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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혼례와 기러기, 무슨 인연?

알아두면 좋을 "목기러기⋅혼인⋅표주박⋅네 번의 절" 이야기

[그린경제=김영조 기자]  이제 한국도 서양결혼식에 밀려 전통혼례는 겨우 명맥만 유지 하는 정도다. 하지만, 시간에 쫓겨 그것도 15분 만에 벼락 치듯 뚝딱 해치우는 지금의 결혼식은 어쩌면 새롭게 부부로 출발하는 당사자들에게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하는 통과의례에 불과하지 않을까? 그저 형식만 보면 지루할 것 같은 전통혼례는 오히려 신랑신부에게 정신적 주춧돌이 될지도 모른다. 

이 전통혼례 우리는 잘 모른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전통혼례의 모든 것을 알 필요는 없다. 다만, 전통혼례 가운데 몇 가지는 알아두면 좋을 것들이 있어 소개한다.
 

원앙이 아니라 기러기가 등장하는 까닭 

   
▲ 프랑스 귀메박물관, “전안하는 모양”

위 그림은 프랑스 귀메박물관에 있는 “전안하는 모양”이라는 제목의 그림이다. 이 그림에 보이는 전안례(奠雁禮)는 한국 전통혼례의 첫 절차로 신랑이 신부 집에 들어가서 신부의 혼주에게 기러기를 전하는 의례를 말한다. 그래서 그림에도 목기러기가 상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전통혼례에서 기러기가 등장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기러기는 봄에 북녘으로 날아갔다가 가을에 다시 찾아오는 곧 음양의 이치를 따르는 철새이다. 동시에 배우자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새인데 한번 정한 배우자는 절대 바꾸지 않으며 배우자가 먼저 죽더라도 다른 배우자를 선택하지 않기에 혼례에 아주 좋은 상징성이 있는 것이다. 

참고로 한국인들이 금슬 좋은 새로 알고 있는 원앙은 전통혼례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지조와 절개의 상징인 기러기에 원앙이 자리를 내어 준 것이다. 여기서 덤으로 한 가지 알아 둘 것은 우리가 흔히 쓰는 “잉꼬부부”에서 잉꼬는 일본말로 앵무새이므로 부부금슬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새이다.
 

결혼이라는 말은 장가간다는 뜻만 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는 신랑신부가 되는 통과의례를 일컫는 말을 “결혼”이라고 부르고 있다. 하지만 이는 신부 쪽에서 써서는 안 되는 말이다. “결혼(結婚)”에서 “결(結)”은 맺는다는 뜻이고, “혼(婚)”은 “아내의 친정 살붙이” 곧 장가드는 것을 말한다. 예전엔 혼인예식을 치른 다음 신부 집에서 당분간 사는 “처가살이”를 한 흔적이다. 다시 말하면 “결혼”에서는 “장가가다”라는 뜻만 들어 있지 “시집가다”란 뜻은 없는 것이다.  

대신 “혼인(婚姻)”은 “장가가다”란 뜻의 ”혼”에 더하여 “사위의 집” 곧 “시집가다”란 뜻을 지닌 “인”이 더해져 완전한 뜻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신부의 처지에서 시집가는 흔적이 사라진 “결혼”이란 말은 쓰지 않는 게 좋다.  
 

합환주와 표주박 

   
▲ 표주박

혼인 예식에서는 신랑신부가 합환주를 마신다. 이 합환주를 따라 마시는 그릇이 바로 표주박이다. 표주박은 조롱박이나 둥근 박을 절반으로 쪼개어 만든 작은 바가지를 말한다. 표주박은 음력 8월 무렵 추수가 끝나고 첫서리가 내릴 즈음에 농가의 지붕 위에 놓인 둥근 박이나 길쭉하면서 중간이 잘록한 호리병박을 반으로 타서 삶은 다음에 껍질을 말려 만들었다. 

표주박은 이규보(李奎報)의 ≪동국이상국집≫에 “쪼개면 표주박이 되어 차가운 음료 퍼내고”라고 하였듯이 흔히 물을 퍼내는 데 쓰였다. 표주박은 전통혼례에서 신랑신부가 술을 나눠 마시는(합근례) 그릇으로 쓰였다. 그래서 딸을 시집보낼 때가 되면 애박(작은 박)을 심는 풍속이 있었다. 

그런데 애박이 담장을 타고 올라가면 마을 총각들이 담 너머로 이 집 딸을 훔쳐보았기에 ‘애박 올리면 담 낮아진다.’는 재미있는 속담이 생기기도 하였다. 이 전통혼례에 쓸 표주박은 애박을 반으로 쪼개어 예쁜 쇠고리를 달아 만들었다. 신랑·신부가 함께 마신 뒤 그 두 표주박을 합쳐 신방의 천장에 매달아 신랑신부의 금슬을 빌었다. 

조백바가지라 하여 표주박 한 쌍에 한 쪽은 장수와 화목을 상징하는 목화를, 또 한 쪽에는 부를 상징하는 찹쌀을 가득 담아 딸이 시집 갈 때에 가마에 넣어 보내는 풍속도 있었다.
 

신랑은 두 번, 신부는 네 번 절하는 까닭 

전통혼례를 보면 신랑은 신부에게 두 번, 신부는 신랑에게 네 번 절을 한다. 이를 두고 가부장적 여성 비하의식이 들어 있다고 오해를 하는 사람이 있다. 정말 그럴까? 

우리나라는 원래 음양오행 철학이 있다. 특히 남자는 양, 여자는 음이라 한다. 그뿐만 아니라 해⋅뜨거움⋅밝음 따위는 “양”, 달⋅차가움⋅어두움은 “음”이라 했다. 그래서 더욱 가부장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는 음양철학을 잘못 안 결과이다. 세상에 달이 없는 해, 차가움이 없는 뜨거움, 어두움이 없는 밝음이 존재할 수 있을까? 더구나 여성이 없는 남성만의 세상은 살만 할까? 

그렇게 생각했을 때 신랑은 신부가 있어야만 되는 존재이다. 다만, 양의 수가 1로 시작되고, 음의 수가 2로 시작되어 각각 1과 2는 남성과 여성을 상징하는 수일뿐이기에 남성인 신랑은 절을 해도 한 번, 여성인 신부는 두 번을 하는 것이며, 큰일을 치를 때는 곱절로 하기에 신랑은 두 번, 신부는 네 번의 절을 하는 것이다. 

누천년 이어져온 전통혼례 의식이 사라지고 요즈음은 서양식 결혼식이 대세이긴 하지만 일부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전통혼례를 다시 새롭게 보는 사람들도 생기고 있다. 이러한 때에 전통혼례가 지니는 의미와 간략하지만 그에 따르는 의식을 알아두는 것도 좋을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