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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금석문 톺아보기 9] 낙랑시대의 "영수강령옥인(永壽康寧玉印)"

평안남도 석암리 9호분 출토 인장

[그린경제=정석현 기자]  중국에서 인장(印章)제도는 진대(秦代)에 마련되었고, 한대(漢代)에 계승하여 정식화되었다. 한대의 인장은 관인(官印)과 사인(私印)으로 나뉜다. 관인은 인(印) 또는 장(章)(太守·御史·將軍)이라 칭해지며, 지위 고하와 신분에 따라 용어·인장의 재료·형태와 크기 등에 구분이 있었다. 사인은 사인(私印)·인신(印信)·신인(信印)으로 불리며, 그 형식은 일면인(一面印)·양면인(兩面印)·자모인(子母印) 등으로 다양하였다.


낙랑지역에서 출토된 인장은 주로 사인으로, 한대 인장의 형식으로 제작되어 대개 한대에 한정하여 제작·사용되었다. 이 지역의 인장은 한에서 제작되어 수입된 것과 낙랑지역에서 직접 제작한 것이 공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석암리 9호분은 동곽합장목곽분(同槨合葬木槨墳)으로, 철검·철부(鐵斧)·대도·마구·동경·칠기·토기·장신구 등 다수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명문 유물로는 「거섭3년명(居攝3年銘)칠반(漆盤)」이 있다.

   
 

본 인장의 인면(印面)은 1.56cm의 방형이며, 인문(印文)은 소전체(小篆體)로 매우 섬세하게 음각되어 있다. 귀뉴(龜鈕)는 네 다리를 세우고 고개를 들고 있는 모습이다. 부장용으로 제작된 것으로 짐작된다. 본 고분에서는 무자(無字)의 석인(石印)이 함께 출토되었다. 그런데 『대정5년도고적조사보고(大正五年度古蹟調査報告)』와 『고적조사특별보고(古蹟調査特別報告)』 1책에는 무자석인(無字石印)에 대한 보고가 없다.

 *출토지: 평안남도 평원군 평원면(구 대동군(大同郡) 대동강면(大同江面)) 석암리(石巖里) 9호분
*소재지:(한국)국립중앙박물관-서울특별시 용산구 용산동6가 168-6
*
서체: 전서체

<출처: 한국금석문영상정보시스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