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이건자의 주전공 분야인 산타령은 모음곡 형식의 합창곡이며, <놀량>, <앞산타령>, <뒷산타령>, <자진 산타령>을 순서대로 연창한다. 독창적인 창법으로 높고 시원한 소리, 발림, 흥겨운 장단으로 대중을 동화(同和)시켜 온 대중의 소리다. 이건자 명창과 산타령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도중,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가슴속에 묻고 살아 온 이야기 한 토막을 다음과 같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저는 어려서부터 가슴 깊은 곳에 남모르는 아픔을 묻고 살아왔습니다. 소리공부를 하면서 또는 외부 출연이나 발표회를 앞두고, 이러저러한 일들에 관여하면서 이력서를 쓸 일이 종종 생기는 거예요. 그때마다 그 ‘학력란’을 메우는 일이 저에게는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집안 사정으로 제때 못 배운 것도 서러워서 감추고 싶은 일인데, 그것을 세상에 공개해서 부끄러움을 내보이자니 여간 싫은 일이 아니었지요. 그래서 가끔은 이를 가리기 위해 거짓으로 <고졸>이라고 적기도 했어요. 그러고 나면 그날 밤에는 잠을 이룰 수 없는 거예요. 거짓은 양심을 속이는 것이어서 정말 쓰기 싫었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경기소리로 전공을 바꾼 이건자는 맹연습을 한 탓인지, 소리 실력이 돋보이기 시작하였다. 경서도의 이름난 명창들이 그들의 제자로 삼으려 의중을 타진하기 시작하였으나 그는 오로지 황용주 명인에게 선소리 산타령 공부에 매진해 온 것이다. 오늘날 우리 음악계에서 산타령의 전승은 벽파(碧波) 이창배(李昌培)의 공로가 크고, 벽파의 제자들에 의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는 점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안타깝게도 현재 상황은 <산타령>만을 부르며 살 수 있는 음악적 환경이 아니어서 이 종목에 전승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동 종목의 보유자, 전승교육사, 보존회원들의 노력과 열성이 전통 유지의 원동력이라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산타령>이란 어떤 노래인가? 이건자가 주전공으로 공부해 왔고, 또한 현재에도 열심히 임하고 있으며 제자들에게 전해주고 있는 산타령에 관한 이야기를 간단하게 짚어보기로 한다. 우선 <산타령>이란 모음곡 형식의 합창곡이라는 점이다. 그 구성은 제1곡 <놀량>, 제2곡 <앞산타령>, 제3곡 <뒷산타령>, 제4곡 <자진 산타령> 등이며 이들을 순서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판소리를 공부하던 이건자는 자신의 목이 판소리에 적합한 목이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되면서 윤평화 명창에게 경기소리를 배우기 시작한다. “내 목에 맞는 경기소리를 연습해서 그런지, 온종일 연습해도 싫증이 나지 않는 거예요. 내가 좋아하는 걸 한다는 자체가 그렇게 만들었나 봅니다.” 그의 소리 실력이 조금씩 드러나 보이기 시작했을 무렵, 경기 명창들은 서로 그를 자신의 제자로 삼으려 했다고도 한다. 그가 경기소리, 특히 민요창을 열심히 익히고 있었을 무렵이었는데, 충무로에 있는《한국의 집》에서 민요경창대회가 열렸다는 것이다. 지도 선생님의 권유로 참가해서 평소에 좋아하고 즐겨 부르던 <금강산타령>을 불렀다고 한다. “워낙 좋아하는 노래여서 자신감도 있었고, 또 그날따라 목이 잘 나오고, 음악성도 발휘되어 좋은 결과가 나왔지요. 시상식이 끝나고 당시 심사위원 중 한 분이었던 임정란 명창이 윤평화 선생께 이건자를 데리고 가서 제자로 키우고 싶으니 허락해 달라고 해서 선생님도, 저도, 무안했던 기억이 있어요.” “그 뒤 또 다른 대회에서는 묵계월 명창께서 심사를 보셨어요. 운 좋게 큰 상을 받았고, 돌아가는 길에 뜻하지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창부타령>의 노랫말 가운데 ‘사랑’을 주제로 하는 노랫말들을 10여 가지 뽑아 소개하였다. “사랑, 사랑, 사랑이라니, 사랑이란 게 무엇인가,”로 시작하는 노래를 시작으로 “한 송이 떨어진 꽃을 낙화(落花) 진다고 설워마라.”, “어지러운 사바세계 의지할 곳 바이 없어,”, “기다리다 못하여서 잠이 잠깐 들었더니”, “간밤 꿈에 기러기 보고”, “하늘같이 높은 사랑, 하해(河海)같이 깊은 사랑”, “창문을 닫혀도 숨어드는 달빛” 등등이었다. 경기입창 소리꾼, 이건자의 공부 과정을 이야기하는 도중, <창부타령> 이야기가 나와 그 노래와 관련 이야기를 하고 있다. 판소리 예능보유자 신영희 명창의 제자가 되어 공부하던 중, 연말 모임에서 판소리가 아닌 창부타령을 불러 소리판을 뒤집어놓은 이건자는 그 이후부터 심각한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이건자의 경기소리를 듣고, 제일 먼저 반응을 보인 사람은 가야금, 아쟁산조의 달인, 백인영 명인이었다. 지금은 고인이 된 백인영 명인은 단지 산조음악만을 잘 탄 명인이 아니다. 물론 산조 음악이야말로 고도의 기교와 음악성이 있어야 하는 민속음악으로 누구나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창부타령>의 노랫말은 약 50 여종 이상이 불리고 있으나 대부분은 <창부타령>만을 위하여 지어진 노랫말은 아니고, 판소리 외 여러 장르에 나오는 가사들을 함께 쓰고 있다. 소개하고 있는 노랫말은 이건자 명창이 그가 속한 보존회의 정례발표 무대나, 또는 개인적인 무대, 또는 그의 국악전수원에서 제자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노랫말들을 중심으로 소개하도록 한다. 때때로 경기민요를 공연하는 무대를 보게 되면, 초심자들의 상당수는 노랫말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 명창의 발음만을 따라 흉내를 내는 듯, 정확성을 요하는 창자들을 만나게 된다. 비단 <창부타령>뿐 아니라, 모든 성악의 노랫말은 정확한 이해가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가사의 발음이나 가사의 의미를 온전히 새기지 못한 채, 부르게 되면 그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또한 발음이 불분명하여 이해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노래란 시어(詩語)를 음악적으로, 그러나 정확하게 옮기는 과정이다. 다시 말해, 노랫말 위에 고저(高低)나 장단, 기타 다양한 감정의 표현이나 기교를 넣어 그 노랫말의 의미가 음악적으로 되살아나도록 발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창부타령>이야말로 고도의 기교를 요구하는 재미있고, 신명을 불러일으키는 민요이나 잘 부르기는 쉽지 않다는 점을 이야기하였다. 이 노래는 평조(平調)의 음조직인 Sol-La-do-re-mi의 5음 음계며, 흥겨운 굿거리장단에 맞추어 부르나, 자유자재로 장단을 넘나들며 부르기도 한다는 점, 노래를 위한 반주 악기들로는 피리, 대금, 해금, 가야금, 장고 등이 주로 참여한다고 이야기를 하였다. <창부타령>은 들으면 들을수록 묘한 감정을 맛보게 되는 노래이다. 창자(唱者)의 감정 표현이 전편에 녹아 흐르기 때문에 듣는 이들과의 공감대도 크고, 또한 넓기 때문이다. 특히 노랫말이 재미있다. 몇 번 들으면 곧 흥얼거리게 되고, 저절로 외워지는 노래다. 창자(唱者)에 따라서는 즉흥적으로 “디리리 리~ 아니 노지는 못하리라.” 등의 입타령도 넣어 부르기도 하고, 장단을 자유자재로 밀고 당기면서 노래를 불러 즉흥성을 극대화하기도 한다. <창부타령>의 노랫말은 약 50 여종 이상이 소개되고 있지만, 이 노랫말들이 온전히 창부타령만을 위하여 지어진 것은 아니고, 판소리에 나오는 가사, 가곡이나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흔히 경기 명창들은 <노랫가락>으로 목을 푼 다음, 본격적으로 <창부타령>을 부르는데, 이는 마치 판소리를 부르기 전에 단가를 부르는 까닭과 비슷하다는 점을 이야기하였다. 경기지방의 대표적인 민요창, <노랫가락>은 조선조 말엽, 대궐 출입이 잦은 무녀(巫女)들이 고상한 시조시를 얹어 부른 뒤로부터 유행하였고, 3박 2박, 3박의 혼합장단이 경쾌하리만큼 거뜬거뜬하게 진행되는 노래이다. 민요권에 속하는 이 소리를 <노랫가락>이라 부르는 것은 그 노랫말이 시조시((時調詩)이며 이를 읊은 가락이라는 뜻으로 풀이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경서도 명창들이 무대 위에서 민요 창을 부를 때에는 제일 먼저 <노래가락>을 부르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 있다. 이것은 전에도 언급한 바와 같이, 높거나 낮지도 않은 가락과 빠르거나 느리지 않은 장단으로 부르기 때문에 자신의 목 상태를 점검하기 적당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니 목 상태뿐 아니라, 전반적인 창자의 기분이나 감정, 그리고 신체적인 조건 등을 점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랫가락을 부른 다음부터 본격적으로 부르는 노래가 <청춘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판소리는 전라도 지방의 소리라 할 만큼 그 지역의 사람들이 생활 속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어법(語法)으로 부르는 소리제다. 가사의 발음이나 독특한 사투리, 억양, 떠는 소리나, 꺾어 내리는 소리 등이 다른 지방과는 차이를 보인다. 이건자의 목청은 맑고 고운 편이어서 판소리보다는 경기소리에 어울리는 목이다. 연말 모임에서도 그는 판소리 대신, 자신이 어려서부터 불러오던 <창부타령>을 불렀다고 한다. 그런데 기대 이상으로 좌중의 분위기를 압도했다는 얘기다. 사람에게는, 특히 소리꾼에게는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가 있는 법이다. 이건자는 <창부타령>이 목청에 맞고, 또한 어려서부터 습관적으로 이 노래를 불러왔기에 어느 정도 자신감도 있었던 것이다. 특히 명동으로 구경나갔다가 우연히 참여하게 된 노래자랑에서도 많은 사람을 제치고 1등의 영예를 차지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창부타령>이란 어떤 노래인가? 신명 나는 가락과 흥겨운 장단으로 짜인 이 노래는 <노랫가락>과 함께 서울, 경기지방을 대표하는 민요다. 직장이나 공공의 일터, 각종 놀이가 벌어지는 판에서는 실로 많은 사람이 즐겨 부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산타령 전승교육사, 이건자 명창의 소리세계를 이야기 하고 있는 중이다. 강원도 인제군《가리산리》가 고향이고,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소리를 들으며 익혔는데, 중학교 진학도, 소리공부의 길도, 어렵게 되자, 친구 따라 상경하여 회사에 다니게 되었다는 이야기, 어느 날 동료들과 명동 구경을 나갔다가 우연히 노래자랑 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는데, 아버지에게 배운 창부타령을 불러 1등상을 받았다는 이야기, 이것이 인연이 되어 KBS 요청으로 민요 몇 곡을 부르게 되었는데, 구경꾼들도 환호하며 절정의 분위기를 만들었다는 이야기, 이날 촬영한 영상은 때마침 추석 특집으로 KBS에서 방영이 되었는데, 판소리의 신영희 명창이 이건자의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보고 “제자로 키우고 싶다”라고 해서 그의 문하생이 되기로 한 뒤, 선생의 집에서 동거동숙하며 소리 공부와 함께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였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이건자의 남모르는 고민도 시작되었다. 그것은 전문가들에 의해서만 감지되는 미묘한 문제, 곧 이제까지 불러온 이건자의 소리와 신영희 명창의 소리는 같은 전통의 소리이기는 하나, 결이 다른 소리라는 사실이다. 다시 말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선녀와 놀량>은 전혀 관계가 없는 말처럼 보이나, 주 무대가 <산(山)>이라는 점, 선녀들의 놀음이나 소리패의 놀량도 혼자가 아닌, 여러 사람의 화합으로 이루어진다는 공통점이 있다. 산타령을 비롯하여, 장기(將棋)타령, <배뱅이굿>, <민요 한마당>의 분위기는 관객을 흥취와 열기 속에 몰아넣었다. 다양한 종목들을 준비해서 성북구민들에게 전통음악의 미(美)적 값어치를 높여 오고 있는 이건자 명창은 어떤 소리꾼인가? 이번 주에는 그 이야기를 해 본다. 서울 경기의 긴소리, 또는 긴잡가로 통하는 좌창(坐唱)보다는, 주로 입창(立唱) 곧 선소리를 주 전공으로 공부해 온 소리꾼, 이건자는 강원도 인제의 깊은 산속 마을인 ‘가리산리’에서 태어났다. 골짜기에는 맑은 물이 흐르고, 산에는 이름 모를 꽃과 나무들이 즐비하게 서 있는 자연 속 심산유곡(深山幽谷)에서 10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이건자는 어린 시절, 다람쥐처럼 나무타기를 잘했던 개구쟁이였다고 한다. 어느 날, 나무 위로 뻗은 가지에 달린 호박을 따려고 올라갔다가 그만 발을 헛디뎌 떨어지는 바람에 변을 당했는데, 안타깝게도 잠깐의 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