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백병전이 벌어지면 백전백패를 당하게 될 것이다! 이순신의 표정이 경직되었다. 일본의 군선들이 울둘목을 뚫고 밀려오기 일보직전에 있었다. 정도령이 당황하여 소리쳤다. 뒤로 물러서면 안 됩니다. 일본 군선이 모조리 돌진해 들어오면 중과부적(衆寡不敵)으로 위기를 맞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순신의 장군선을 제외한 조선의 판옥선들은 뒤로 물러나며 함포 사격을 가하고 있었다. 이순신이 독려했다. 물러서지 마라! 내가 먼저 나설 것이다! 이순신의 대장선이 역류를 헤집고 잎으로 돌진해 나왔다. 우현의 현자포를 발사하라! 전진 속도를 유지하라! 비격진천뢰를 발사하라! 이순신은 부르짖었다. 만일 물러나서 명량해협의 공간이 생긴다면 그때는 백약이 무효가 될 판이었다. 퍼퍼펑---! 이순신의 대장선만이 역류를 뚫고 전진하면서 비격진천뢰를 발사하였다. 무수히 많은 불꽃이 터지면서 적선을 향해 날아갔다. 마치 불꽃놀이를 보는 것만 같았다. 이순신의 대장선이 조류를 힘겹게 뚫고 나가자 다른 11척의 판옥선은 뒤로 물러서는 형국이 되었다. 명량해협의 좌측 기슭의 언덕 바위에서 이 광경을 내려다보던 전승업이 코를 벌
[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김충선이 정도령으로부터 은밀히 전달 받은 내용이었다. 그러나 전황(戰況)은 그렇게 전개되지 않고 있었다. 구루시마의 반대로 도도를 비롯한 와키자카, 구루시마는 울둘목의 입구에서 전방의 가토가 이끄는 전선들의 전투를 그냥 주시하고 방관하는 태도였다. 장군의 전략이 성공하려면 이들 모두가 울둘목으로 공격해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김충선은 방법을 찾아야 했다. 이때 도도의 총대장선이 갑자기 소란스럽게 변하였다. 전방에서 대치하던 이순신의 함대와 가토의 함대가 드디어 서로 포격을 개시한 것이었다. 콰쾅쾅--- 명량해협의 울둘목이 갑자기 엄청난 굉음에 휩싸였다. 그 해협의 양 언덕 주변에 매복하고 있던 이울과 이회, 박정량과 전승업 등은 발을 동동 굴렸다. 바로 눈앞에서 가토와 그의 함대가 내려다보이지 않는가. 천자포의 사정거리로 발사만 하면 불바다를 이룰 수 있는 위치였다. 그러나 대장선에서는 아직 응답이 없었다. 죽을 고생을 하면서 지난 사흘간 천자포를 장치하고 화약을 옮겨왔다. 바위색의 보자기와 나뭇가지, 이파리로 위장하여 포와 화약 등을 은폐해 두었지만 정작 발사는 대기 중이었다. 일부
[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김충선은 건주여진을 빠져나온 후 계속하여 남하하였다. 이순신이 통제사로 복귀되어 수군을 정비하고 있을 무렵 김충선은 사실 유성룡을 은밀히 만났었다. 누르하치와의 담판을 성사 시키지 못했나이다. 이장군에게 면목이 없어서 우선 대감을 찾아왔나이다. 서애 유성룡은 반갑게 맞아줬다. 잘 왔네. 누르하치는 범상치 않은 인물이지. 우린 자네가 위험해질 것을 무척 염려 했는데 이렇게 무사히 돌아왔으니 그것이 담판 이상의 가치가 있는 것일세. 유성룡의 위로에 김충선은 감격했다. 대감! 일본의 이번 공격은 임진년에 비해서 더 악독하고 치밀하게 전개되고 있음을 느끼고 있네. 이장군의 구금 역시 저들의 흉계였으며 남해바다와 호남을 석권하려고 총력전을 펼치고 있는 실정일세. 자네가 돌아왔으니 이장군에게 큰 힘이 될 거야. 김충선이 암담한 표정을 지었다. 조선 수군에 남아있는 군선이 불과 13척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자네의 도움이 필요한 것 아니겠는가. 부산으로 가시게. 일본군 수군의 본거지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유성룡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장군의 곁에 선인을 천거 했다네. 그가 말하기를 적의 정보를 장악하면
[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가토 요시아키는 큰 목소리로 대답하고 의기양양하게 전 속력으로 울둘목으로 내달렸다. 도도 다카토라와 와키자카 야스하루의 대형 군선은 온통 붉은 깃발을 휘날리고 있는 구루시마의 군선 옆으로 모여 들었다. 이번에는 또 뭔가? 구루시마대장! 도도는 눈을 부라리며 구루시마를 불렀다. 구루시마는 손가락으로 명량해협의 좁은 해로와 그 주변의 언덕을 손가락질 했다. 저길 보십시오. 만일 저 위에 조선 병사들이 포를 설치하고 매복해 있다면 우린 꼼짝없이 당하게 됩니다. 지형을 세심히 관찰해 주십시오. 도도와 와키자카 역시 수군의 수뇌로 오랫동안 활동한 장수들이었다.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누구도 인정할 수 있는 매복 가능성이 있는 지점으로 추정 되었다.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미 가토 요시아키와 그의 관선(関船세키부네)은 명량해협을 통과하기 직전이었다. 그를 불러 세우기에는 늦었다. 도도와 와키자카의 대장선에도 진행을 멈추라는 표식의 신호기가 세워졌다. 일본 군선의 대다수가 속도를 줄이고 명령을 기다렸다. 내게 공을 세우라는 것인가? 제일 빠르게 이순신의 함대를 추격해 가던 가토는
[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구루시마의 지적은 분명 일리가 있었다. 그러나 다니 모리토모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눈만 껌벅거렸다. 해류의 흐름은 어란포로부터 명량해협으로 흐르고 있었다. 추격하는 일본 군선에게도, 도주하는 조선 함대에게도 불리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구루시마의 날카로운 안목은 판옥선의 속도가 평상시와 어딘지 모르게 달라져 있음을 느끼게 하였다. 다니부장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냥 저들이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것이 아닐까요? 격군들을 모조리 동원하여서. 남아있는 군선이 없지 않습니까. 조선의 전함이 10여 척에 불과하다는 것은 이미 두 어 차례의 염탐으로 확인한 바 있었다. 그럼 죽지 않으려고 모조리 격군들을 동원하여 노를 젓는다? 마지막 발악이란 말인가? 그건 아니다. 이순신은 절대 그런 무모하고 형편없는 계책을 세우지는 않는다. 뭔가 있을 것이다. 그게 뭔가? 구루시마는 답답하였다. 문득 저만치 명량해협의 울둘목이 눈앞에 들어왔다. 해협은 점점 비좁아져서 대규모 선단이 한꺼번에 지나칠 수 없을 정도로 좁았다. 좌, 우로 돌출되어 있는 섬의 형태가 갑자기 구루시마의 가슴을 철렁거리게 만들었다. 만일 저기 섬 위에 매복이 있다면? 혼
[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그런 것은 자네나 하시게. 도도 다카토라의 입에서는 냉담한 반응이 흘러나왔다. 총대장은 전 함대의 진격을 명령하였다. 10여 척의 대선 안택선(安宅船, 아타케부네)에 270여 척의 중형 군선인 관선(関船, 세키부네), 그리고 50척이 넘어 보이는 소형 군선이 바다를 메우며 돌진하는 장면은 장관이었다. 구루시마 미치후사는 조용히 총대장선을 뒤따랐다. 이순신은 임진년의 옥포해전을 시작으로 합포, 적진포, 사천, 당포, 당항포, 율포, 한산도 등 불패의 신화를 기록해 나간 조선 수군의 최고 명장이었다. 구루시마 미치후사의 형 구루시마 미치유키는 당항포 해전에서 그 이순신에게 패전하고 자신의 함대와 더불어 산화하였다. 이순신의 승리에는 운(運)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철두철미하게 전쟁을 준비한 해전의 신(神)이다. 내가 연구 분석한 이순신은 그렇게 위험한 적장이다. 그러나 내가 너무 과민한 것은 아닐까? 이순신에 대한 구루시마 미치후사는 종잡을 수 없는 불안한 심정이었다. 분명 수치상으로는 상대도 되지 않는 병력이 아닌가. 이순신에 대하여 몰입하다보니 스스로 주눅이 든 것은 아닐까? 구루시마는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다.
[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이순신은 웃음 끝에 상체를 일으켜서 수평선 끝을 갑자기 노려보았다. 저 멀리 자욱한 물안개 너머로 갈매기 떼처럼 새까맣게 적선들이 떠올라 있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적의 주력함대인가? 그리 보입니다. 대선 안택선(安宅船아타케부네)이 많아 보입니다. 아마도 대장들이 모조리 출동 했을 겁니다. 이 바다위에서 주군의 멸망을 지켜보고자! 도주했던 탐망선의 보고를 받고 몰려온 것입니다. 조선 수군의 판옥선 숫자를 제대로 확인하고 말입니다. 도도와 가토, 와키자카......그리고 구루시마! 정도령은 단정하고 있었다. 칠천량의 전략은 구루시마에게 나왔다고 봐야 합니다. 아니, 그 자가 수군에 합류 되면서 조선 수군을 궤멸시키기 위한 음모가 이미 진행되었다고 봐야지요. 장군을 숙청(肅淸)하고 칠천량 전투를 주도한 인물. 그의 주도면밀(周到綿密)한 계획이 없었다면 원균장군이 그토록 일방적인 참패는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순신은 정도령의 예측이 빗나가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다. 구루시마 미치후사가 존재하지 않았던 조선의 바다는 평온했었다. 도도 다카토라와 와키자카 야스하루, 가토 요시아키와는 이미 상대해 본 경험이 있었으며 그들과의 충돌에서
[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경상우수사로 칠천량에 참가했던 배설장군은 병을 핑계로 귀향한 상태였다. 조정에서는 수군 패전의 책임으로 원균과 배설을 지목하고 있었다. 원균은 전사한 것으로 보고되었으나 권율 도원수가 벽파진을 방문하여 생사가 확인된 셈이었다. 이제 부터는 원균에 대한 처벌 수위 역시도 논의될 것이었다. 그는 과오(過誤)가 적지 않은 장수입니다. 그러나 판옥선 12척을 그가 살려낸 것은 다행한 일이지 않소. 정도령이 단호하였다. 주군, 만일 어떤 전투에서든지 꽁무니를 빼어 선박을 유지한 공로를 인정받게 된다면 어느 수군장수가 목숨을 걸고 전투에 임하겠나이까. 그때마다 달아날 궁리만 하게 될 것입니다. 배수사를 참형하여 군기의 엄함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이순신은 혀를 차며 탄식했다. 참으로 안타까운 노릇이요. 도원수부에 장계를 올리도록 하겠소. 이순신은 그 이상 말하지 않고 침묵의 경계 속으로 자신을 몰입시켰다. 고요한 명상의 세계에서 하나씩 주변을 둘러보았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어머니였다. 노모(老母)는 자식이었던 이순신을 공경(恭敬)의 대상으로 삼고 평생을 살아오신 분이었다. 이순신의 두 형 이희신과 이요신이 요사(夭死)하자 그 조카들은
[신한국문호신문=유광남 작가] 나머지 한 사람은 누구요? 전원의 시선이 정도령에게 향했다. 아직 밝히지 않은 일인은 누구일까? 누구이겠습니까? 정도령은 이순신에게 물었다. 그리고 이순신의 대답은 극히 짧았다. 이미 그의 뇌리에 각인되어 있는 장수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사야가! 그렇습니다. 항왜장수 김충선! 일본을 그 장수보다도 더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가 참여해야 일본 본토를 습격하는 결사대가 완성되는 겁니다. 곽재우는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정도령이 사야가 김충선까지 계산하고 있는 줄은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멀리 여진에 있지 않습니까? 복귀하였습니다. 곽재우는 물론이고 이순신조차도 화들짝 놀라게 만들었다. 김충선이 복귀하였다니! 이순신은 그의 행적이 더없이 궁금하였다. 충선은 어디 있나? 주군! 김충선 장군은 모종의 임무를 수행 중에 있습니다. 빠른 시일 내에 돌아올 것입니다. 정도령이 말을 아끼고 있음으로 이순신은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새삼 김충선이 그리웠다. 곽재우 역시 항왜장수 김충선의 남아다운 기개(氣槪)가 떠올랐다. 그와 더불어 일본 본토를 공격하게 되다니! 아직까지 물론 실감은
[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이순신과 원균, 곽재우 등의 환송을 받으며 13호 판옥선인 귀혼선이 우수영을 출발하였다. 시각은 자시(子時=오후11~새벽 1시)가 훌쩍 넘어서였다. 내게는 어떤 임무를 주시려는 겁니까. 홍의장군 곽재우는 이순신과 원균, 그리고 군사 정도령만 남아있는 포구에서 은근히 물었다. 정도령은 거침이 없었다. 의병들을 소집하여 부산포로 향하십시오. 부산포로요? 우린 배가 필요합니다. 곽재우는 정도령의 주문이 무엇을 의도하는지 좀처럼 파악되지 않았다. 용도가? 일본 본토에 대한 공격용입니다! 홍의장군 곽재우는 눈이 번쩍 떠지는 느낌이었다. 일본 본토에 대한 공격을 처음 듣는 소리는 아니었으나 시기가 너무 빠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나 빨리요?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집중 기습 할 결사대를 우선 투입시킬 것입니다. 원균은 피가 끓어오름을 느꼈다. 이 사람이 자원하리다. 정도령이 고개를 흔들었다. 결사대의 장수는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그게 누구요? 실망한 기색의 원균이 물었다. 이순신 역시도 궁금한 모양으로 정도령을 주시했다. 군사 정도령은 이미 작정을 하고 있는 태도였다. 그의 시선이 곽재우에게 머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