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 해 설 > 이 작품은 1988년에 발표한 시로 인생의 원색과 인간의 운명에 대한 시인의 사고를 담고 있다. 초기 창작과정에서 “나는 구경 누구인가?” 하는 문제를 초보적으로 해결한 시인은 한시기 인생이란 구경 무엇인가? 인간이란 구경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탐구에 노력하였다. 이에 앞서 1986년에 발표한 시 <가랑잎 하나>에서 시인은 이 문제에 대한 탐구를 집중적으로 체현하였는바 거친 물결을 돛도 없고 노도 없는 운명의 쪽배와 같은 가랑잎에 기탁하여 인생도 가는 길이 어딘지 앞날에 굽이돌이와 소용돌이를 얼마나 만나겠는지 알 수 없는 신비와 우연과 의문으로 충일된 과정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깨달음은 인생의 원색과 인간의 운명에 대한 비슷한 접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바 우리는 스스로 돌이나 나사못으로 생각하는 사람에게서는 이러한 깨달음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결코 생명의 불안에 떨고 있거나 인간의 운명에 복종하는 졸장부가 아니며 용인(범인)이 아니다. 그는 감히 운명에 도전하고 사는 방법을 터득해내고 진리를 견지하는 용기가 있고 지혜가 있고 아집이 있는 새 시기의 문인이다.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해설150행에 달하는 이 시에서 시적 주인공으로 나타난 김삿갓은 조선시대 방랑시인이다. 이제는 이미 백골이 진토되었을 옛 방랑시인을 되살려 현대생활의 절주를 집중적으로 보여주는 디스코를 추게 한 시인의 가설은 객관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현실 그 자체를 중복하는 것과는 더 넓은 뜻에서 상징과 내부함의를 묘파하고 있다. 그러나 작품의 가설성은 결코 현실에 대한 이탈이 아니다. 다만 과장, 변형, 추상, 황당 및 상징적인 일련의 수법과 표현형식을 통해 현실의 내재적 본질을 굴곡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예술과 현실과의 새로운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민족의 상징인 김삿갓이 서방문화의 산물인 디스코를 춘다는 것은 동서방문화의 교류, 차용, 결합을 그리려고 한 시인의 지구의식의 표현이며 역사인물인 김삿갓이 현대문명의 표현인 디스코를 춘다는 것은 역사의 흐름과 발전을 보여주려고 한 시인의 역사의식의 발현인 것이다. 시인 주체의 지구의식과 역사의식은 김삿갓이 디스코를 추는, 일련의 신들린 춤을 통하여 생명의지의 승화와 역사를 초월하려는 극복의지의 승화를 통해 실감 있게 엮어지고 있다. 생명의지가 강렬하면 강렬할수록 객관세계를 변형시키는 힘이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 해 설 > 방천의 사전적 의미는 둑을 쌓거나 나무를 심어 냇물이 넘쳐 들어오는 것을 막는 것을 말한다. 그 둑을 방천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시인은 각주를 달아 “두만강이 동해바다로 흘러드는 지역. 중, 조, 러 3국 국경이 인접해 있다. 중국 쪽으로는 해변에 닿을 수 없다.”고 설명하고 있어 사전적인 의미와는 많이 다름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방천’은 훈춘 지역의 한 지명으로, 3국의 국경이 인접해 있는 한 마을의 이름이다. 국경 초소가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이 지역의 유명한 관광명소로 많은 유람객들이 찾고 있다. 우리에게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젓는 뱃~사공”이라는 노래로 잘 알려져 있는 두만강은 양강도 삼지연군 북동계곡에서 발원하여 동해로 흘러드는 길이 610킬로메터의 긴 강이다. 두만강은 수세기 동안 한국ㆍ중국ㆍ러시아의 세력 각축장인 동시에 완충지대로서의 역할을 담당해왔다. 두만강은 또한 중국ㆍ러시아와 국경을 이루고 있는 국경하천으로서 수많은 우리 선조가 이 강을 건너 간도지방으로 이주했기에 민족 수난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강이다. 이 강의 의미를 시인은 강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인 방천에 와서 짚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해설 조선족 젊은 시인들의 체험이 농경사회적인 문화에 그 뿌리를 두고 있음이 확실하게 드러난다. 아직 해체되지 않는 농경사회의 질서 위에서 그들의 시가 ‘행복한 원체험의 공간’과 원체험에서의 원근을 낳는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 일원적 세계내의 불화에 대한 진술인 이 시는 단순하게 읽히지 않는다. 산문으로 풀어서 이 시의 행간을 따라가 보자. 1. 너는 떠났다. 2. 눈감으면 너는 내 앞에 되돌아오는 것처럼 보인다. 3. 너는 떠났지만 햇살로 조각한 너는 남아 있다. 너는 어떤 이유에선지 이 세계를 떠난다. 그 행위에는 단조롭고 평화로운 이 세계에 대한 강한 불만이 내재되어 있다. 나는 너를 말리는데 내 생각에는 네가 가고자 하는 세계가 놀라운 줄 알지만 이 세계와 무엇이 크게 다르겠는가 하는 의구심이 있는데, 한사코 너는 떠나버린다. 그러나 네가 완전히 떠난 줄 알았는데 너는 네 모습을 햇빛에 새겨 이곳에 남겨 두었다. 네가 도착하는 세계가 불화의 세계라면 네가 다시 살아가려는 세계가 너를 파괴하거든 다시 돌아오려고 너는 너도 모르게 네 영혼을 이곳에 영원히 남겨 두었다. 이러한 인식은 근본적으로 세계에 대한 믿음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천지》, 1995년 제8호 * 천지꽃 : 연변에서는 진달래를 천지꽃이라 부른다. "이른 봄이면 진달래가 천지꽃이란 이름으로 다시 피어나는 곳이다." (석화 시 <천지꽃과 장백산 - 연변1) 중에서) < 해 설 > 한 사람의 시인을 평가할 때 우리에게 주어진 한 권의 시집만으로는 지극히 도식적인 형식비평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형식주의 비평은 작가의 사상이나 감정, 작품에 다루어진 사회상 혹은 그것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 등을 세밀히 분석하고 평가하는 역사주의 비평과는 달리 작품 자체의 형식적인 요건들, 작품 각 부분들의 배열관계 및 전체와의 관계 등을 분석하고 평가하는 데 중점을 둔다. 그러나 비평가가 작가를 버리고 작품만을 존중해야 한다는 주장은 결국 문학작품의 자리를 작가 쪽이 아니라 비평가, 혹은 독자 쪽에 둔다는 것으로 이 경우 비평에서 예상되는 결과는 그들이 그토록 피하고자 했던 주관주의, 가치의 아나키즘 등에 오히려 빠지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 돌파구 가운데 하나는 작품 밖에서 유용한 자료를 찾아 작품 안으로 끌어들이는 방법상의 시정이 될 것이다. 개인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 해 설 > 1년 중의 열두 달은 모두 자기만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봄・여름・가을・겨울의 사계절과 24절기가 깃들어 있고 크고 작은 명절과 기념일들이 있어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기도 한다. 그런데 그중에서 2월은 계절의 특징과 의미 있는 명절, 기념일도 들어있지 않아 매우 애매한 달이기도 하다. 그 2월이 떠나간다. 시 <2월>은 제목에서 시사하다시피 2월을 노래하고 있다. 그럼 2월은 어떤 시즌이냐? 겨울 막바지. 겨울의 특징은 무엇이냐? 눈. 2월은 겨울의 막바지인 만큼 눈도 사태 져 잘 내리는 법. 그것은 어쩌면 겨울 같은 대미를 장식하는 겨울의 생리. 이것은 2월의 주요 흐름이기도 하다. 시인은 이것을 “몽땅 쏟아붓는다”, “왈칵 쏟아버리는가”의 의인화와 “하늘 미여지게 내리는”, “덮고”, “덮는다”, “마침내 가지를 뚝 부러뜨린다”의 사실적으로 나타낸다. 사실 그것은 눈만이 아니고 “애쓰며 참아온 것들”, “그동안 어떻게 참았지”에서 보다시피 긴긴 겨울날의 모든 것들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반전의 묘미를 창출한다. 2월은 “툭툭 다 털어버리고 말았으니” 이젠 겨울에 “한 점 미련 없단다”. 미련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 해설 > 이 시를 피뜩 보기에 거저 빈들을 얘기한 같다. 그러나 ‘그루터기’의 비극과 ‘뿌리’의 희망을 통하여 배달민족의 비극 및 희망이라는 거창한 역사와 현실적 의미를 싱징적으로 톺아내고 있다. 시적 표현에 있어서 석화시는 소박하다. 미사려구나 난해한 표현보다는 누구나 다 잘 아는 어휘를 선택하고 범상한 표현을 구사한다. 그의 시의 이런 특점은 “나는 나입니다”를 비롯한 초기시에서 기틀이 잡히고 줄곧 이어져 왔다. 그의 시는 소박하다 못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담시-이야기를 나누는 식의 시형식으로 많이 나간다. 그의 시를 읊고 있노라면 누가 소곤소곤 혹은 조곤조곤 혹은 두런두런 이야기해주는 것 같다. 그래서 감칠맛이나 서정성은 떨어질지 몰라도 친근하고 정답다. 애인 같고 친구 같은 시다. 그렇다하여 그의 시는 범상하지 않다. 심상치 않은 데가 있다. 전반 상징적인 경지를 창출하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진정한 시의 본령에 가닿는다. (우상렬, “석화시인의 시세계 —50년대 시인세미나 발표론문”)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 해설 > 시탐구에 모지름*을 쓰고 있는 석화에게서 90년대 시는 80년대 시에 비해 예술적으로나 사상적으로나 다르게 흐르고 있다. 그는 빈번히 자기를 부정하면서 부단히 시풍을 개변하고 새로운 탈바꿈을 하고 있는데 40대 시인들의 탐구정신을 체현하고 있다. “거울을 닦습니다” 이 시에서는 이전 시창작에서의 랑만적 정서가 자취를 감추고 있으며 “나”를 써도 “나”에게 대하여 지성적으로 고찰하고 있다. 내가 “나”를 아무리 보아도 제 모습이지 않아 거울을 닦고 닦는 자신에 대하여 고찰의 시다. 고찰하면 할수록 나는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며 가장 사람다운 사람만이 아닌 것이다. 이것은 나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 아닐 수 없다. 이로 하여 석화의 시는 정서토로 위주로부터 인간관계에 대한 지적토로가 위주로 되는 방향으로 전화되고 있는바 이는 정서를 위주로 쓰던 자기의 지난 시들에 대한 부정이 아닐 수 없으며 시에 대한 새로운 탐구가 아닐수 없다.(리복, “자기부정으로 안받침된 탐구정신”에서) * 모지름 : 무엇을 이루려고 안타까이 모대기는 것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 해 설 > 이 시는 같이 먹는 밥 곧 공식(共食)을 노래하고 있다. 공식은 인류원형(原型)의 하나. 우리는 원시시대 먹거리를 둘러싸고 공식을 했다. 이것이 우리 인류 식사문화의 원형을 이루고 있다. 이것을 시인은 “밥은 둥근 밥상에 둘러앉아 먹는다.”고 설파한다. 이런 공식이야 말로 밥먹기의 정식(定式)이다. 그래서 “홀로 흰 벽을 마주하고 퍼먹으면 / 목구멍이 메어 넘어가지 않는다.”고 한다. 여기에 “혼자서 두 주먹 불끈 쥐”는 “저 쪽 동네 친구들”과 “서로 어깨를 다독이”는 “우리”는 보다 구체적으로 그간의 사정을 말해준다. 바로 이런 공식이 쌀 곧 밥이 막대인 기적을 창조한다. “고뿔도 내려앉거니니”, “모든게 풀린다”, “살이 되고 삶이 된다”, “한 술 한 술 뼈가 되고 힘이 된다”가 바로 그것이다. 바로 이 공식이 인간다운 우리의 삶인 것이다. 그럼 시 제목에서부터 반복적으로 나온 “밥상에 떨어진 / 밥알 한 알”은 왜 “슬픈가?” 그것은 한마디로 “밥알 한 알”의 상징, 곧 공식이 배제되었기 때문이다.(우상렬, “석화 근작시 감상”에서)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1979년 3월 3일 <해설> 이 시는 시인이 1979년에 쓴 것이다. 이는 력사적으로 “문화대혁명”이 금방 지나간 시기이며 문학적으로는 “몽롱시”의 사조가 금방 대두하기 시작될 때이다. 시인은 이 때 소년시기로부터 청년으로 과도하는 단계에 머물렀으며 황당한 력사를 자신의 체험으로 느꼈다. 이 시에서는 한차례의 거세찬 정치적인 운동아래 사람들에게 남은 정신적인 공황을 말해주고 있다. 그러면서 시인의 감상적이고 허무한 사상을 드러내고 있으며 시의 주제가 명확하지 않다는 리유로 당시 시단에서 일부 사람들의 비평을 받은 시이다. 위 시에서 보이다시피 시인은 정신적인 고통에서 모대기여 자신의 마음을 기댈 수 있는 정거장을 찾고 있다. 한차례의 맹목적이고 추종적이고 황당한 력사적인 사건아래에서 해탈은 또 일련의 고통과 슬픔과 허무를 불러일으킨다. 시에서 시인은 여러 이미지를 동원하여 “무서운 꿈”의 고통에서 모대기는(괴롭거나 안타깝거나 하여 몸을 이리저리 뒤틀며 움직이는) 정서를 드러낸다. 여기에서 “무서운 꿈”이란 “문화대혁명”의 아픈 기억의 상징으로 볼 수 있다. 력사는 지나가고 추억으로 남았건만 시인의 가슴속에 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