할 것인가를 미리 안다. 오늘 우리의 마음이 더없이 기쁜 까닭은 그 때문이다.

 

우리가 무리를 이루어 몰려왔다고 해서 싸움을 벌이려고 온 것으로 생각하지 말아 달라. 나는 당신들이 우리의 땅에 온 것을 기쁘게 여기고 있다. 당신들과 우리는 모두가 이 대지의 아들들이며, 어느 한 사람 뜻 없이 만들어진 사람이 없다.

 

 

시애틀 추장도 이미 백인들이 자기들의 땅을 빼앗고 자기 동족들을 죽였음을 알고 있었겠지만, 그는 백인들을 적이 아니라 친구로 맞이한다. 어차피 큰 대세를 미리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서 백인들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하는 것이다.​

 

우리가 땅을 팔지 않으면 백인이 총을 들고 와서 우리 땅을 빼앗을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하지만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다. 당신들은 이 땅에 와서, 이 대지 위에 무엇을 세우고자 하는가? 어떤 꿈을 당신들의 아이들에게 들려주는가? 내가 보기에 당신들은 그저 땅을 파헤치고 건물을 세우고 나무들을 쓰러뜨릴 뿐이다. 그래서 행복한가? 연어 떼를 바라보며 다가올 겨울의 행복을 짐작하는 우리만큼 행복한 것인가?

 

오로지 정복하고 차지하겠다는 생각이 인간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를 묻는 이 글은 170년 그 이전부터 인디언들이 자연 속에서 살면서 축적해 온 지혜였음을 우리들은 모르고 있었다. 현대에 우리들이 느끼는, 우리가 사는 친환경의 삶의 중요성을 그들은 벌써 몸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대들은 어떻게 저 하늘이나 땅의 온기를 사고 팔 수 있는가? 우리로서는 이상한 생각이다. 공기의 신선함과 반짝이는 물은 우리가 소유하고 있지도 않은데 어떻게 그것들을 팔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에게는 이 땅의 모든 부분이 거룩하다. 빛나는 솔잎, 모래 기슭, 어두운 숲 속 안개, 맑게 노래하는 온갖 벌레들, 이 모두가 우리의 기억과 경험 속에서는 신성한 것들이다. 우리는 땅의 한 부분이고 땅은 우리의 한 부분이다. 향기로운 꽃은 우리의 형제자매다. 사슴, 말, 큰 독수리, 이들은 우리의 형제들이다. 바위산 꼭대기, 풀잎의 수액, 조랑말과 인간의 체온 모두가 한 가족이다.

 

시애틀 추장은 백인들이 어머니인 대지와 형제인 저 하늘을 마치 양이나 목걸이처럼 사고 팔고 약탈하고 할 수 있는 것으로 대하는데 그러한 당신들의 식욕은 땅을 삼켜 버리고 오직 사막만을 남겨놓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생존에 필요한 만큼의 사냥을 하지 않고 수많은 들소들을 오로지 쾌락과 욕망을 위해 왜 그렇게 죽여 없애는가를 지적한다. 짐승들이 없는 세상에서 인간은 무엇인가, 모든 짐승이 사라져버리면 인간도 외로움으로 죽게 될 것이라며 그렇게 되어서는 안된다고 역설한다. 아이들에게 이 땅의 소중함을 가르쳐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친 것을, 그대들의 아이들에게도 땅을 우리 어머니라고 가르쳐 주라. 땅 위에 닥친 일은 그 땅의 아들들에게도 닥칠 것이니 그들이 땅에다 침을 뱉으면 그것은 곧 자신에게 침을 뱉는 것과 같다. 하느님은 인간의 하느님이며 그의 자비로움은 황색인에게나 백인에게나 꼭 같은 것이다. 이 땅은 하느님에게 소중한 것이므로 땅을 해치는 것은 창조주에 대한 모욕이다. 백인들도 마찬가지로 사라져 갈 것이다.

 

이렇게 조목조목 땅과 거기에 사는 동물들, 자연의 아름다움을 알려주면서 이 땅을 사람과 식물과 동물이 모두 평화롭게 사는 땅으로 가꾸어달라고 부탁한다. 긴 글이지만 이렇게 250년 전에 이미 현대의 환경문제를 예견한듯한 편지는 당시 보다 넓은 땅을 서로 차지하겠다는 욕심밖에는 몰랐을 백인들과 대통령에게 큰 감동을 주었을 것이다.​

 

이 편지를 읽으면서 나는 시애틀 추장이 편지 서두에 말한 부분이 가슴에 와 닿았다.​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다. 당신들은 이 땅에 와서, 이 대지 위에 무엇을 세우고자 하는가? 어떤 꿈을 당신들의 아이들에게 들려주는가?”​

 

시애틀 추장이 던진 이 질문은 아마도 그 사후 이 일대 땅에 큰 질문으로, 염원으로 배어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이 땅의 기운이 되어 스며들어 있었을 것이다. 그러기에 이곳 시애틀에서, 이제 더는 빼앗을 땅은 없지만, 미국인들은 땅을 더는 탐내지 않고 훨씬 후대 사람들의 즐거움과 기쁨과 행복을 위한 생각들을 새로운 프런티어 사업으로 추구한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그런 생각들이 시애틀이란 땅의 좋은 기운으로 남아있기에, 이 땅에 살던 사람들이 그 마음을 받아 그런 앞서가는 기업들을 만들어내었고 그것이 미국의 태평양시대를 열지 않았을까 짐작해보는 것이다.

 

 

겨울이라서 공기는 차고 인정은 메말라진 것 같다. 일 년 내내 코로나 바이러스인가 뭔가로 사람들의 영혼도 지쳐가는 것 같다. 해가 바뀌었지만, 사람들의 눈에서 희망을 설렘을 보기가 어렵다.

 

이럴 때 우리는 스스로 물어보아야 할 것 같다. 우리는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우리는 이 땅에 무엇을 세워야 하며 어떤 꿈을 우리 아이들에게 들려주어야 하는가? 시애틀 추장이 던진 그 질문을 이제는 대한민국이라는 이 나라에 다시 물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 꿈, 그 염원에 대한 해답을 제대로 찾지 못한다면 우리의 사람의 터전은 시애틀처럼 새로운 생각과 가치와 이념으로 피어나는 대신에, 자동차나 철강 산업이 무너져 폐허가 된 디트로이트처럼 되어버리는 것은 아닌가?​

 

최근 출범한 미국 바이든 정권의 초대 국무장관으로 원주민 출신이 임명됐다고 한다. 원주민이란 말은 백인들이 오기 전에 미국 땅에 살았던 이른바 인디언 원주민들을 말함이다. 170년 전 인류의 미래를 질문한 시애틀 추장의 예지가 미국의 새 국무장관에게도 전해졌을 것으로 믿어본다. 설을 지나면 양력 음력 모두 사실상의 새해다. 미국만이 아니라 우리도 이제 질병으로 힘들고 긴 한 해를 정리하고 신축년 새해를 맞으면서 우리들의 생각을 신축적으로 바꾸어 다시 멋진 세계로 돌아가기 위한 꿈을 꾸어야 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