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닫기

일본왕을 위한 <멸사봉공> 알고나 쓰나?

[≪표준국어대사전≫ 안의 일본말 찌꺼기(38)]

[그린경제=이윤옥 문화전문 기자]  "국민은 소중한 조국을 지키기 위해 충성을 다하며 묵묵히 임무를 완수하는 대다수 국군 장병을 믿는다. 조국을 위해 젊음을 바쳐 희생하고 있는 그들의 명예가 도매금으로 더럽혀지지 않기를 바란다. 하지만 장병들도 조국을 지키는 일은 한 점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는 바로 우리 군인들이 표상으로 모시는 충무공의 '멸사봉공(滅私奉公)' 정신이 지향하는 목표요 방향이다." -조선일보 사외 컬럼-

얼마 전 '노크귀순' 사건이 발생한 뒤에 <조선일보>에 실린 사외칼럼이다. 흔히 쓰는 멸사봉공(滅私奉公)이란 말을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사욕을 버리고 공익을 위하여 씀이라고 점잖게 풀이하고 있다. 그라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말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서 조선인 길들이기에 자주 사용하던 말이다 

   
▲ 조선인 길들이기에 앞장선 미나미 총독이 말한 "멸사봉공"(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1939419일자 <조선총독부관보>에서 총독 미나미지로(南次郞)국민정신 앙양을 위해 충남 부여에 일본 신궁창립(神宮), 지원병 강화, 황도정신 선양등을 내세우면서 사용하기 시작하여 조선에서는 1939419일부터 19411223일까지 집중적인 멸사봉공(滅私奉公)”의 훈시가 내려지고 있다. 멸사봉공 훈시의 한 예를 보자. 

모든 관공리(官公吏)가 멸사봉공(滅私奉公)의 정열(情熱)에 불타는 심경(心境)에 이르면, 관민(官民)의 간()에 드디어 원활(圓滑)을 가()할 것은 물론(勿論), 지성(至誠)의 영()하는 바 혹()은 지주(地主)와 소작인(小作人), ()은 기업자(企業者)와 노무자(勞務者)와 같은 사이에도 따뜻한 양해(諒解)를 증진(增進)하여 국가(國家)에의 봉사(奉仕)로써 제일의(第一義)로 하는 소위(所謂) 총친화(總親和), 총노력(總努力)을 기()치 않고도 실리(實理)될 수 있을 것이다 (조선총독관보 1939.4.19) -도지사회의에서 총독 미나미지로의 훈시- 

이때 쓰인 멸사봉공이 누구를 위한 멸사봉공인지는 세 살 먹은 어린애도 알 것이다. 일본 위키피디어의 멸사봉공 뜻을 보면 자기 자신에게 마이너스결과를 가져오더라도 주인이나 천황을 위해 충성을 맹세하여 봉사 하는 정신. 1945년 이전 수신교육(修身教育)의 기본 사상 중 하나였다.”라고 풀이하고 있다.

그렇다면 예전에 한국에서는 멸사봉공을 뭐라 썼을까? 고려 말 학자인 권근(權近 1352~1409)의 시문집인양촌집(陽村集), 33에 보면 배사향공(背私嚮公)이란 말이 나오는데 이를 요즘 사람들이 멸사봉공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뛰어난 선비와 충성을 다하는 대신과 우뚝한 호걸과 위대한 영웅과 산림의 처사(處士)와 초야에 묻힌 인재들도 모두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여 일에 민첩하고 공을 세우며, 임기응변하고 멸사봉공(滅私奉公)하며, 간사한 자를 내쫓고 완만한 자를 물리치며, 아첨하는 자가 나오지 못하고 질투하는 자가 용납되지 않아서 법령이 수행되고 도리가 융성해졌습니다.
卓犖之傑瑰偉之雄山林之逸草野之窮莫不躍鱗振羽趨事儳功迎機應變背私嚮公斥逐邪佞拔去頑兇讒謟不進媦疾不容令修弊革理道惟豐

700여 년 전 고려시대에도 멸사봉공을 뜻하는 말은 있었는데 그것은 배사향공(背私嚮公)이었으며 그 뒤 조선시대로 오면 지봉공(只奉公)으로 쓰였다. 우리가 지금 쓰는 멸사봉공은 황국신민, 내선일체, 신사참배와 동일시되던 말로 일제강점기에 조선인 길들이기로 쓰였던 말이 그 본래 뜻을 헤아리지 못하는 사이에 일반 국민들이 무의식적으로 쓰고 있으니 안타깝다. 멸사봉공이란 말이 누구를 위한 멸사봉공인지 <표준국어대사전>은 그 유래를 분명히 밝혀주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