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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교과서에 한자라니, 당장 거두어라!

교육부는 무슨 소리를 곧이들었나?

[그린경제/얼레빗=이윤옥 기자] 

최근 교육부가 초등학교 3학년 교과서부터 한글에 한자를 같이 쓴다고 하여 우리말을 사랑하는 이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이에 겨레말살리는이들, 이오덕김수업교육연구소, ()전국국어교사모임 등 17개 단체가 성명을 발표했다. 이에 전문을 싣는다.(기자말)

교육부(장관 황우여)는 지난 924이과 통합형 교육과정을 발표했다. 이 교육과정 주요 사항에서 2018학년도 초등학교 3학년부터 교과서에 한자를 한글과 나란히 적겠다고 했다. 무슨 까닭으로 그리하는 것인지 밝히지도 않아서 국민은 어리둥절한 가운데 한자 사교육 시장이 먼저 들썩이고 있다.  

우리는 다음 네 가지 까닭을 들어 교육부가 내놓은 정책이 잘못되었음을 밝힌다. 아울러 교육부는 국민 앞에 사죄하고 당장 거두어들이기 바란다. 

1. 세상에서 가장 쓰기 좋게 잘 만든 우리 한글이 우리말을 붙들어 담아놓는 그릇으로 넉넉하고도 남는다. 무릇 어떤 글자든 글자란 말을 붙들어 담아놓는 그릇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한자를 스스로 만들어 수 천 년 써온 중국조차 너무도 어려워 이제는 내버렸다. 우리도 수많은 싸움과 다툼을 거치고 겨우 반세기 동안 한글만 썼더니 젊은이들이 일으킨 우리 예술이 한류라는 이름으로 지구를 뒤흔들게 되었다.  

이제 와서 한글 곁에 한자를 혹처럼 덧붙여 놓으면, 한글로 우리말을 마음껏 부려 쓰며 거침없는 꿈 날개를 펼치고 새 삶길 하늘로 훨훨 날아오르던 우리 아이들이 한자에 발목을 잡혀 날개 짓을 제대로 못하면서 시나브로 굴러 떨어질 수밖에 없다.

 

   
▲ (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2. 국어사전에 실린 낱말의 열에 일곱이 한자말이므로 한자를 반드시 가르쳐야 한다는 소리를 교육부가 곧이들었나? 그런데 국어사전에 그처럼 많이 실린 한자말의 열에 일곱은 일본이 침략하여 퍼뜨려 놓은 일본말이고, 열에 셋이 중국에서 들여온 중국말이다. 

중국에 뿌리를 두었거나 일본에 뿌리를 두었거나 그들 한자말을 뜯어 하나하나 한자를 가르치면, 일본한자말은 우리 아이들에게 일본의 얼과 삶을 물들이고, 중국한자말은 중국의 얼과 삶을 물들인다. 초등학교에서는 이웃 겨레의 얼과 삶을 배우기에 앞서 우리 겨레의 삶과 얼을 제대로 배워 우리만의 빛깔을 아름답게 가꾸는 일이 바쁘다.  

우리 겨레의 토박이말부터 깊이 가르쳐 우리의 얼과 삶을 꽃피울 슬기와 힘을 북돋워야 한다. 그러니까 초등교육에서는 우리 토박이말을 잘 가르쳐 겨레의 얼과 삶을 꽃피울 슬기와 힘을 키우고, 중등교육에서부터 지금 쓰고 있는 한자나 다른 나라말도 가르쳐 이웃을 알고 온 세상을 널리 알게 하는 것이 올바르다.  

3. 지난 이천 년 동안 선조들이 한자에 담아 남겨주신 유산을 이어받자면 한자를 배워야 한다는 소리를 교육부가 곧이들었나? 그런데 한자에 담긴 유산을 이어받으려고 국민 모두가 저마다 한자를 배워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온 국민이 저마다 한자를 배워서 한문 고전을 읽으려면 우리는 모두 조선시대 양반들처럼 먹고 사는 노릇을 남의 손에 떠맡기고 밤낮 없이 한자에 매달릴 수 있어야 한다.  

오늘날 세상이 그럴 수 없기에 우리는 민족문화추진회를 거쳐 <한국고전번역원>을 세워 값진 한문 고전을 쉬운 우리말로 옮겨 한글에 담아내고 있다. 온 국민은 한자를 몰라도 번역원에서 쉬운 한글에 담아서 펴낸 한문 유산의 속살을 마음껏 맛보고 누릴 수 있다. 교육부가 한문 유산을 제대로 이어받는 일을 참으로 걱정한다면 <한국고전번역원> 같은 기관이 하루빨리 제 몫을 다하여 한문에 갇히어 아직도 잠자고 있는 유산이 없어지는 그날을 앞당기는 일에 온 힘을 쏟아야 한다.  

4. 한자도 우리 겨레가 만든 글자니 한글과 나란히 사랑하며 함께 써야 한다는 소리를 교육부가 곧이들었나? 글자는 말을 담아 주고받는 그릇이므로 누가 만들었나를 따질 일이 아니다. 좋은 그릇이면 쓰고 나쁜 그릇이면 버리는 것이다. 한글은 우리말을 적기에 세상에서 가장 좋은 글자니까 써야 하고, 한자는 우리말을 적기에 세상에서 가장 나쁜 글자니까 버려야 한다. 우리가 만든 글자라도 쓰기 어려우면 버리고 좋은 그릇으로 바꾸어야 한다. 너무 때늦었지만 중국이 바로 지금 울며 겨자 먹기로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다.  

한자가 세상에서 가장 나쁜 글자라는 까닭은 그것이 가장 어렵기 때문이다. 글자의 획수가 많아 쓰기 어렵고, 글자의 소리가 여러 가지라 읽기 어렵고, 여러 뜻이 한 글자에 얽혀 있어 뜻을 알기 어렵다. 이처럼 어려운 한자를 쉬운 한글에 섞어 함께 쓰면 저절로 사람들의 마음이 갈라진다. 어려운 한자를 아는 사람은 모르는 사람을 업신여기며 우쭐거리고, 한자를 모르는 사람은 아는 사람을 미워하며 주눅이 든다.  

그러면 모두가 높낮이 없이 한결같은 사람으로 서로를 사랑하며 살아가는 세상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모두가 쉬운 한글을 쓰면서 저마다 제 빛깔을 뽐내며 높낮이 없이 사랑하며 살아가는 겨레의 앞날을 꿈꾼다. 한자를 쓰자고 부르짖는 사람들은 어떤 세상을 꿈꾸고 있을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인류의 문명은 지금 커다란 굽이를 돌고 있다. 싸워서 이겨야 살아남는다고 믿으며 힘과 슬기를 다해 싸워 이기는 길로만 내달려왔던 인류 문명이 서둘러 길을 바꾸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서둘러 길을 바꾸지 않으면 온 인류가 함께 죽음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는 끔찍한 앞날을 내다보았다. 기술을 갈고 닦아 산업을 일으켜 배불리 먹고 빨리 내달리며 저만 살아남고자 하던 문명의 길을 바꾸어, 사람 사이의 높낮이를 없애고 모두가 가지런히 온갖 목숨까지 아끼고 사랑하며, 더불어 살아남는 문명의 길로 돌아서고 있다.  

이렇게 다가오는 문명의 노른자위는 사랑이며, 열쇠는 사람이다. 그리고 사람의 알맹이는 말이니, 새로운 문명의 열쇠가 곧 말이다. 여기서 문명의 열쇠라고 하는 말이란 세상 모든 겨레가 저마다 남다르게 부려 쓰는 토박이말을 뜻한다. 

교육부는 다가오는 문명을 올바로 내다보고, 우리 겨레의 토박이말을 갈고닦아 북돋우며 부지런히 가르치는 일에 안간힘을 다해야 마땅하다. 

2014. 10.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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