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천지》, 1995년 제8호 * 천지꽃 : 연변에서는 진달래를 천지꽃이라 부른다. "이른 봄이면 진달래가 천지꽃이란 이름으로 다시 피어나는 곳이다." (석화 시 <천지꽃과 장백산 - 연변1) 중에서) < 해 설 > 한 사람의 시인을 평가할 때 우리에게 주어진 한 권의 시집만으로는 지극히 도식적인 형식비평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형식주의 비평은 작가의 사상이나 감정, 작품에 다루어진 사회상 혹은 그것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 등을 세밀히 분석하고 평가하는 역사주의 비평과는 달리 작품 자체의 형식적인 요건들, 작품 각 부분들의 배열관계 및 전체와의 관계 등을 분석하고 평가하는 데 중점을 둔다. 그러나 비평가가 작가를 버리고 작품만을 존중해야 한다는 주장은 결국 문학작품의 자리를 작가 쪽이 아니라 비평가, 혹은 독자 쪽에 둔다는 것으로 이 경우 비평에서 예상되는 결과는 그들이 그토록 피하고자 했던 주관주의, 가치의 아나키즘 등에 오히려 빠지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 돌파구 가운데 하나는 작품 밖에서 유용한 자료를 찾아 작품 안으로 끌어들이는 방법상의 시정이 될 것이다. 개인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엄마”라는 말과 “어머니”라는 말은 같은 말이면서 다른 말이다. 우리집에서도 그렇고 어릴때 우리가 살던 시골 고향마을에서도 그렇고 “엄마”라는 말과 “어머니”라는 말은 완전히 다른 느낌을 주는 말이였다. 우리가 이런 느낌을 받게 된것은 순전히 우리 어머니에서 비롯된 것이다. 며칠전, 시조카의 결혼잔치에 갔다가 딸애가 수탉모양의 옛날식 색과자를 얻어왔다. 하지만 돌처럼 땅땅한 색과자를 그대로 먹을수 없어서 봉투채로 나한테 맡겼다. 그래서 어릴때 우리 어머니가 하시던대로 시루를 놓고 쪘는데 솥에서 피여오르는 향긋한 과자향기에서 나는 어른거리는 어머니 모습을 떠올렸다. 우리 어머니는 보통 키에 항상 깡굴깡굴* 짧은 파마머리를 하셨는데 갸름한 얼굴에 눈매며 콧마루며 입매가 부드러웠다. 아무리 힘든 농사일을 하셔도 밖에서 집으로 들어오실 때에는 늘쌍 방그레 웃으셨다. 어머니는 우리 오남매들이 실수하거나 잘못해도 언성을 높여 꾸짖거나 탓하지 않고 몇 마디로 너그럽게 넘어가주셨다. 그러나 우리들의 불손한 언행에 대해서는 항상 조곤조곤 타일러주셨다. “세살 적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집에서 새는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 해 설 > 1년 중의 열두 달은 모두 자기만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봄・여름・가을・겨울의 사계절과 24절기가 깃들어 있고 크고 작은 명절과 기념일들이 있어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기도 한다. 그런데 그중에서 2월은 계절의 특징과 의미 있는 명절, 기념일도 들어있지 않아 매우 애매한 달이기도 하다. 그 2월이 떠나간다. 시 <2월>은 제목에서 시사하다시피 2월을 노래하고 있다. 그럼 2월은 어떤 시즌이냐? 겨울 막바지. 겨울의 특징은 무엇이냐? 눈. 2월은 겨울의 막바지인 만큼 눈도 사태 져 잘 내리는 법. 그것은 어쩌면 겨울 같은 대미를 장식하는 겨울의 생리. 이것은 2월의 주요 흐름이기도 하다. 시인은 이것을 “몽땅 쏟아붓는다”, “왈칵 쏟아버리는가”의 의인화와 “하늘 미여지게 내리는”, “덮고”, “덮는다”, “마침내 가지를 뚝 부러뜨린다”의 사실적으로 나타낸다. 사실 그것은 눈만이 아니고 “애쓰며 참아온 것들”, “그동안 어떻게 참았지”에서 보다시피 긴긴 겨울날의 모든 것들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반전의 묘미를 창출한다. 2월은 “툭툭 다 털어버리고 말았으니” 이젠 겨울에 “한 점 미련 없단다”. 미련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동지섯달 칼바람이 휘몰아치는 겨울이면 어린 학생들이 엄마손을 잡고 학교로 가는 모습을 본다. 털목도리, 털장갑, 따뜻한 신발로 전신무장한 애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나는 넋 없이 이런 모습을 바라보노라면 어느덧 아련한 추억 속으로 빠져들어 간다. 우리 집은 오빠와 언니 둘 그리고 남동생과 녀동생에 나까지 모두 여섯남매였다. 어머니는 장기환자였고 아버지의 한분의 노동력으로 꾸려가자 보니 매우 가난하였다. 어릴 때 나는 언니들이 물려주는 옷을 기워 입었고 새옷은 언제 입어봤던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70년대의 겨울은 어찌나 추웠던지… 소학교는 마을에서 5 리나 떨어진 곳에 있어 하학하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입김에 눈썹이 어느새 할아버지 눈썹으로 되고 살을 에는 추위에 입이 얼어 말도 더듬거리게 된다. 또한 불어치는 눈보라를 피하려고 뒷걸음치며 걷다가 넘어지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귀가 얼어서 벌겋게 부어나니 어머니가 눈밭에서 가지대를 가져다 끓여서 그 물로 씻어줄 때도 있었다. 소학교 3학년 때, 우리반 담임선생님으로 김련숙 선생님이 오셨다. 항상 웃음 띤 얼굴에 인자한 모습인 선생님을우리들은 모두 좋아했다. 선생님께서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 해설 > 이 시를 피뜩 보기에 거저 빈들을 얘기한 같다. 그러나 ‘그루터기’의 비극과 ‘뿌리’의 희망을 통하여 배달민족의 비극 및 희망이라는 거창한 역사와 현실적 의미를 싱징적으로 톺아내고 있다. 시적 표현에 있어서 석화시는 소박하다. 미사려구나 난해한 표현보다는 누구나 다 잘 아는 어휘를 선택하고 범상한 표현을 구사한다. 그의 시의 이런 특점은 “나는 나입니다”를 비롯한 초기시에서 기틀이 잡히고 줄곧 이어져 왔다. 그의 시는 소박하다 못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담시-이야기를 나누는 식의 시형식으로 많이 나간다. 그의 시를 읊고 있노라면 누가 소곤소곤 혹은 조곤조곤 혹은 두런두런 이야기해주는 것 같다. 그래서 감칠맛이나 서정성은 떨어질지 몰라도 친근하고 정답다. 애인 같고 친구 같은 시다. 그렇다하여 그의 시는 범상하지 않다. 심상치 않은 데가 있다. 전반 상징적인 경지를 창출하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진정한 시의 본령에 가닿는다. (우상렬, “석화시인의 시세계 —50년대 시인세미나 발표론문”)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나한테는 행복노트가 하나 있다. 바로 우리 딸 란이가 어렸을 때부터 커온 과정을 기록한 성장노트이다. 열 달 만에 홀로 서기를 하던 그 시각의 기쁨, 2살에 아기코끼리 이야기를 한번 듣고 외우던 놀라움, 7살에 아빠 생일선물로 그린 카드, 소학교부터 고중까지 성적표들, 그리고 가족 사이에서 오갔던 편지들… 현재 기업경영고문과 프로강사로 활약하는 우리 딸은 30대이지만 이 엄마가 보기에도 뿌듯한 많은 성과들을 거두었다. 전 미국대통령 부시, 세계경제포럼 주석 클라우스 슈바프 및 중국외교부장 왕의 등 국가리더와 유명인사들의 외교통역을 담당했는가 하면《빅데이터(掘金大数据)》의 번역저자이기도 하다. 영국 런던대학 발전관리학 석사, 청화대학 경영관리학 석사(MBA)를 졸업한 딸은 청화대학 경제학원 력사상 처음으로 조선족녀학생이 졸업대표강연을 하면서 력사의 한 페이지를 남겼고 요즘은 천진위성 유명프로그람 “그대만이 할 수있다〈非你莫属〉”의 인력자원고문으로 위임되면서 매체인지도도 꽤 높다. 프로필이 화려한 딸은 또 일만 잘하는 게 아니라 현재 북경애심녀성네트워크 차세대담당 부회장, 전국애심녀성포럼 차세대 위원장을 맡아 ‘80, 90후’ 차세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 해설 > 시탐구에 모지름*을 쓰고 있는 석화에게서 90년대 시는 80년대 시에 비해 예술적으로나 사상적으로나 다르게 흐르고 있다. 그는 빈번히 자기를 부정하면서 부단히 시풍을 개변하고 새로운 탈바꿈을 하고 있는데 40대 시인들의 탐구정신을 체현하고 있다. “거울을 닦습니다” 이 시에서는 이전 시창작에서의 랑만적 정서가 자취를 감추고 있으며 “나”를 써도 “나”에게 대하여 지성적으로 고찰하고 있다. 내가 “나”를 아무리 보아도 제 모습이지 않아 거울을 닦고 닦는 자신에 대하여 고찰의 시다. 고찰하면 할수록 나는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며 가장 사람다운 사람만이 아닌 것이다. 이것은 나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 아닐 수 없다. 이로 하여 석화의 시는 정서토로 위주로부터 인간관계에 대한 지적토로가 위주로 되는 방향으로 전화되고 있는바 이는 정서를 위주로 쓰던 자기의 지난 시들에 대한 부정이 아닐 수 없으며 시에 대한 새로운 탐구가 아닐수 없다.(리복, “자기부정으로 안받침된 탐구정신”에서) * 모지름 : 무엇을 이루려고 안타까이 모대기는 것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해마다 결혼기념일이 다가오면 은근슬쩍 짠돌이남편의 동정을 살펴보지만 올해도 그냥 아무것도 없는 모양이다. 아무리 말끝마다 힌트를 날려도 먹혀들지 않는다. 남들은 생일이요 “3.8절”이요 결혼기념일이요하면서 안해한테 묵직한 선물들도 척척 안겨준다는데 나는 여태껏 남편한테서 선물다운 선물을 단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다. 처음부터 싸구려머리핀이나 꽃 한 송이 같은데 감격해하면서 너무 "싸게" 논 탓인 것 같다. 살다보면 싸우고 말다툼하고 앵돌아질 때도 있지만 그때마다 퇴근길에 사다주는 고작 “차단(茶蛋)” 두 알을 받아 쥐고도 해시시 했고 포장해서 들고 온 퉁퉁 불은 랭면 한 사발에도 헤벌쭉하는 순둥이였으니 값진 선물 한번 못 받은 것도 내 탓인 듯싶다. 가짜라도 진짜처럼 받아 줄테니 길거리에서 파는 가짜 반지라도 사 달라 했더니 들었는지 말았는지 한번 씽긋 웃으니 그만이다. 무뚝뚝한 자기 오빠한테 연신 쫑알거리는 이 올케가 보기 안쓰럽고 측은해서였을가? 십여 년전 시누이가 한국에서 힘들게 번 돈으로 나한테 금반지를 선물했다. 살기가 빠듯하다는 핑계로 시부모님이나 시누이한테 언제 통이 크게 마음 한번 써본 적이 없는 시누이에게서 받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 해 설 > 이 시는 같이 먹는 밥 곧 공식(共食)을 노래하고 있다. 공식은 인류원형(原型)의 하나. 우리는 원시시대 먹거리를 둘러싸고 공식을 했다. 이것이 우리 인류 식사문화의 원형을 이루고 있다. 이것을 시인은 “밥은 둥근 밥상에 둘러앉아 먹는다.”고 설파한다. 이런 공식이야 말로 밥먹기의 정식(定式)이다. 그래서 “홀로 흰 벽을 마주하고 퍼먹으면 / 목구멍이 메어 넘어가지 않는다.”고 한다. 여기에 “혼자서 두 주먹 불끈 쥐”는 “저 쪽 동네 친구들”과 “서로 어깨를 다독이”는 “우리”는 보다 구체적으로 그간의 사정을 말해준다. 바로 이런 공식이 쌀 곧 밥이 막대인 기적을 창조한다. “고뿔도 내려앉거니니”, “모든게 풀린다”, “살이 되고 삶이 된다”, “한 술 한 술 뼈가 되고 힘이 된다”가 바로 그것이다. 바로 이 공식이 인간다운 우리의 삶인 것이다. 그럼 시 제목에서부터 반복적으로 나온 “밥상에 떨어진 / 밥알 한 알”은 왜 “슬픈가?” 그것은 한마디로 “밥알 한 알”의 상징, 곧 공식이 배제되었기 때문이다.(우상렬, “석화 근작시 감상”에서)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몇달전 우연히 한국의 맛집 TV프로그램을 시청하게 되었다. 맛있게 음식을 먹는 진행자들에 열광하는 시청자들, 덕분에 프로그램의 인기는 날로 높아져가고 있었다. 10분여를 재미있게 시청을 하다가 화면이 바뀌었고 나는 깜짝 놀라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연변 투도온면이 한국 프로그램에 소개되고 있는 것이었다. 진행자가 맛있게 먹는 모습에 많은 시청자들의 입에는 침이 고였고 나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그 맛을 알기에 더욱더 그리웠다. 그러나 나 또한 조금은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과연 투도온면이 “온전한” 우리의 음식일까? “아, 역시 고수(香菜)가 듬뿍 들어가 있네요. 허허.” 진행자는 요리전문가로 고수(香菜)에 대한 거부감은 없는 듯 했다. 그는 맛있게 젓가락질을 하며 국수를 마시듯 먹고 있었다. 가운데 자막으로 음식에 대한 소개가 참 인상 깊었다. “이 지역 조선족 동포, 한족 고객 모두에게 인기 만점인 연변 특유의 입맛을 돋우는 구수한 국수.” 이렇게 친절하게 설명하는 진행자의 해설… 씹는 맛이 일품인 밀가루 면발에 시원한 소고기육수가 풍미를 살리고 살포시 얹어진 소고기 두 점은 정을 나누기에는 충분하고 송송 썰어놓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