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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잖지 못한 말도 표준어가 되다니

저마다 빛깔을 뽐내는 말글살이여야 한다

[한국문화신문 = 김수업 명예교수]  국립국어원이 2011년에 짜장면을 비롯한 서른아홉 낱말을 표준어로 삼았다고 발표하여 얼마동안 이런저런 소리로 시끄럽더니 올해에 또 꼬시다를 비롯한 열세 낱말을 표준어에 넣었다고 발표하여 다시 적잖이 시끄럽다. 그런데다 나까지 나서는 노릇이 몹시 내키지 않으나 이쯤에서 우리도 표준어라는 말부터 없애면 좋겠다 싶어서 이런 글을 쓴다 


우리나라 표준어규정에는 표준어를 왜 두는지 그 까닭은 밝히지도 않았다. 1부 표준어 사정 원칙1장 총칙1항부터 곧장 표준어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로 정함을 원칙으로 한다.” 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표준어규정 제1장 총칙1항은 표준어를 무엇으로 정하느냐를 밝힌 셈이다 


그런데 그 무엇이 도무지 잡히지 않는다. ‘교양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가늠할 수 있으며, ‘두루는 어디서 어디까지인지, ‘서울말이란 과연 어떤 말인지 누구도 그 실체를 알 수 없다. 알맹이는 없이 껍데기만 있는 말들, 실체는 없이 이름만 있는 말들을 잇달아 놓았을 뿐이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표준어란 애초에 글로써 규정할 수 없다는 사실을 뜻한다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표준국어대사전표준어를 뭐라고 풀이했을까? “한 나라에서 공용어로 쓰는 규범으로서의 언어. 의사소통의 불편을 덜기 위하여 전 국민이 공통적으로 쓸 공용어의 자격을 부여받은 말로, 우리나라에서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로 정함을 원칙으로 한다.” 했다 


다시 정리를 하면 다음 세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한 나라에서 공용어로 쓰는 규범으로서의 언어다. 의사소통의 불편을 덜기 위하여 전 국민이 공통적으로 쓸 공용어의 자격을 부여받은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로 정함을 원칙으로 한다 


 

 

▲ 국립국어원은 점잖지 못한 말 "개기다, 꼬시다"까지 표준말로 지정했다. (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여기서 이번 표준말 정함에 고개가 갸우뚱 해지는 것이 있다. 표준어규정에 표준어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쓰는 말이라고 해놓고는 이번 새로 된 표준말 속에는 우리가 흔히 점잖지 않은 말로 아는 개기다, 꼬시다, 허접하다 따위도 보인다. 이런 말들이 과연 교양 있는 말에 들어갈까? 


그런데 이 논란에는 그보다 더 종요로운 얘기를 해야만 한다. 우선 앞의 를 조금 더 쉬운 우리말로 읽어보면 한 나라에서 모든 사람이 함께 쓰는 말로서 누구나 마땅히 따르고 지켜야 할 잣대가 되는 말이다. 온 나라 사람이 편안하게 느낌과 생각과 뜻을 주고받을 수 있어서 모두가 다 함께 쓰는 말이라는 자격을 받은 말이다 


보다시피 는 표준어라는 것이 땅 위의 모든 나라에 두루 있는 것처럼 말해 놓고, ‘누구나 마땅히 따르고 지켜야 할 잣대가 되는 말이니 모두가 다 함께 쓰는 말이라는 자격을 받은 말이니 하면서 자못 엄포를 놓았다. 이런 풀이를 앞세우고 은 우리나라 표준어규정 제1장 총칙1, 곧 실체는 없이 이름만 있는 말들을 잇달아 그대로 옮겨다 놓았다. 이래서 표준국어대사전표준어규정을 감싸고 단단히 지키며 북돋우는 노릇을 떠맡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땅 위 어느 나라에도 국민이면 누구나 마땅히 따르고 지켜야 할 잣대가 되는표준어를 만들어 규범으로 가르치며 쓰기를 강요하는 나라는 없다. 지난 이천 년 동안 줄곧 말을 갈고 닦으며 새로워져서 현대 문명의 임자로 자리 잡은 서유럽 여러 나라들이 17-18세기에 이른바 왕권신수설을 내세우며 국가주의(절대주의)를 부르짖던 시절에 표준어를 만들어 시끄러웠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머지않아 그것은 부질없는 짓이며 쓸모도 없는 짓임을 깨달아 흐지부지 사라졌다. 절대주의 시절에 가장 크게 떨쳤던 프랑스는 오늘도 프랑스 말을 갈고 닦는 일에 가장 많은 공을 들이지만 표준어 같은 것을 내세우지 않는다. 서유럽 문명의 큰집이라 할 수 있는 이탈리아는 뒤늦은 19세기 중엽을 넘어서며 통일국가를 이루어 표준어가 절실한 처지였으나 단테의 고향인 토스카나 지역의 말을 여러 길로 온 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도록 힘쓰는 것으로 그쳤다 

 

무솔리니의 패전으로 쓴맛을 보고는 학교교육을 크게 바꾸면서 유치원과 초등학교에서는 교실에서 쓰는 말을 그 고장 사투리로 하도록 법으로 정했다. 나라 곳곳에 뿌리내린 사투리를 갈고 닦아 사랑하며 북돋우는 것이야말로 나라말을 넉넉하고 풍성하게 가꾸는 지름길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표준어를 배운 것은 역시 일본제국주의에게 나라를 빼앗겼던 1912년부터다. 저들의 총독부가 보통학교용 언문철자법을 만들며 표준어를 내세우고 가르쳤기 때문이다. 이것을 조선어학회에서 본받아 1936년에 조선어 표준말 모음을 펴냈고, 이렇게 하여 오늘날 국립국어원까지 내려왔다 


 

 

▲ 겨레의 말을 표준어라는 틀에다 가두어 놓은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그러나 정작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뜨거운 맛을 보고 새로운 교육과정을 만들면서 표준어를 제국주의 냄새가 난다며 내버리고 1951년부터 공통어라는 말로 바꾸어 쓰고 있다. 한 나라의 국민이면서 쉰이 넘는 갈래의 다른 말을 쓰며 살아가는 중국이야말로 표준어가 절실하지 않을까 싶지만, 그들은 뜻글자인 한자를 버리고 소리글자인 간자를 쓰도록 하는 일에 힘을 기우리느라 1955년에 와서야 보통화를 만들어 느슨하지만 마음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처럼 세상은 이미 너나없이 누구나 저마다 남다른 빛깔을 뽐내며 자유롭게 삶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데 오직 우리만 표준어라는 틀에다 사람의 마음을 가두어야 하겠는가? 오늘이라도 당장 표준어라는 말부터 내버리고, 깊고 그윽하고 고운 우리말을 아름답게 부려 쓴 글들, 놀이글노래글이야기글뿐만 아니라 온갖 삶을 아름다운 우리말에 담아 쓴 글들이 쏟아져 나오도록 북돋우는 길을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


 글쓴이 김수업
            경상대 명예교수
            진주문화연구소 이사장  
            대구가톨릭대학교 총장 지냄
            문화체육관광부 국어심의회 위원장 지냄
            우리말대학원장 지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