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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조선에 처음 들어온 축음기, ‘귀신소리 난다’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568]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지금은 우리가 음악을 듣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공연장도 많고 시디플레이어를 통해 듣기도 하고, 더더구나 요즘은 USB 등을 써서 컴퓨터로 즐기기도 하지요. 그러나 예전엔 음악 듣기가 무척이나 어려웠습니다. 조선시대 후기에 오면 판소리가 유행하는데 이때는 명창을 불러와서 들을 수밖에 없었지요. 그러다가 1860년대 독일 상인 오페르트를 통해서 축음기라는 것이 들어와 처음 소개되었습니다. 축음기(蓄音機)는 말 그대로 “소리를 쌓아두는 기계”인데 이를 처음 본 조선 관리는 이 축음기를 “귀신소리 나는 기계”라고 했다 하지요.

 

 

명창 박춘재는 우리나라에 축음기가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어 고종 황제 앞에서 축음기에 소리를 녹음해 즉석에서 들려주었습니다. 그리고 1887년에는 미국의 빅터레코드사로 건너가 음반을 녹음하기도 하였지요. 그 뒤 1930년대 이후 대중가요가 크게 유행하자 덩달아 축음기도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러나 이때 축음기는 회사원이 몇 달 치 월급을 모아야 살 수 있었기에 축음기를 “방탕한 자의 사치품”이라 하였지요. 그래서 축음기를 가진 총각에게는 딸을 시집보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부유한 사람 외에는 축음기가 없던 시절 판소리 명창 임방울 선생은 20세기 5명창의 하나인 외삼촌 김창환의 주선으로 동양극장에서 춘향가 가운데 "쑥대머리"를 불렀고, 이를 음반으로 녹음하여 120만 장이 팔렸습니다. 지금도 백만 장을 팔기가 어렵다는데 당시 정말 귀했던 축음기로만 들을 수 있었던 판소리 음반 120만 장 판매기록은 정말 상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