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양종승 박사] ‘진대’는 마을이나 일 또는 집 등의 공동체, 노동, 삶을 일구는 특정 구역 지킴이의 뜻 ‘지기’와 이를 상징하는 물체로써 하늘로 기다랗게 솟구친 막대기의 ‘대’와 합성된 용어이다. 터를 지키는 깃대가 하늘을 향해 신당 앞에 세우는 것은 곧 영적 존재가 군림하는 천상과 연결됨을 뜻한다. 하늘은 우주를 주재하는 초자연적 존재가 다스리는 무한대의 영적 공간이기에 땅이 하늘과 소통하려는 것은 이러한 천상의 영적 기운을 인간 삶에 끌어들이기 위함이다. 상대적으로, 하늘 또한 무한한 기운을 받아 생동감을 갖는 땅의 존립으로부터 존재 가치를 갖는다. 이러한 원리를 기반으로 땅과 하늘은 병립적 관계 하에 서로 협력 협조 협심 협동하며 인류 삶의 구심점과 원동력으로 역할하게 된다. 이와 같은 진대는 지역에 따라 짐대, 수살, 수살막이, 수살잇대, 수살목, 액맥잇대, 장승, 벅수, 솟대, 조간(鳥竿) 등으로 불린다. 수살, 수살막이, 수살잇대, 수살목이라고 부르거나 또는 액맥잇대라고 한 것은 이 대가 살을 막아 내거나 액을 막는 역할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주변에 흔히 있는 장승이나 벅수 는 마을이나 공동체 고개 또는 절간 들머리 등지
[우리문화신문=양종승 박사] 별신제가 행해지는 은산리는 마을 북쪽 편에 조그마하게 펼쳐져 있는 당산(堂山)이 있다. 이 산은 풍수지리학적으로 용머리에 비유된다. 당산 줄기 전체를 놓고 보면 용이 개구리를 잡아먹다 놓친 형국이 된다. 당고개가 용의 목에 해당되고 근처에 있는 조선조 좌의정을 재냈던 이충정공(李忠貞公) 이상진(李尙眞)의 묘 위치가 용의 입에 해당되는 것이다. 일제강점기 때 이곳 당산 혈맥을 끊기 위해 용 목에 해당하는 당고개를 파헤쳤는데 피가 나왔다는 이야기가 마을 원로들에 의해 전해지고 있다. 당산 아래턱으로는 별신당(別神堂)이 있다. 그런데 이 당을 한편에서는 산제당, 상당, 또는 산신당으로 부르기도 한다. 별신당은 한옥식 목조와 2평 남짓 되는 건물이었으나 1990년 공간을 넓혀 약 4평 남짓하게 키웠다. 이곳 별신당은 은산 마을민들에게 성스러운 곳으로 인식되어져 있다. 마을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이곳에 계시는 당신(堂神)이 마을을 보호하고 마을의 질병 퇴치는 물론 마을 사람들의 무사태평과 대동단결을 해 준다고 믿어 왔다. 그러므로 마을 사람들은 별신당을 굽어보는 것만으로도 온갖 시름을 달래곤 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이 마을 사람들은 이곳 별
[우리문화신문=양종승 박사] 전통사회에서 천연두를 물리치는 방법으로 별신을 정성껏 모시고 달래어 놀려 보내는 의례를 지냈다. 이는 별신이 옮기고 다니는 질병을 미리 막고 이미 전염되었다면 퇴치하고자 함이었다. 곧 별신을 정성으로 모셔야 전염병으로부터 벗어 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천연두는 사람에서 사람으로, 집 구성원에서 다른 집 구성원으로 그리고 마을에서 다른 마을로 옮겨지는 개인적이고 집단적 전염병이기 때문에 대단히 무서운 존재였다. 그래서 전통사회에서는 그 어느 것보다 두려움의 대상이 아닐 수 없었다. 별신을 모시고 의례를 베푸는 제의가 가족 단위는 물론이고 마을 단위로 행해지게 된 것도 이러한 까닭에서다. 그런데 별신이 천연두를 옮기는 신으로만 여겨지지는 않는다. 지역에 따라서는 화재와 수해를 막는 수호신으로 여겨질 뿐만 아니라 풍어 풍농 등을 담당하는 신으로도 역할 한다. 따라서 별신제는 마을과 마을민의 안녕을 빌고 풍농 및 풍어를 기원하는 대동적 제의에서 각별히 모셔지는 지역신이면서 또한 생산신이기도 하다. 다음은 별신이 신격 명칭이 아니라 의례를 칭한다는 견해이다. 이에 대한 시초는 원삼국시대부터 음주가무를 곁들인 부족 중심의 의례라고 하고
[우리문화신문=양종승 박사]은산별신제는 충청남도 은산면 은산리에서 전승되고 있는 향토신에 대한 무속의례이다. 3년에 한 번씩 윤달이 든 해의 음력 정월 또는 2월 중 좋은 날을 택해 마을 북쪽 당산(堂山)의 산제당(山祭堂)에서 거행되는데 최근에는 그 규모가 커지면서 짝수 년의 대제(大祭), 홀수 년의 소제(小祭)로 구분하여 매년 3월 말에 열고 있다. 1966년 국가무형문화재 제9호로 지정되었다. ‘별신’은 우리나라 전 지역에 전승되고 있는 신앙 용어이다. 이 용어는 신격을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지만 신앙체계 그 자체를 뜻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양자의 의미를 복합적으로 갖고 있기도 하다. 본 글에서는 우선 ‘별신’에 대한 어원 및 그 함의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별신 의례가 언제부터 행해져 왔는지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별신과 관련된 자료나 문헌 기록이 빈약하여 그 내용을 파악하기란 쉽지 않지만 현장에서 얻어진 전승자료 및 타 지역 사례들을 예증삼아 파악하고자 하는 것이다. 더불어 은산 별신제에서 주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는 ‘진대 베기와 세우기’ 그리고 ‘꽃받이’에 대해서도 알아보고자 한다. 진대는 은산 인근의 산에 올라 참나무를 미리 선정하여
[우리문화신문=양종승 박사] 한국에서 도교가 활성화되고 초제(醮祭)를 전문으로 맡아보던 재초도감(齋醮都監)이 생겨났는데 이는 북송(北宋, 960∼1126) 휘종(재위 1100~1125) 대관 4년(1110년)인 예종(재위 1105-1122) 5년에 도사 2명이 고려로 직접 와서 복원궁(福源宮)을 세운 것이 시초이다. 복원궁은 국가가 마련한 도관으로서 별에 대한 제를 올리는 신앙처였다. 이에 앞서, 고려 현종, 문종, 선종, 숙종 때에는 궁중 안의 넓은 격구장이나 회경전(會慶殿)에서도 초제(醮祭)를 올렸는데 그 대상은 천지만물이 나고 이루어진 근원 또는 우주의 본체를 이르는 태일(太一)이었다. 뿐만 아니라 초제를 고려 정종은 남쪽 교외에서, 예종은 남단에서, 의종은 내전(內殿)에서도 올렸는데 이때는 노인성(老人星)이 제사 대상이었다. 특히 고려 예종 즉위 2년에는 연경궁(延慶宮, 개성 송악산 밑에 있던 고려 시대의 궁궐) 후원에 있는 옥청정(玉淸亭)에 도교의 최고신인 원시천존상(元始天尊像)을 모시고 달마다 초제(醮祭)를 지냈고 청연각(淸燕閣)에서 노자 도덕경을 강론토록 하였다. 초제는 조선으로 이어졌다. 소격서(昭格署)에 도사가 배속되었고 그에 의해 초제가
[우리문화신문=양종승 박사] 도교(道教)는 중국 후한시대 장도릉(張道陵)이 창시한 종교이다. 도교가 애초에 추구하였던 것은 신선사상(神仙思想)이었으므로 불로장수(不老長壽)를 이루기 위한 영생사상이 신앙적 목표였다. 그래서 득도에 도달한 사람을 신선(神仙)이라고 말하고, 신선은 곧 죽음을 극복한 존재로 설명되는 게 도교였다(최수빈, 「도교에서 바라보는 저세상: 신선(神仙)과 사자(死者)들의 세계에 반영된 도교적 세계관과 구원」,《도교문화연구》2014, 41/305). 그러나 음양오행(陰陽五行), 복서(卜筮, 점), 무축(巫祝, 신령과 통한다는 박수), 참위(讖緯, 미래 길흉화복의 조짐이나 앞일에 대한 예언 등을 비롯한 도가(道家)의 철학과 불교적 요소 등을 받아들이면서 오늘날과 같은 삶의 실천 속에서의 종교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도가(道家)는 넓은 뜻으로 노자를 교조(敎祖)로 하여 뒤에 성립한 종교 도교(道敎)를 포함하는 것이지만, 일반적으로는 도교와 구별한다. 도가는 노자를 비롯한 장자(莊子), 열자(列子), 관윤(關尹) 등이 중심 되는 철학파를 가리키는 것이며, 좁은 뜻으로 노장철학(老莊哲學)을 말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철학 실천 아래에서 영생사상을
[우리문화신문=양종승 박사] 단군신앙의 핵심은 3(三)이다. 이는 오늘날까지 계승되어진 무속신앙의 근본수이다(박흥주, ❮바닷가 마을굿에서 나타난 3수 원리 분석-당산굿을 중심으로❯ 경희대 석사학위논문 2004). 환웅이 내려온 곳이 삼위태백(三危太白)이고, 이는 봉우리 셋을 뜻하는 높고 흰 산을 의미한다(윤철중, 한국의 시조신화 1998). 환웅(1)이 자리 잡은 희고 높은 세봉우리(3)는 1이 3의 세계로 나아감을 뜻한다. 이는 1이 3이 됨을 뜻한다. 고로 삼위태백은 봉우리가 셋(3)이고 몸통은 하나(1)인 산을 뜻하는 것이다. 그 몸통에 있는 신단수 밑이 환웅이 펼칠 신시이고 단군의 나라 조선이다. 그러므로 3이 갖춰진 세계에 1의 뜻은 3으로 귀착함을 뜻한다. 이것은 궁극적으로 3은 3임을 뜻한다. 그리고 1이 3으로 그리고 3이 1로 수렴됨을 말한다. 천부인(天符印) 칼, 거울, 방울 세 개를 주어 지상에 내려가서 다스리게 하는데 이는 천자의 위(位)를 가리키는 것으로써, 하늘이 임금이 될 자에게 주는 세 개의 보인(寶印)이며 시작과 창조 등을 상징한다. 인간사의 곡식, 인명, 질병, 선악 등을 주관할 사람들은 풍백, 우사, 운사 등으로 3인이며
[우리문화신문=양종승 박사] 여기서는 고깔을 삼신신앙과 관련하여 설명하고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알아보고자 한다. 고깔은 머리에 쓰는 모자이다. 모자이지만 추위 또는 더위로부터 머리를 보호하거나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한 것과는 그 쓰임새가 다르다. 고깔을 쓰는 것은 소망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신앙 대상에 대한 예를 갖추는 것이다. 동해안 지역 세존굿에서는 무녀가 종이로 접은 고깔을 머리에 쓰고 제석님에게 인간의 재복, 수명, 자손생산을 기원한다. 경기, 서울과 이북지역에서도 무당이 제석을 모시는 굿거리에서 고깔을 쓴다. 경기, 서울과 이북지역에서도 무당이 제석을 모시는 굿거리에서 고깔을 쓰는데 이는 세삼국유사에 나오는 환인. 환웅. 왕검을 의미하며 재복, 수명, 자손생산을 담당하고 있다. 이러한 형태의 고깔은 충청도 무속의례의 경우 두 종류로 나뉜다. 하나는 삼불제석을 상징하는 고깔로써 삼각형으로 접어 신령상에 진설하는 것이며, 다른 형태의 것은 법사가 쓰는데 이를 의관이라고 부른다. 하나는 삼불제석을 상징하는 고깔로써 삼각형으로 접어 신령상에 진설한다. 다른 하나는 법사가 쓰는 고깔인데 이를 의관이라고 부른다. 법사들이 읊는 경문 정심경 서두에 “엄정의
[우리문화신문=양종승 박사] 한민족 칠성신앙은 수리적 관점에서 단군신화의 삼신신앙과 관련되는데 그 요체는 다음과 같다. 삼신(三神)은 단군(檀君)을 근간으로 한 신앙적 개념이다. 단군은 한국 역사상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일명 단군조선, 서기전 2333년 개국)의 건국 신화에 등장하는 민족 시조이다. 주지하다 시피, 신화란 태초에 하늘과 땅이 열리는 내용의 천지개벽신화를 비롯한 건국 영웅의 출현과정을 말하는 건국시조신화, 영적 존재의 초월적 행적을 이야기하는 종교신화 등의 역사적 전개과정에서 파악되는 진정성을 바탕으로 전해져 온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실체이다. 이를 바탕으로 전개된 단군신앙은 한민족 정체성(national identity)을 표방하면서 민족이 수난을 당하고 위기에 봉착하였을 때마다 단합과 화합을 추구하는 구심체로 역할 해왔다(서영대 「단군관계 문헌자료 연구」, 《단군-그 이해와 자료》 1994; 「한말의 단군운동과 대종교」, 《한국사연구》 2001). 무교(巫敎) 또한 단군 중축의 신앙적 구심점으로 계승 발전해 온 민족의 종교이며 그 중심에는 삼신신앙이 자리하고 있다. 구체적 실체를 고려 승려 석일연(釋一然, 1206∼1289)의 《삼국유사
[우리문화신문=양종승 박사] 이제 <양종승의 무속신앙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우리 전통 무속신앙의 전문가로서 한국예술종합학교 객원교수와 샤머니즘박물관 관장, 문화재청 무형문화재위원를 하고 있는 양종승 박사가 칼럼을 쓰게 됩니다. 이 칼럼의 목적은 “한민족 역사 문화 뿌리인 무속신앙의 이론과 실체를 통해 우리의 정체성과 종교 심성을 파악하고 슬기를 모아 보다 낳은 삶을 개척해 나기기 위한 것"입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편집자말) 한국 고유의 칠성신앙은 단군신화를 기반으로 하는 삼신신상으로부터 전개되었다. 하지만 우리 칠성신앙을 중국 도교로부터 유입된 외래 칠성신앙과의 차이점을 구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에 도교가 들어온 전후 상황 그리고 전개 양상을 비롯하여 관련자료 및 현재적 전승자료 등을 참고하여 살펴보면 그에 대한 차이점을 찾을 수 있게 된다. 따라서 한국 고유의 것은 중국으로부터 도입된 도교의 그것과는 달리 단군조선으로부터 삼국, 고려,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오늘날까지 끊임없이 이어져 온 한민족 고유의 별신앙 체계를 갖추고 있다. 그 실체를 무교의 신앙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칠성신앙의 핵심수 칠(七)과 관련된 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