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물론이다. 그래서 수단 방법을 모조리 동원해야 하는데 묘안이 혹 있느냐?” “그건......큰형님이 강구하셔야지요. 이 아우야, 술과 계집을 후리는 솜씨는 좀 있어도......그 역시 큰형님에게 물려받은 재주뿐입니다만.” 임해군의 인상이 크게 구겨졌다. 동생 순화군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사실은 인정 할 수 있었으나 그래도 회답이 자신에게 베운 술과 계집이라는 대목에서는 기분이 씁쓸할 수 밖 에는 없었다. “주변에 대가리 좀 굴린다는 놈들이 그리도 없느냐?” “그런 대가리 말고 다른 대가리를 기가 막히게 굴리는 놈들은 몇 있습니다.” “다른 대가리라니?” “양 다리 가운데 달린 대가리 말입니다.” 순화군은 자신이 대답하고도 저속한 표현이 민망한지 키득거렸다. 임해군은 욕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라 왔으나 간신히 참아내었다. 이제는 입궐하기 전의 임해군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달라져야 한다. 적어도 이제는 명나라와 조선에서 인정받아야 하는 세자의 신분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임해군은 고개를 돌려서 선조가 있는 어전으로 시선을 던졌다. ‘버려진다는 것이 얼마나 비참한 것인지 한 번 겪었습니다. 그것을 두 번 까지는 절
[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선조의 인상이 구겨졌다. “너희들을 부른 연유가 거기 있는 것이니라.” “네엣?” “하명해 주소서.” 선조는 왕자들을 둘러보면서 편치 않은 심사를 끄집어내었다. “대명의 병부주사가 벽제관에서 석식 도중에 사라지고 말았다. 명나라에서는 병부주사 사헌에게 개인적 원한을 지니고 있는 동인들을 의심하고 있다.” “영의정에게 장형을 가했다고 들었나이다.” “그래서 왕자들이 직접 신종 황제를 배알하는 것은 어찌 생각 하는고?” 선조의 정치적 계산은 영민 하였다. 명나라에 대한 조선의 변함없는 충성을 보여줄 필요가 존재했다. 사헌의 실종으로 인하여 자칫 불똥이 조선 왕실로 비화된다면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발생 하리라는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소자들에게 명나라 사신으로 다녀오라는 것이옵니까?” 임해군의 취기가 풀리지 않은 눈동자가 이 순간에는 빛을 발하였다. 선조의 용안에 설명하기 어려운 미소가 번졌다. “임해군, 그대의 명나라 원행은 결코 평범한 일정이 되지 않을 것이다.” “하오면......?” “그대에게도 조선을 경작할 수 있는 절호의 호기가 될 수도 있느니라.” 임해군은 참담하게 무너져 버린 왕권의 기대감이 다시 용솟음치고 있음을
[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 임해군은 처음 듣는 소리였다. 하기야 장자인 자신을 외면하고 광해군을 세자에 지명한 그 후부터 임해군은 철저히 자기만의 세상에서 놀았을 뿐이다, 본래부터 임해군은 왕세자로의 자질이 부족 하다는 평가를 늘 들어 왔었다. 품성이 사납고 주변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는 오직 이기적인 아집으로 뭉쳐있는 왕자였기에 그의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명나라에서 어떤 내용을 보내 온 것입니까?” 선조는 임해군을 정면으로 내려다 봤다. “장자를 세자로 옹립해야 한다는구나. 글쎄.” 임해군은 정수리가 순간적으로 뜨거워졌다. “이것이 무슨 말이옵니까?” 선조는 별반 관심이 없는 것처럼 이야기 했다. “명나라 조정에서는 조선의 세자 책봉에 대해서 장자에게 우선권을 줘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임해군은 그동안 마셔댔던 취기가 일거에 빠져 나가는 느낌이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것이 사실이옵니까?” 선조가 입맛을 다셨다. “지금 널 불러서 애비가 농담이나 하자는 것으로 보이느냐?” “그것이 아니오라......” 임해군은 도통 믿어지지가 않는 모양이었다. 분위기를 파악한 순화군이 선뜻 임해군의 팔목을 잡고 흔들
[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기자] “예지낭자는 충분히 자격이 있소.” 어떤 자격을 말하는 것일까? 이제는 광해군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다. 광해군의 심기(心機) 역시 도무지 깊이를 알 수 없는 미로(迷路)요 미궁(迷宮)이었다. 광해군이 갑자기 장예지의 귀에 대고 다시 속삭였다. “부디 날 도와주오. 예지낭자! 나의 조선을 내 손으로 통치하고 경영할 수 있도록 떠나지 말아주시오. 상대가 누구이든 간에 난 조선을 지켜 낼 것이요. 조선을 감히 넘보는 세력들을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요!” 광해군이 진심을 토해냈다. 그의 미끈한 콧날이 장예지의 머리카락에 닿을 듯 가깝게 접근했다. 숨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부왕이 내게 은밀히 고백했소.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난 왕의 비열한 권력과 혹독한 집념, 빌어먹을 체통과 슬픔, 야속함 따위를 모두 용서해 주고 말았소. 그리고 겨우 깨달았지. 임금은 결국은 나의 임금이었고, 아버지란 사실을.” 광해군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또르르 굴러 떨어져 바싹 밀착하고 있던 장예지의 가슴골을 타고 흘러들었다. 장예지는 그저 아득함만을 느끼고 있었다. 바다의 바람보다도 더욱 거친 바람이 그녀의 육신을 진저리
[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광해군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수긍했다. “그래서 난 이순신 장군이 너무 부러워.” 장예지는 정곡을 찔렀다. “그래서 정도령을 취하시려는 겁니까?” “그대의 눈에도 그리 비춘 것인가?” “정도령을 바라보는 저하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더이다.” 광해군이 어린 아이처럼 순수한 미소를 입가에 떠올렸다. “그럼 된 것이야. 그대가 짐작할 정도라면 정도령은 분명 느꼈을 것이지.” 장예지는 광해군의 곁으로 다가가면서 시선은 수평선을 향하였다. 환상적인 물빛이 햇살에 찰랑거렸다. 몽상에 빠질 만큼 아름다운 바다에 전율이 일어났다. “아름다워요.” 광해군의 눈길이 그녀를 따라서 바다의 끝을 향하였다. “예지만큼.” 장예지는 엄습하는 불안감에 눈동자를 먼 바다 위로 고정 시켰다. “바다가 이렇게 어여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어요.” “예지낭자에게 잠재되어 있는 예쁨을 나도 늦게 발견하였지.” 장예지는 순간 마음을 가다듬었다. 더 이상 물러나서는 안 된다. 더 이상 허용해서는 위험하다. 여기서 제지해야 하는 것이다. “저하, 외람된 말씀이오나 소녀는 한때 저하를 모시던 장수의......” “알고 있어. 용호장군 김덕령의 정혼자였다는 것은 충분
[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그러자 서아지가 정도령과 이순신에게 간청했다. “소생을 선두에 세워 주십시오. 본래 친구 김충선이 선봉장이 되어야 하지만 지금 부재중이오니 이놈에게 기회를 주십시오. 김충선 외에는 소생이 가장 일본을 잘 알고 있나이다.” 정도령의 시선이 이순신에게 향하였다. “통제사의 뜻은 어떠하십니까?” “반대할 이유는 없네.” 서아지가 기뻐하면서 무릎을 털썩 꿇었다. “죽기를 각오하겠나이다.” 이순신이 부관에게 명령했다. “전 함대는 가덕도를 우회하여 일본 본토로 출항한다. 이제 지난 6년 동안의 패배를 일거에 만회할 기회가 도달하였다. 전 함대 전 속력으로 출동!” “함대 출동!”“전 속력으로 이동한다.” 이순신의 장군선을 선두로 하여 원균의 대장선과 안위의 전위선, 김완의 후위선, 첨사 이순신의 중위선과 송희립의 돌격선 등 13척의 판옥선이 일렬종대를 형성하며 따랐다. 출렁이는 파도 위의 아름다운 햇빛물살을 가르며 순항하는 이순신 함대의 위용은 장관이었다. ‘일본의 본토를 습격한다!‘ ‘그래, 이런 기분이다, 이런 맛이야!’ 광해군 이혼은 새삼 가슴이 벅차올랐다. 동궁전(東宮殿)을 박차고 나온 보람이 있었다. 지난 6년 동안일본에게
[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세자저하, 이순신의 함대는 지난 6년 간 단 1 패도 해 본적이 없습니다. 이순신의 함대는 불패의 무적함대입니다. 이 함대가 일본의 300여 척이 넘는 함대를 궤멸시켰다는 것을 잊으셨습니까?” “그런 통쾌한 승리를 어찌 잊었겠는가.” “기습의 전제는 상대가 전혀 예측하지 못한 허를 찌르는데 있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구루시마에게 병선을 내어주고 오로지 승전보를 기다리고만 있을 것입니다.” 광해군이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설마 조선군이 나고야, 본토를 습격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 “안심하고 있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침략의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도록 할 것입니다. 그러나 단 한 가지 난제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광해군을 비롯한 이순신과 원사웅, 장예지, 서아지 등의 시선이 일제히 정도령에게 쏠렸다. “난제가 있소?” 정도령은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했다. “사실, 일본의 기습은 천기를 누설하는 것입니다. 하늘의 뜻을 역행 할 때에는 필연적으로 대가를 치룰 수도 있습니다. 다만 그것이 염려 됩니다.” 광해군은 믿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천기를 거역하기 때문에 자칫 하늘의 노여움을 살 수도 있다는 것으로
[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자네는 이 사람을 여러 번 놀라게 만드는구려.” “송구하옵니다.” “아니요. 그래서 우리 함대는 어디로 가야 하는 거요?” 정도령의 관옥 같은 얼굴에 그 특유의 신비로운 미소가 감돌았다. 하지만 목소리는 그 어느 때 보다도 장렬한 기류가 흘렀다. “나고야!” 일본 본토의 나고야라는 말이 새어나오자 광해군은 두 눈을 부릅떴다. 몹시도 경악한 모양이 역력했다. 이순신 역시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의 굴곡진 눈매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아!’ 그들과 함께 있던 일당백 원사웅은 숨도 제대로 내쉬지 못하고 있었다. 장예지 역시 무척 놀란 얼굴을 하고 사태를 예의 주시할 따름이었다. 서아지 역시 마찬가지였다. 누구도 정도령이 이런 파격적인 전술을 내 놓으리라고 예측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통제사는 짐작하고 있었소?” 광해군은 신중한 기색의 이순신에게 물었다. “사실은 출정 전에 만약의 사태가 발생 될 경우, 우리 함대의 다음 전략에 대하여 비교적 소상한 설명을 정도령으로 들었나이다.” “만약의 상황이란 것이 오늘 날의 긴급한 사태인가?” “그러하옵니다. 일본의 기습전은 그 중에 하나이옵니다.” 광해군이 또 다시 탄식했다. “정도령
[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기자] “자자, 우리 모두 안심해도 되겠소이다. 정도령을 선인이라 하지 않소. 어디 믿어 봅시다. 그런데 정도령의 재주가 과연 어디까지인지 궁금하구려. 관상에도 일가견이 있다?” “송구하옵니다.” 광해군이 정도령에게 바싹 관심을 두었다. “내 관상은 어떻소? 난 길게 오래 오래 살아가는 장수보다도 이 난세의 끝이 궁금하오. 선왕의 보위를 내가 제대로 이어 받을 수 있을지가 정말 궁금하다오.” 세자의 의미심장한 말투가 내뱉어지자 장중은 삽시간에 동장군이 엄습한 겨울들판처럼 꽁꽁 얼어붙었다. 파장은 예상 외로 컸다. “세자저하, 그 무슨 망극한 말씀입니까?” “저하?” 광해군은 시선을 정도령에게 고정하였다. “정도령, 그대의 지모가 매우 출중하다는 것은 내 이미 파악이 되었고, 내 관상에 대해서도 견해를 꼭 듣고 싶다오.” 정도령은 전혀 당황하는 빛이 없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천생덕어여(天生德於予) 환퇴기여여하(桓魋 其如予何)라 하시었나이다.” 광해군이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하늘이 내게 덕을 내리셨으니 환퇴(桓魋) 따위가 감히 나를 어찌 해칠 수 있겠는가?” 정도령은 온유한 미소를 담으며 바람에 구름이 흐르듯이 말문을 이어
[우리문화신문=유광남 작가] 이순신의 함대는 바다위에서 돌연 정지 상태에 돌입하였다. 적의 동태를 탐지하고 돌아온 귀선을 도중에 만났기 때문이었다. “자네의 말이 모두 사실인가?” 정도령은 경직된 얼굴로 되물었다. 서아지는 매우 신중한 기색으로 답변하였다. “분명하옵니다. 저희들 모두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한 사실입니다.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허튼 수작을 늘어놓겠습니까.” 하기야 서아지의 보고를 받고 있는 사람들의 명망은 조선을 들썩일 정도의 신분을 소유하고 있었다. 통제사 이순신을 비롯한 광해군 이혼이 바로 당사자였기 때문이다. “일본의 대규모 함대가 가덕도 부근에 대기하고 있다고 했느냐?” 광해군의 질문에 서아지는 고개를 땅바닥에 닿을 정도로 숙였다. “우리 함대를 기습 공격 하고자 함이 분명하옵니다.” “100 척이 훨씬 넘는다고?” “거의 200 여 척에 가까웠습니다. 눈에 띄는 것은 마치 성을 옮겨놓은 것과 흡사한 아타케부네(安宅船)가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 함선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승선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순신의 눈에서 정광이 쏟아졌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배인가?” “그런 화려한 대선은 처음 목격한지라......확인할 수는