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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

추사 글씨 <판전(板殿)>과 ‘대교약졸’

김수환 추기경은 생전에 자신을 ‘바보’라고 하셨다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67]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봉은사에 가면 추사 김정희의 마지막 글씨를 볼 수 있다. 추사가 1856년 죽기 3일 전에 봉은사 주지의 부탁을 받고 쓴 ‘板殿(판전)’이란 글씨다. 당시 봉은사에서는 대장경을 보관할 판전을 짓고, 현판의 글씨를 추사에게 부탁했던 것이다.

 

 

유학자가 어떻게 절 현판의 글씨 쓰기를 승낙했을까? 왕실의 내척(內戚)인데다가, 자기만의 서체(추사체)로 중국에까지 이름을 날리던 추사는 1840년 윤상도의 옥사(獄事)에 연루되어 8년 동안 제주 유배생활을 한다. 겨우 유배지에서 돌아와서도 얼마 안 되어 1851년 다시 권돈인의 진종(眞宗) 예론(禮論)에 연관되어 또다시 북청으로 유배되어 그다음 해까지 유배생활을 한다.

 

조선의 천재였던 추사는 이 두 차례의 유배로 남을 모함하고 공허한 탁상공론의 싸움만 하는 성리학의 세계에 환멸을 느끼고 불교에 가까워진 것이다. 그리하여 집(현 과천시 주암동)에서 가까운 봉은사에 자주 왕래하면서 스님들과 친해졌다. 추사는 불경도 탐독하였고, 특히 유마경에 있어서는 스님들과의 토론에서 지지 않을 정도라 유마거사라는 별명까지 얻기까지 하였다. 이러니 봉은사에서는 당시 새로 지은 판전의 현판 글씨를 추사에게 부탁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사무실이 코엑스에 있어 가끔 점심 뒤 봉은사 경내를 산책하면서 ‘板殿’ 글씨를 본다. 그런데 ‘板殿’ 글씨를 보면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는 힘 있고 미려(美麗)한 추사의 글씨와는 매우 다르다. 매우 다를 뿐만 아니라, 획이 힘없이 흐르며 삐뚤빼뚤하기까지 하다. 나는 처음 이 ‘板殿’ 글씨를 보면서 ‘이것이 진정 추사의 글씨인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板殿’ 글씨 왼편에는 작은 세로 글씨로 ‘七十一果病中作’이라고 쓰여있다. 71살의 과천 사는 추사가 병중에 썼다는 것이다.

 

‘七十一果’는 추사가 71살이 되면서 새로 쓰던 호기도 하다. 추사 김정희의 호가 200개가 넘는다고 하지 않는가? 나는 ‘七十一果病中作’의 의미를 알면서는 71살의 노인이 병중에 글씨를 썼으면 저런 글씨가 나올 만도 하겠다고 고개를 끄덕였었다. 그런데 처음에 ‘이것이 추사 글씨인가?’ 하던 것이 보면 볼수록 ‘板殿’ 글씨에 빠지게 된다. 언뜻 보면 서투르게 보이는 글씨가 이상하게 나를 끌어들이는 것이다. 아무런 기교도 부리지 않고 무심하게 써 내려간 글씨에서 뭔가 인생을 달관한 추사의 진솔함이 느껴지고 담백함을 맛보게 된다.

 

 

멋들어지게 쓰겠다는 욕망도 없이 그저 마음 가는 대로 쓴 ‘板殿’ 글씨에서 떠오르는 사자성어가 ‘대교약졸(大巧若拙)’이다, 《노자 도덕경》 45장에 나오는 말로,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큰 기교는 졸렬함과 같다는 것이리라. 잔기술만 부리던 작은 기교가 성숙하여 극에 달하면 그런 기교를 떨치고 본래 순수함으로 돌아가기에 대교약졸이라고 하는 것이 아닐까?

 

대교약졸을 그렇게 본다고 할 때, 추사체라는 자기 나름의 글씨 영역에까지 들어간 추사가 이러한 모든 서예기법을 떨쳐버리고 그대로 무심히 써내려간 ‘板殿’ 글씨에서 나는 대교약졸이 떠오르는 것이다. 한편 예수님은 우리 보고 어린아이와 같이 되라고 하셨는데,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몸에 덕지덕지 붙인 욕심과 탐욕과 시기심 등을 벗어버리고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함으로 돌아간다면 이것도 대교약졸이 아닐까?

 

요즘 자기의 재주, 자기의 재력 등을 믿고 자신이 제일인 양 떠드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일수록 남의 말을 잘 듣지 않고 남을 잘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럴 때 ‘板殿’ 글씨를 보며 대교약졸(大巧若拙)을 생각하며 우리도 욕심을 버리고 본래 순수했던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김수환 추기경은 생전에 자신을 ‘바보’라고 하셨다는데, 그런 그분의 모습에서도 ‘대교약졸’을 느낀다. 우리 사회에 잘난 사람들보다는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어린아이, 김수환 추기경 같은 바보가 많이 나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