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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독립운동

"다큐온" 파르티잔,늑대의 시대/ 1부/ 독립군 최초의 현대전, 봉오동전투

 

 

[우리문화신문=이나미 기자] 1920년 1월 17일, 대한민국임시정부는 1920년을 '독립전쟁의 해'로 선포한다. 그리고 그해 6월, 봉오동에서 우리 독립군이 세계적인 군사력을 가진 일본 정규군을 상대로 대승리를 거둔다. 봉오동의 승리로 자신감을 얻은 독립군은 몇 개월 후, 독립 전쟁사에 길이 남을 청산리 전투에서도 승리를 거둔다. 압도적인 전력을 자랑하는 일본군을 상대로 어떻게 이런 일들이 가능했을까? 독립군 승리의 비밀은 바로 체코군단의 '첨단무기'였다.

열강의 이익이 충돌하던 격동의 시대, 1920년 블라디보스토크를 배경으로 치러진 항일 독립전쟁! 중국(동간도)-러시아-체코 3개국 현지 발굴 취재를 통해 세계사적인 대 혼란기에 맞서 능동적으로 조국과 자신의 운명을 개척했던 한국과 체코, 두 나라 '파르티잔들'의 활약을 재조명한다.

●봉오동전투에서 독립군이 쓴 것과 같은 무기가 체코 군사기술박물관에서 발견된 이유는?

우리 독립운동사의 첫 승리인 봉오동 전투! 그 승리의 비결은 강인한 정신력과 지형지물을 이용한 전략으로만 알려져 왔다. 그러나, 봉오동 전투 승리의 비밀은 따로 있다. 모신나강소총, 맥심기관총, 수류탄 등 당시로선 첨단무기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용산 전쟁기념관에는 봉오동전투에서 사용된 모신나강소총이 소장되어 있다. 그리고 놀랍게도 지구반대편 체코군사기술박물관에서도 독립군이 쓰던 것과 똑같은 총이 발견된다. 그들은 이것이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체코군이 사용하던 무기라는데, 어떻게 한국 독립군과 체코군이 같은 무기를 사용할 수 있었을까?

● 자작나무 숲의 은밀한 만남

1918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자작나무 숲. 한국의 쟁쟁한 독립운동가들이 이곳을 찾는다. 은밀히 준비한 비밀스런 만남을 갖는다. 그들이 만난 사람은 체코군단 사령관 라돌라 가이다. 이후 일제의 밀정들에게 체코군단의 무기가 독립군에 흘러들어가고 있음이 포착된다. 일본은 체코군에 항의와 경고를 표한다. 중국과 러시아를 통해서도 압력을 가하지만 무기 거래는 1920년 체코군이 블라디보스토크를 떠날 때까지 계속된다. 독립군에게 넘겨진 무기는 모신나강소총 2만여 정 뿐 아니라 맥심기관총, 수류탄 등 첨단 무기들로 있었다. 무기를 넘기는 것을 도왔던 서른 두 살의 젊은 사령관 가이다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무기 자금은 어떻게 마련되었는지, 어떻게 독립군 기지로 이동되었는지를 추적한다.

# 유럽의 푸른 늑대 체코군단과 시베리아 횡단철도

3백년 동안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식민지였던 체코인들은 1차 세계대전 당시 강제징집되어 전선에 배치된다. 하지만 이들은 일부러 적국 러시아의 포로가 되어 그 안에서 군대를 조직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싸운다. 목숨을 다해 가족을 지키는 늑대처럼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건 체코군단은 러시아군에서 상당한 지위를 확보한다. 그러나 1917년, 러시아가 혁명과 내전의 불길에 휩싸이면서 이들은 생존을 위해 중무장한 채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오른다. 1만 여 킬로미터를 달리는 동안, 그들은 수많은 전투를 치러야 했기 때문에 그들을 태운 기차는 움직이는 군사요새라 할 만큼 특별했다. 2만여 명에 이르는 체코군이 순차적으로 귀향하는 2년 동안 이들은 기차를 통해 모든 것을 자급자족 했다. 병원, 우체국 등이 있었고 덴티크라는 신문도 발행했다. 덴니크는 3,1운동을 포함해 한국에 대한 기사를 7건이나 다루었다. 기사 내용과 함께 체코군단의 여정을 함께 했던 100년 전 시베리아 횡단열차 안의 모습이 공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