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내 고향 춘천에는 원래 대나무가 자라지 않았습니다. 그건 순전히 기온의 영향이지요. 지구가 따뜻해지는 바람에 지금은 종종 대나무가 보입니다. 신기하기도 하고 반갑기도 한데…. 인류의 미래를 생각하면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미래를 미리 당겨와서 사용해서는 안 되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대나무 가운데서 가장 우수한 종으로는 ‘모죽’을 꼽습니다. 이 나무는 씨앗을 심으면 5년 동안 싹이 트지 않습니다. 아무리 거름을 많이 하고 물을 풍족하게 주어도 나무는 싹을 틔울 생각을 하지 않지요. 하지만 5년이 지나면 갑자기 죽순이 돋아서 하루에 80센티씩 성장하여 30미터까지 자라지요. 씨앗은 도대체 5년 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만약 대나무가 뿌리 없이 30미터를 자란다면 생명을 담보할 수 없게 됩니다. 대나무는 5년 동안 뿌리 성장에 신경을 써서 견고하게 내실을 다지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 준비 과정이 끝나야 싹을 틔워 성장에 성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누리호를 통해 우주 강국으로 발돋움하였습니다. 그 시작은 1990년이었고 2008년 나로호를 2023년에는 누리호를 성공적으로 발사했습니다.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들은 대부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퇴계 이황 선생은 그 학문의 깊이에 비하여 여복이 참으로 없었던 사람입니다. 첫째 부인은 21살에 얻은 김해 허씨인데 27살에 병으로 사별합니다. 퇴계가 30살이 될 무렵, 퇴계가 사는 안동으로 문신 권질(權礩)이 유배되어 옵니다. 홀로 사는 퇴계에게 그는 이런 부탁을 하지요. “자네 말일세. 나한테 딸아이가 하나 있네. 그 애가 본디는 괜찮았으나, 사화(士禍)로 인해 정신 줄을 놓아 좀 부족한 아이일세 가장 믿을 만한 이는 자네뿐이니, 제발 거두어 주게.” 그리하여 퇴계는 좀 모자란 권 씨를 두 번째 부인으로 맞이합니다. 어느 날 퇴계는 할아버지의 제사를 치르기 위해 큰형님 집으로 갑니다. 제사상을 차리는 데 갑자기 배 하나가 방바닥으로 굴러떨어졌습니다. 퇴계의 부인 권 씨가 떨어진 배를 얼른 치마 속에 감춥니다. 권 씨는 큰 동서에게 혼나지만, 퇴계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퇴계는 부인 권 씨를 불러 "왜 그러셨소."라고 묻습니다. "먹고 싶어서요." 조선 예법의 대가였지만 퇴계는 배를 손수 깎아 부인에게 먹여 주었다고 합니다. 또 하루는 권 씨가 흰 두루마기를 다림질하다가 조금 태우고서는, 하필 붉은 옷감을 대고 기웠습니다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2024년은 갑진(甲辰)년으로 청룡의 해입니다. 한자 문화권에서는 ‘천간(天干)’을 의미하는 10간(十干)과 ‘지지(地支)’를 의미하는 12지(十二支)를 써서 60갑자를 표현합니다. 그 가운데 천간은 색을, 지지는 동물로 띠를 의미하지요. 갑이 푸른색을 의미하고 진이 용을 의미하니 2024년은 청룡의 해가 되는 셈입니다. 지지와 관련된 설화가 있습니다. 옛날 옥황상제는 나이를 잘 기억하지 못하는 인간들에게 나이를 알려주기 위하여 동물을 뽑아, 한 해를 대표하게 하고 순서를 정하기 위하여 강을 건너 먼저 도착하는 경주를 시킵니다. 소는 자신이 느리다는 것을 알고 하루 먼저 출발합니다, 쥐는 몸집이 작아 강을 건널 수 없으니, 소의 머리에 올라타서 결승점 앞에서 먼저 뛰어내려 1등이 됩니다. 소가 2등, 토끼는 수영을 못해서 징검다리를 놓느라…. 뱀은 너무 열심히 달려 다리가 없어져서…. 등등의 순서가 정해지게 됩니다. 용은 하늘을 나는 동물이기 때문에 강을 건너는 경주에 익숙하지 않았다고 하고, 다른 동물보다 강하고 똑똑해서 경주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고 하기도 하고, 자신보다 약한 동물들에게 양보하기 위하여 뒤로 물러났다고 하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열심히 정치하라는 뜻의 한자어는 근정(勤政)입니다. 조선의 정궁인 경복궁의 가장 중심 건물이 근정전(勤政殿)이니 그 중요성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열심히 일할수록 나라가 망해가는 것을 근정적망국군(勤政的亡國君)이라고 표현합니다. 일을 잘 못하는 사람들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쓸데없는 일을 부지런히 한다는 것입니다. 조선시대에는 명나라와 친하고 청나라를 배척하는 친명배청(親明背靑) 정책을 썼습니다. 그 결과가 병자호란으로 이어져 삼전도의 굴욕으로 남아있기는 하지요. 어찌 되었거나 명나라가 망하고도 조선의 명나라 사랑은 지속되었습니다. 명나라의 마지막 16대 황제가 숭정황제인데 그 숭정 연호를 200년 넘게 사용했으니까요. (원래 연호는 황제가 죽거나 바뀌면 연호가 바뀌어야 정상입니다.) 대부분 나라의 멸망을 초래한 마지막 임금이나 황제의 기록은 좋지 않습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숭정제는 망국의 황제인데도 비교적 평가가 좋습니다. 아주 특이한 사례지요. 숭정제는 통찰력이 있고, 신중하며, 주도면밀해서 부지런하다는 장점이 있는 군주였습니다. 업무 능력과 근면함은 명나라 역사상 비슷한 황제를 찾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한 기자가 아인슈타인 부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상대성 원리를 이해하세요?" 그러자 부인은 웃으면서 기자에게 말합니다. "아뇨 하지만 전 아인슈타인을 잘 이해하고 있어요." 가끔 우린 중요한 본질을 잃고 살 때가 많습니다. 특히 선생님들이 이런 함정에 빠지기가 쉽습니다. 교사는 아이들 앞에서 많은 것을 가르쳐 왔습니다. 그리고 평가를 통하여 가르침의 효과를 객관화하려고 노력하지요. 정작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무엇을 알고 있느냐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아이들 자체가 매우 중요하니까요. 태산 같은 문제를 안고 있는 아이는 수업에 집중하기 어렵습니다. 상대성 원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인슈타인이 중요한 것처럼 우린 아이들이 무엇을 알고 있느냐에 집중하는 것보다 아이들 자체에 집중해야 합니다. 문제아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그 가사는 이렇습니다. "솔직히 우리가 웬만한 어른들보다 더 대단해 세상의 이치를 깨달아 버렸어 10대 초반에 질서도 안 지킨 놈들이 이제는 질서를 세우네 이제와 생각해 보니까 공부 안 하길 참 잘했네 공부는 안 했지만 난 넘 기특해 전교 1등도 날 보면 기겁해" 학교는 교정기관이 아니라 교육기관인 것이 맞습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황희 정승의 일화입니다. 하루는 두 여종이 상대방이 잘못했다며 서로 다투는 것을 보고 두 여종을 불러 자초지종을 물은 후 한 여종에게 '네 말이 옳다' 하였습니다. 그러자 다른 여종이 억울함을 호소하자 역시 '네 말도 옳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부인이 '이 사람의 말도 옳고 저 사람의 말도 옳다니 줏대가 없으신 거 아니요?' 황희 정승은 '당신의 말도 옳소'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모든 편의 손을 들어주어 누구하고도 적을 만들지 않았던 것이지요. 썩은 과일을 계속 도려내다 보면 먹을 것이 남지 않고, 미운 사람을 다 걸러내고 나면 쓸 사람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러니 적당히 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것을 한문으로 표현하면 중용(中庸)입니다. 쉬운 한자로 다시 표기하면 中用인 것이지요. 즉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알맞은 상태를 나타냅니다. 남에게 베푸는 말과 행동이 부족하면 상대는 원망하게 되고, 남에게 베푸는 말과 행동이 지나치면 상대는 부담스러워합니다. 그 과(過)와 불급(不及)의 중간이 중용인 셈이지요. 그렇다고 남의 눈치만 보며 남의 기분을 맞춰줘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중용은 사람에 따라 삶의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실학자 이덕무는 서자 출신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일정한 벼슬 이상은 오를 수 없는 신분이었기에 좌절감 또한 매우 컸을 것으로 짐작합니다. 그래서 자신을 ‘간서치(看書痴)’라고 표현합니다. ‘책만 보는 바보’라는 뜻이지요. 그도 한때 광흥창에서 벼슬을 합니다. 광흥창은 조선시대 녹봉을 주는 창고입니다. 조선시대 관리들은 녹봉을 받았는데 월에 정기적으로 받는 것을 봉(俸)이라고 하였고 부정기적으로 보너스처럼 받는 것을 녹(祿)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지급하는 곳이 광흥창이었던 것이지요. 이덕무의 호는 청장관(靑莊館)입니다. 그의 문집이 《청장관 전서》인 이유입니다. 청장은 왜가리과 해오라기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해오라기는 강이나 호수에 살면서 먹이를 쫓지 아니하고 제 앞을 지나가는 것만 쪼아 먹는다고 합니다. 곧 이덕무 호인 청장관에는 욕심을 부려 남의 것을 탐하지 않는다는 청백함이 들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덕무는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더러는 해가 저물도록 식사를 못 한 적도 있고 더러는 추운 겨울에도 온돌에 불을 지피지 못할 때도 있었습니다. 간혹 다른 사람들이 녹봉이 적지 않느냐고 물으면 그는 이렇게 답하곤 했지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춘추시대 송나라에 사마환이라는 사람이 살았습니다. 그는 아주 훌륭한 구슬을 갖고 있었는데 죄를 지어 송나라를 떠남에 따라 구슬을 갖고 도망쳤지요. 송나라 임금은 이 구슬을 갖고 싶었습니다. 그리하여 사마환을 잡아 구슬을 숨긴 곳을 물었지요. 사마환은 구슬은 도망칠 때 이미 연못에 버렸다고 이야기합니다. 구슬을 얻고 싶었던 임금은 신하들에게 연못을 뒤지게 했습니다. 하지만 구슬을 찾지 못했지요. 열받은 왕은 연못을 모두 퍼내게 했습니다. 결국 연못을 다 펐지만, 구슬은 찾을 수 없었고 애꿎은 연못 속 물고기만 말라 죽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을 앙급지어(殃及池魚)라고 이야기합니다. 또 다른 이야기가 있지요. 성문에 불이 났습니다. 사람들은 옆의 연못에 물을 길어다 성문의 불을 끄려고 노력합니다. 결국 성문의 불 때문에 연못의 물고기가 말라 죽었다는 이야기지요. 성문실화 앙급지어(城門失火 殃及池魚) 자신이 하지 않은 일 때문에 억울한 피해를 당하는 경우를 의미하는 말씀입니다. "모진 놈 옆에 있다가 벼락 맞는다."라는 속담도 있으니까요. 살아가면서 예측할 수 없는 재앙에 맞닥뜨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혀 뜻하지 않게 찾아오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깊어져 가는 가을만큼이나 과수원엔 사과가 익어가고 있습니다. 사과를 오래 보관하면 썩게 마련인데 주목할 것은 사과끼리 붙어있는 곳부터 썩어 들어간다는 것이지요. 옆에 꼭 붙어있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대학교 3학년 때 교도소에 위문 간 적이 있습니다. 여수감자 대부분은 사기죄로 들어온 사람입니다. 그런데 한편에 옷 색깔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있었습니다. 왜 저들은 다른 옷을 입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살인범으로 복역 중인 사람들이라는 것이지요. 여자 살인범들이 가장 많이 죽인 대상은 누구였을까요? 아이러니하게도 남편을 죽인 사람이 가장 많다고 합니다. 그러니 여자와 한 이불 덮고 자기는 쉬운 일은 아니지요. 우린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가깝다는 이유로, 친하다는 이유로 말을 함부로 하거나 막 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세월이 장기화하면 고질병이 되기 쉽고 그래서 친족간의 범죄가 더 흉악한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친밀감은 상대를 함부로 대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닙니다. 친하면 상대방을 잘 알게 되고 편함을 느끼게 되지만 무례하게 행동해도 된다는 뜻도 아니지요. 그러니 친한 사이일수록 배려와 존중을 표현하는 것이 중요합니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꽃인듯한데 꽃이 아닌 것을 화비화(花非花)라고 합니다. 당나라 유명한 시인 백거이가 단풍을 두고 표현한 글귀지요. 온 대지를 형형색색으로 뒤덮은 단풍이 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한여름을 푸르름 속에서 비바람, 폭풍우와 같은 고난을 견디고 가을에 이르러 장엄하게 물드는 단풍이야말로 그 불타는 요염함보다 삶의 환희로서 칭송받아 마땅합니다. 산책하러 집을 나서면 길가에 싸리나무가 노란색으로 가을을 노래하고 교대 앞의 은행나무는 황금빛으로 삶의 진수를 방출하다 노랑나비 되어 한들거리며 보도에 내려앉음이 멋스럽습니다. 어느 시인은 단풍을 "초록이 지쳐서 단풍 드는데…."라고 표현했는데 자신의 할 일을 마치고 생명이 다해가는 잎새를 그렇게 멋지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별로 한 일도 없는데 나이가 이순을 훌쩍 넘었습니다. 어쩌면 이 가을이 더 애잔하게 느껴지는 것은 내 인생에도 가을이 찾아왔기 때문일는지 모릅니다. 가을의 잘 물든 단풍처럼 아름다움을 유지해야 하는데도 그렇게 살아왔는지 돌이켜 볼 일입니다. 단풍을 보면서 세월의 흐름이 안타까움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이 거대한 꽃밭을 동장군이 사정없이 걷어갈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